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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만의 ‘브랜드’ 만들겠다”

노회찬 신임 대표 인터뷰 “내부 혁신으로 지지층 마음 되돌리고 재선거를 동력 삼을 것”
등록 2009-04-10 15:36 수정 2020-05-03 04:25

“‘거대한 소수’의 치밀한 승리!”
2004년 4월15일의 기억을 (제506호)은 이렇게 표현했다. 민주노동당은 이날 10명의 국회의원 당선자를 배출하며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진보 진영에서는 의회 진출을 향한 진보의 ‘정치 실험’은 끝났다는 성급한 주장도 나왔다. 진보 정당의 미래는 밝게만 보였다.
2004년 총선 당시 민노당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선거를 이끈 사람이 노회찬 전 의원이었다. 노 전 의원은 특유의 기획력과 현안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바탕으로 민노당을 지휘했다. 5년이 지난 지금, 노 전 의원이 ‘진보신당 대표’로 돌아왔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물론 5년 전 민노당과 지금의 진보신당은 다르다. 진보 정당은 5년간 조직과 노선, 정책 등에서 철저히 실패했다. 겉으로는 서민을 위한 정당을 표방했지만, 시민들은 진보 정당을 집회와 투쟁에 능한 운동권 출신 엘리트 정당으로 인식했다. 정파 간 연합 구조는 당력을 집중하는 데 걸림돌이 됐을 뿐만 아니라, 분당의 씨앗이 됐다. 13%에 달했던 진보 정당 지지도는 3%로 주저앉았다.

3월29일 취임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에게 진보 정치의 미래를 물었다. 2004년 4월을 진보 정치의 ‘만조기’에 비유한다면 지금은 ‘간조기’다. 과연 그는 5년 전 그때처럼 진보 정치의 싹을 다시 틔울 수 있을까?

-진보신당이 집단지도 체제 대신 단일지도 체제를 택했다. 과거 진보신당(혹은 민노당)과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

=단독 대표 체제는 지난 1년에 대한 평가에서 나왔다. 단독 체제는 일의 적극적 추진이 가능하다는 강점이 있다. 지금은 과감한 결단과 신속한 집행이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단독 대표 체제의 의미를 살리는 게 내게 맡겨진 과제라고 생각한다.

-과거 경험을 보면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정파들의 헤게모니 추구가 대표의 리더십과 충돌할 수 있다.

=집단지도 체제가 갖는 장점이 있지만 당내 민주주의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측면이 있었다. 진보 정당 안에 다양한 목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런 목소리가 존중돼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실제로 당을 이끌어나가는 데에는 절충적 모습보다 확실히 끌고 나가서 나중에 평가받는 게 필요하다. 그게 단독지도 체제를 선택한 배경이라고 본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좌고우면할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정규직과 실직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임시직을 전전해야 하는 고학력자도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진보 정당을 찾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 대해 어떤 대답을 내놓을 것인가.

=대선과 총선을 통해 수적 열세에 몰렸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해왔던 정치 방식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과제가 둘이다. 소수자 처지에서 거대한 적과 싸워야 하고, 동시에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보 정당의 경우 과거 지지도 13%가 3%로 낮아진 이후 지지층의 실망감을 반전시킬 계기를 못 만들고 있다. 우선 스스로 혁신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혁신인가.

=진보신당 내부에서 소화할 문제가 있고, 바깥으로 표현해야 할 부분이 있다. 우선 전자는 당 운영 방식 등 중·장기적 효과가 나는 부분이다. 보수 정당을 흉내내는 당 운영 방식을 바꾸겠다. 예를 들면 당원이 300~400명에 불과한 지역에도 당 사무실을 두고 많은 비용을 들였다. 과거 수십억원의 국고 보조금을 받아 어디에 썼을까 생각해보면 조직 유지에 많은 돈이 들었다. 지역 사무실을 두지 말되, 만약 설치한다고 해도 비정규직센터 등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사업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과거의 관성을 전면적으로 혁신하는 데 앞장서겠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약력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약력

-외부로 표현할 혁신이란.

=진보신당이 정당으로서 인지도와 지지도가 너무 낮다. 특히 인지도가 40%를 넘지 못하고 있다. ‘노회찬, 심상정’ 등 잘 알려진 인물만으로 돌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나도 지방에 가면 아직도 민노당 소속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4월과 10월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반드시 의석을 확보하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16개 광역단체장 후보를 빨리 가시화해 당의 지지도와 인지도 상승을 노리겠다. 환경오염도 덜하고 연비도 좋은 자동차를 만들어도 동력이 있어야 굴러간다. 국회의원 재선거와 지방선거를 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 때, 우리가 펼칠 새로운 진보도 그만큼 주목을 받을 수 있다.

-노 대표가 말하는 ‘새로운 진보’는 뭔가.

=나는 결국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화점식 사업을 하는 것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하면 자연스럽게 금융실명제를 떠올리듯 브랜드 몇 가지를 만들려 한다. 진보신당과 민노당은 그런 게 없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포함한 일자리 문제, 그리고 사교육 문제가 중요하다고 본다. 영세 자영업자 문제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연구해오고 있다. 생태 이슈도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이고 싶다. 이 5가지 가운데 한두 개가 브랜드로 승격돼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원외에서 제도화할 길은 없다. 노 대표가 말한 일자리 문제만 해도 정작 수요자인 젊은 대학생은 제도 개선을 위한 행동에 소극적이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첫 번째 부분은 모든 야당의 공통된 한계다. 그럼에도 현실에 대한 정확한 비판과 대안 제시는 야당의 몫이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면 공감대와 지지도가 넓어진다. 두 번째 문제는 학생들이 경쟁 논리 속에서 성장해온 또 다른 폐단이다. 예컨대 취업이 매우 어려운 조건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걸 극복하는 방식을 모른다. 과거 100 대 1의 경쟁이 500 대 1로 악화됐는데, 집단화해서 제도적 문제제기를 하고 룰을 바꾸려 하기보다 더욱 경쟁에 몰두하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 ‘로또 외엔 방법 없다’는 사진이 돌았다. 룰을 바꾼다거나 세력화한다거나 이런 방법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우리는 정면 대응할 것이다.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과 동시에 직접 현장에 파고들어가 500명 가운데 1명이 되는 쪽으로 활로를 모색하는 것은 로또에 도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호소할 것이다. 그렇게 몇 명이라도 동의하는 사람을 만들어내고, 그런 사람들을 세력화하는 일을 해야 한다. 진보 정당이 아직 성장해가는 초기 과정이라고 보는데, 의석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하지만 로또 이외의 방법을 효과적으로 제시해주기 위해서라도 원내 진출이 필요하다. 4월 재보선은 진보신당에 어떤 의미인가.

=4월 선거는 이명박 정부 1년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분명히 있다. 진보신당으로서는 한 석도 없기 때문에 이 한 석이 주는 의미가 다른 당과는 다르다.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지는 2012년에 승부를 걸려면 그 전에, 특히 울산 북구 선거가 포함된 이번 4월 재선거에서 사활을 걸고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 의석 하나가 국회에서 표결할 때는 큰 의미가 없겠지만 우리에게는 천군만마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에 앞서 단일화란 과제가 있다. 단일화는 어느 한쪽의 양보를 전제로 한다. 만약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가 단일화 과정에서 탈락한다고 해도 진보신당은 민노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헌신할 수 있나.

=단일화에 합의한다는 것은 결과에 승복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당연히 승복해야 하고 단일화되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특히 조승수 후보로 단일화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글 최성진 기자 csj@hani.co.kr·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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