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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화구 깊게 패인 양당

4·29 재보선 박근혜 영향력 재확인·정동영 근거지 마련… 복당 놓고 힘겨루기
등록 2009-05-08 17:24 수정 2020-05-03 04:25

#장면1. 재보선 결과가 확정된 4월29일 밤 11시, 서울 여의도 엔빅스빌딩 앞의 한 식당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속속 집결했다.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금세 20여 명이 모였다. 이한성 의원 생일잔치를 이유로 한 모임이었다. 한 의원이 “우리가 비록 0 대 5로 패했지만, 앞으로 더 잘하란 뜻으로 받아들이자”고 건배사를 했다. 당이 패했다는데 건배를 하는 의원들의 표정은 밝았다. 엔빅스빌딩은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가 있던 곳이다. 모인 의원들은 친박 쪽 의원들이었다. 분위기는 ‘경주 승리 파티’인 셈이었다. 그 시간 한나라당 지도부는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했는지 되돌아보겠다”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4·29 재·보궐 선거 다음날인 4월3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동료의원들과 이야기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왼쪽). 4·29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무소속 정동영 당선자가 29일 밤 전북 전주에서 열린 당선소감 발표장에서 전화를 받으며 웃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연합 김병만· 연합 김동철

4·29 재·보궐 선거 다음날인 4월3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동료의원들과 이야기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왼쪽). 4·29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무소속 정동영 당선자가 29일 밤 전북 전주에서 열린 당선소감 발표장에서 전화를 받으며 웃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연합 김병만· 연합 김동철

#장면2. “당 구성원들의 의견을 배제한 채 당 지도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비민주적 공천 결과가 압승할 수 있었던 선거를 체면 유지로 그치게 했다. 당 지도부에 환골탈태의 결의를 촉구한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공천을 요구해왔던 민주당 의원들로 구성된 국민모임은 4월30일 이런 성명을 발표했다. 참석자는 강창일·김재균·문학진 의원 등 10명이었다. 그 시간 민주당 고위정책회의에 참석한 원혜영 원내대표는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의 특권층·기득권층만을 위한 정치에 대한 경고”라며 “6월 국회 ‘MB 악법’ 저지에 가일층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당이 패배해도 웃는 의원들, 당이 승리를 외쳐도 지도부에 비판의 화살을 날리는 의원들. 4·29 재보선이 만들어낸 새로운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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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재보선은 향후 선거 풍향계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와 제18대 국회 출범 이후 처음 열린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다. 총선 1년 뒤 열리는 첫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는 이후의 선거 흐름을 정하는 ‘정초(定礎)선거’의 성격이 짙다. 지난 17대 국회 당시 2005년 4월 첫 재·보궐 선거가 대표적이다. 당시 제1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5석을 휩쓸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 후보들은 전패했다. 그 뒤 열린우리당은 모든 선거에서 패했다.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주목해봐야 할 부분은 ‘텃밭에서의 분열 구도’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이번 선거에서 영남, 특히 경북은 박근혜 전 대표의 텃밭임이 다시 확인됐다. 정동영 당선자의 경우는 신건 당선자와 동반 당선됨으로써 전북에서 자신의 공간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분열 구도는 내년 지방선거 이후까지 지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번 재보선의 득표율은 그런 경향을 강화할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른바 ‘친이당’과 ‘친박당’의 대결이었던 경북 경주 선거 결과를 보자. 친박 정수성 당선자가 45.9%를 얻어 한나라당 정종복 후보를 9.4%포인트나 앞섰다. 전북 전주에서도 정동영 당선자가 72.3%로 압도적 지지를, 신건 당선자가 50.4%라는 과반수 지지를 얻었다.

‘민주당 대 정동영’ 내년 재대결 가능성

분열 여부와 시기를 알 수 있는 키워드는 ‘복당’과 ‘입당’이다.

먼저 민주당은 ‘복당’이다. 김민전 교수는 “현재의 구도로는 당 지도부가 정동영 당선자의 복당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결국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에서는 민주당 후보들과 정동영 쪽 후보들이 한 번 더 겨루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통합의 시기는 2012년 총선과 대선 시점께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정세균 대표는 최대 접전지인 인천 부평을과 경기 시흥시장에서 승리를 거둔 만큼, 6월 국회에서 ‘반이명박 투쟁’에 앞장서겠다는 명분과 토대를 마련했다. 정세균 대표 쪽 관계자는 “정동영 당선자가 곧바로 복당을 요구하면 ‘이명박 심판’으로 잡히던 흐름이 복당 논란으로 옮아가게 된다”며 “당헌·당규에 ‘탈당 후 1년 이내 복당 금지’라는 규정이 있는 만큼 이에 따른 냉각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동영 당선자를 지지하는 강창일 의원은 “이번 선거 결과는 정세균 대표에게도, 정동영 당선자에게도 대립의 요소가 가장 강한 결과”라며 “이를 조기에 치유하지 않으면 당이 조기에 분열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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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시도당위원장 정치적 성향

한나라당 시도당위원장 정치적 성향

정치적 지형으로만 따져보면 복당 논쟁은 정 당선자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이철희 수석애널리스트는 “명분 없는 출마를 강행한 정 당선자는 공천 논쟁 과정에서 가장 많은 것을 얻은 셈이 됐다”며 “복당 논란이 계속되면 또 다시 정 당선자에게 더 많은 명분만 가져다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 당선자의 다른 측근은 “솔직히 ‘정동영 신당’을 만드는 것은 명분이 없는 행위”라면서도 “그런데 민주당이 계속 복당을 거부한다면 정동영 신당에 대한 명분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발상은 ‘근거지를 만들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동영 당선자의 다른 측근은 “현재 상황에서 독자적인 정당 건설이 가능한 정치인은 박근혜 의원과 정동영 당선자뿐”이라며 “우리는 이제 독자적인 지역을 확보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명백한 지역주의적 발상이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정동영·신건 동반 당선으로 호남에서 근거지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명백한 오해”라며 “먼저 전남에서는 이번 선거에 극히 무관심했고, 정동영 당선자를 지원했던 ‘전주고 인맥’들의 동원력이 전북 전체를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나라당은 경주 정수성 당선자의 입당 여부와 시기가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당장 5월과 6월에 있을 한나라당 당협위원장(옛 지역위원장)과 시도당위원장 선거에서 이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한나라당 경주 당협위원장은 이번에 낙선한 정종복 전 의원이다. 한 친박계 재선 의원은 “당장 5월에 새로운 당협위원장들을 뽑아야 하는데, 경주 유권자들의 뜻을 따르자면 정수성 당선자를 입당시키고 경주 당협위원장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친이 쪽에서 2번이나 낙선한 정종복 전 의원을 계속 고집한다면 당내에서 큰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재보선 과정에서는 우리가 무소속 후보를 지원할 수 없었지만, 지금부터는 우리가 우리 식구를 제대로 챙겨야 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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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복당 문제는 친박연대에까지 이어진다. 다른 친박계 재선 의원도 “당 밖의 친박연대가 오는 10월 재·보궐 선거까지는 후보를 내지 않겠지만, 내년 지방선거에는 낼 수밖에 없다”며 “그러면 한나라당 공천에서 떨어진 이들은 모두 거기로 몰리게 될 것이고, 한나라당은 자중지란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당 밖에 ‘위성체’가 많으면 선거 때마다 계속 흔들린다”며 “정수성 당선자뿐만 아니라 친박연대도 10월 재보선 이전에는 껴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쉽게 풀릴 문제는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나라당 의석이) 170석이니까 (당 지도부와 친이계의) 절박성이 떨어지는 거지.” 한 친박계 의원의 답변이다.

껴안을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그렇다고 친이계가 마냥 외면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만사형통’의 이상득 의원의 영향권이라고 할 수 있는 경주에서 유권자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와 ‘친이’ 후보를 심판했다는 점 때문이다. 영남권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가지는 ‘비대칭 전력’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구획을 지으면 우리가 망하는 길로 가는 거다”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4년 전 지방선거를 앞둔 열린우리당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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