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가 “국민과 당원들의 뜻에 따라 최전선에 나서겠다. 서울 은평을 말고는 (다른 지역구는) 의미 있게 검토한 바 없다”며 은평을 지역에서 오는 10월 재선거가 치러질 경우 출마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은평을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10월 재선거가 점쳐지는 곳이다. 심 대표는 3월12일 서울 여의도 진보신당 당사에서 과 만나 민주노동당 분당·진보신당 창당 1년을 맞은 소회와 최근 당 대표 경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유, 앞으로의 계획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심 대표는 한동안 답을 하지 않다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분당을 목적한 바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한때 20% 이상의 지지를 받았던 민주노동당이 대선에서 3%의 지지를 받은 건, 대안정당으로 거듭나려면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국민의 최후통첩이었다. 기존 민주노동당 안에서 이 최후통첩을 받아안아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었다. 하지만 혁신이 좌절됨으로써 분당이 ‘된’ 거다. 일부 선도탈당파가 있었지만 대세는 아니었다. (민주노동당 일부가) 선도탈당파에 의한 분당으로 규정하고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불행한 일이다.
지난 1년은 ‘힘없는 정의는 무기력하다’는 파스칼의 경구를 아프게 복기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었다. 국민의 엄중한 평가에 자기성찰로 부응할 수 있었다면 진보정치는 대안권력으로서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그 역사적 소임을 성공적으로 다해보려 했지만, 이를 관철할 힘이 부족했다. 혁신안을 성공시키지 못함으로써 진보정치는 새로운 출발의 고통을 안아야 했다. (또다시 심 대표의 말이 끊겼다. 잠시 눈가에 물기가 비쳤다.)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는 당내 힘을 갖췄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아 있다.
-4월 재선거가 치러지는 울산북 지역에서 민주노동당과 후보 단일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당연히 한나라당을 꺾을 수 있고, 표심에 근접한 후보로 단일화돼야 한다. 조승수 전 의원은 울산 북구청장을 거쳐 국회의원도 했다. 비록 ‘사법살인’으로 중도하차했지만, 북구 주민이 가장 기대하는 후보는 조승수 전 의원이라고 믿는다. 단일화 과정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중요한 원칙은 진보정치 진영이 국민과 거리를 가장 좁히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거다. 과거 (민주노동당 분당 이전) 당심과 민심이 괴리돼 진보정치가 국민들로부터 멀어졌던 뼈아픈 과정이 결국 오늘의 진보정치 모습으로 연결됐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후보 단일화만 된다면 100% 이길 수 있다고 본다.
-후보 단일화가 두 당 통합 논의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통합을 바라는 지지자들의 속뜻은 두 당의 기계적인 통합이 아니라 제3의 수권세력으로서 가능성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과거 민주노동당 지지율은 아무리 떨어져도 8%대는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득표율은 3%였다. 집권 능력을 갖춘 정당으로 평가받지 못한 거다. 그 3%의 민주노동당으로 돌아가는 결합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 민주노동당도 정치적인 제스처로 통합을 주장하기 전에 수권 능력을 갖춘 대안세력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선거 등) 정치적인 계기마다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고, 그것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때 두 당을 포함한 진보정치 세력이 제3의 수권세력으로 통합될 수 있다.
-진보신당 공동대표로서 지난 1년을 평가한다면 몇 점이나 줄 수 있나.=51점. 의석 하나 없는 정당이지만, 촛불 국면에서 국민들의 새로운 에너지를 가장 많이 받아안은 게 진보신당이었다. 비정규직 문제, 용산 참사, 촛불 등 사회의 아픈 곳곳에 빠짐없이 발길을 함께했지만, 현장에 함께하는 것만으로 정치의 소명을 다하는 것인가 하는 회의가 많이 들었다. 사회운동과 달리, 권력을 장악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정치 아니냐. ‘운동 정치’를 넘어 문제 해결 능력, 대안과 비전, 실력을 갖춘 정치 세력이 돼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왜 당 대표 경선에 나서지 않기로 결심했나.=당원 1만5천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지못미 당원’(18대 총선 때 노회찬·심상정 의원이 낙선한 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진보신당에 입당한 당원)이나 ‘촛불 당원’이다. 이들은 노회찬·심상정을 보고 들어왔다는 사람들이고, 우리가 집단지도 체제로 역할을 해주기 바랐다. 하지만 공동대표 체제는 권한과 책임이 분명하지 않았고, 이들이 꿈꾸는 진보정치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출발선에 서 있는 당으로선 (내가 당 대표직을 포기하는) 기회비용을 감당하더라도 전략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다. (심 대표는 3월6일 ‘당 대표 경선 불출마를 결정하며 당원 동지들께 드리는 글’에서 “당 대표 선거가 두 상임대표의 경선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긍정적 측면만을 강조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노회찬 대표의 힘겨운 재판 투쟁도 감안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노 대표는 지난 2월 삼성 X파일 사건 재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불출마 선언문을 쓰는 데 한 달이 걸렸다. 그만큼 어려웠지만 매우 진솔하게 썼다. 진보신당의 처지에선 내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에 당원들이 ‘불출마 이후’를 많이 기다리지 않겠나. 진보정치의 발전을 위해 어떤 책임 있는 선택을 할지, 말하자면 당 대표 경선에 안 나가면 뭘 할 거냐는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아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서울 은평을 지역에서 10월 재선거가 치러질 경우 출마하겠다는 뜻인가.=재판 초입부터 재선거가 기정사실이 돼버려 재판 과정이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에게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은평 주민들의 표심이 부정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의석 하나 없는 진보신당으로선 1득점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공이 날아오는 걸 끝까지 봐야 한다. 10월 재·보궐 선거엔 이명박 정권의 폭주에 제동을 걸 파열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국민들의 열망이 쏠릴 것이고, 은평을에서 선거가 치러진다면 정치적 의미는 더 커질 것이다. 국민과 당원들의 뜻에 따라 최전선에 나설 생각은 분명하다.
-18대 총선 때 경기 고양덕양갑에 출마했다. 10월 재선거 때문에 지역구를 옮기면 당선 가능성만 본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데.=사실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고양덕양갑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들어 국민의 삶은 더 어려워지고, 민주주의도 위협받고 있다. 희망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기대가 재보선에 실려 있다. 진보정치는 그런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10월 재보선에서 다른 지역에 출마할 수도 있나.=은평을 말고는 의미 있게 검토한 바 없다.
-단독 대표로 당을 맡을 노회찬 대표가 삼성 X파일 사건 재판 결과에 따라선 2010년 노 대표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 등이 좌절될 수도 있다.=노 대표가 단독으로 당 대표에 나서는 것은 앞으로 전개될 항소심 재판에서 반드시 승리하라는 당원들의 강력한 의지와 주문이다. 이 재판은 애초부터 원고와 피고가 바뀌고, 진실과 정의가 부정됐다. 노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가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진보정치 발전의 한 축이 무너지는 것이므로 당으로서도, 진보정치인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다. 노 대표가 승소하고 서울시장에 출마해 진보신당의 정치적 도약에 선봉을 맡아주기 바란다.
-3월29일 공동대표 임기가 끝나고 나면 ‘백수’인데 뭘 할 건가.=정치인이라는 직업엔 백수라는 뜻이 내포된 것 아닌가. (웃음) 대표 지위가 아니라도 당 안팎으로 할 일이 많다. 차기 집행부가 구성되고 나면 구체적으로 논의되겠지만, 지도부가 주문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할 것이다. 지역구 마을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공교육 혁신과 지역 정치 모델 실험에도 더 힘을 쏟을 생각이다. 일단 4월 재보선이 끝나면 마을학교에서 연구 중인 북유럽형 교육 모델을 보러 핀란드를 방문할 계획이다.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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