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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정당화’는 오만하다

761호 표지이야기를 읽고 ②… 민주당이 각 지방 정치·경제 강화 정책 펴면 영남도 움직일 것
등록 2009-05-29 17:40 수정 2020-05-03 04:25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뒤에 한 말이다.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도 없었다”는 뜻이다. 지금의 정치 구도에 이 말을 적용하면 ‘약무호남 시무영남’(若無湖南 是無嶺南)이 되지 않을까 한다. “호남이 없으면 영남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선거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지역·세대·이념이기 때문이다. 지역이 가장 큰 결정 요인이다. 이념 정당들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1월3일 민주당 의원들의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점거를 해산하기 위해 동원된 국회 경위들의 완력에 최문순 의원(오른쪽 두 번째)이 밀려나고 있다. 사진 연합 황광모

지난 1월3일 민주당 의원들의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점거를 해산하기 위해 동원된 국회 경위들의 완력에 최문순 의원(오른쪽 두 번째)이 밀려나고 있다. 사진 연합 황광모

‘호남을 벗어나 전국으로’가 먹히지 않는 이유

그중에서도 영남과 호남이 가장 큰 결정 요인이었다. 이런 구도에서 선거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단순했다. 자기 지역을 단결시키고 중간 지역을 포섭해 상대 지역을 고립시키는 것이다. 이런 투표의 지역성이 극복 대상으로 인식돼온 것이 사실이다. 각 정당에서 정치 개혁을 주장할 때마다 단골 메뉴였다. 이런 흐름이 정치적 격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흐름은 ‘전국정당화’라고 명명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평화민주당 이후 꾸준히 되풀이된 구도다. 문제는 이런 정치적 운동이 화려한 명분과 함께 시작됨에도 그 결과가 대부분 좋지 않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호남을 벗어나 전국으로’ ‘호남을 버리고 전국으로’ 이게 왜 잘 안 되는 것일까? 유권자들은 정치의 ‘대상’이 아니다. 정치적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정치의 주체이자 주인이다. 정치인들이 호남을 버리고 전국정당을 만들겠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유권자들이 스스로 그렇게 결정했을 때 되는 것이다. 이런 정치 구호는 국민들에게 오만하게 들린다고 생각한다.

4·29 재·보궐 선거가 끝난 뒤 민주당 지도부의 태도는 놀라웠다. 지도부에서는 “전주의 평화를 위해 정동영 후보를 공천했다면 다른 지역의 시민들은 어찌 보았을까, 이렇게 원칙을 지킨 것이 수도권 선거에서 민주당 지지의 근거가 됐다”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번 선거 결과가 호남을 버렸기 때문에 승리한 것인지, 아니면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의한 반사이익인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 호남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모두 외면당한 것은 이런 ‘오만함’ 때문은 아닌지 봐야 한다.

지역 투표가 이루어지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은 호남을 버려서 영남을 얻는 일이 아니다. 호남을 버려봐야 전국정당이 되지도 않을 것 같다. 낮은 자세로 국민들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남 없이 호남 없고 호남 없이 영남 없다

영남 역시 마찬가지다. 영남이 압도적 지지를 보냈던 이명박 정부는 지금 수도권 중심 체제를 강화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영남 지역의 정치와 경제는 죽어가고 있다. 민주당은 이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지역을 강화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 내 민주주의와 지역 정치의 발전, 지역 경제의 유지와 확대, 지방분권의 질적 강화, 지역 문화의 고유성 보호, 지역 교육과 언론의 육성 등 전체적으로 지역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펼쳐나가면 언젠가는 영남이 움직일 것이다. 머리와 전략, 작전을 통해서 지역 구도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진정성을 가지고 가슴으로 접근하면 지역 구도를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국민들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지켜보고 있다. “영남 없이 호남 없고 호남 없이 영남 없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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