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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초선 4명이 겪은 여의도 살풍경

진성호 “아직 물음표”, 최문순 “양날의 칼”, 이정희 “도 닦는 심정”, 박선영 “삶 그 자체”
등록 2009-01-23 17:27 수정 2020-05-03 04:25

정치만큼 다양한 정의가 가능한 명사도 없다. 2008년 7월 여의도를 떠난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는 “정치는 종합예술”이라는 말을 남겼다. 세상의 모든 욕망과 갈등이 녹아 있는 용광로라는 뜻이다. 반면 정치를 ‘개판’이라고 말하는 쪽도 있다. 정치투쟁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할 때 동원되는 개념이다.
2008년 18대 총선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초선 의원에게 한국 정치는 어떻게 비쳤을까? 정치인으로서의 삶은 그들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이 여야의 초선 의원 4명을 차례로 만났다. 한나라당 진성호(서울 중랑을), 민주당 최문순, 자유선진당 박선영, 민주노동당 이정희(이상 비례대표) 의원이다. 소속 정당은 다르지만 이 4명의 초선 의원은 지난 1년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보냈다.

18대 총선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초선 의원에게 지각 개원과 국회 파행으로 점철된 2008년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18대 초선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둘러보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18대 총선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초선 의원에게 지각 개원과 국회 파행으로 점철된 2008년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18대 초선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둘러보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진성호 의원은 18대 총선 당일을 떠올리며 “딸 출산과 아내와의 결혼 다음으로 기뻤다”고 말했다. 진 의원은 서울 중랑을 지역구에서 민주당의 김덕규 전 의원을 꺾었다. 초접전이었다. 4월9일 시작된 개표는 이튿날 새벽 1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언론은 이변이라고 했다. 기자 출신인 진 의원의 정치 경력은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인터넷본부장을 지낸 게 전부였다. 상대는 국회부의장 출신이자 5선의 현역 국회의원이었다.

진 “표정관리 안 돼 스트레스 받아”

“대선 끝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에 출마하라고 해서 지역구에 와봤는데 간단치가 않았어요. 총선 일주일 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10~14% 지고 있었거든요. 그게 일주일 만에 뒤집어진 셈이었으니까 선거운동을 세게 한 편이죠.”

진 의원의 선거운동 방식은 독특했다. 유권자를 일일이 찾아다니기보다 취약 지역을 찾아다니며 홍보 동영상을 틀었고 거리연설을 했다. 잠도 푹 잤다. “선거운동을 해보니까 새벽에 출근하는 시민들 붙잡고 명함 나눠주면 싫어해요. 밤에도 식당 돌아다니니까 싸움만 나고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각종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은 대개 한 명의 유권자라도 더 만나려 애쓴다. 손이 퉁퉁 붓도록 악수도 한다. 유권자와의 스킨십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정치인은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진 의원은 정치인답지 않은 정치인이다. 그는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나는 편이다. 그래서 손해도 많이 본다. 그런 면모는 TV토론에서도 흔히 드러난다.

“지역구를 챙기려면 연기랄까, 그런 게 필요하잖아요. 인상은 늘 웃어야 하고 악수도 잘 해야 하는데, 제가 그런 게 취약한 편이라 사실 국회의원이 된 뒤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좀 편해진 것 같아요. 마음이 편해지니까 말도 천천히 하게 되고 조금은 부드러워진 것 같습니다.”

스킨십이 약한데다 초선 의원 첫 1년을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 그가 꼽는 2008년의 아쉬움이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문화방송 기자 출신이다. 1995년 문화방송 노조위원장, 1998년 언론노조 위원장을 거쳐 2008년 2월까지 문화방송 사장을 지냈다. 언론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지만 정작 자신은 카메라를 피해다녔다. 수줍음이 많았던 것이다. 방송사 사장까지 지내면서 화면에 나온 건 시트콤 에 카메오로 잠깐 출연한 게 전부였다. 그것도 담당 프로듀서가 ‘하도 쪼아서’ 어쩔 수 없이 나간 것이었다.

“여기(국회) 오니까 불편한 게 많더라고요. 서로 모르고 지낼 때는 편하잖아요. 그런데 여기 오니까 동네 목욕탕과 이발소 아저씨, 동네 카페 아주머니, 식당 아저씨들이 다 알아보고 말을 걸어요. 소주 한 잔을 마셔도 흐트러지면 안 되고, 특히 목욕탕에서 다 벗고 악수하는 건 너무 이상하더라고요.”

최 의원은 언론사 기자나 방문객을 맞을 때 항상 웃는다. 웃지 않을 때가 오히려 드물다. 그런데 1월 초 방송 화면에 그의 성난 표정이 잡혔다. 최 의원을 아는 사람에게는 낯선 풍경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경위들과 몸싸움을 벌였던 그날이다. 방송사 카메라가 그 모습을 훑고 지나간 뒤 그는 경위들에 떠밀려 국회 본회의장 계단을 굴렀다.

“언론노조에서도 몸싸움을 할 기회는 별로 없잖습니까. 노조가 항상 물리력을 독점하는 편이라 회사 쪽이 구사대를 동원하지 않는 한 그럴 일이 없죠. 당시에도 싸움을 하려면 한나라당 의원들이 직접 나서든지, 아니면 경찰을 동원해서 끌어내든지 했어야죠. 고생하는 경위들과 부닥뜨려야 하는 상황이 되니까, 정말 화가 나더라고요.”

1월 초 일단락된 법안 전쟁이 육체적으로 힘들었다면, 2008년 8월의 기억은 그에게 정신적 충격을 남겼다. 당시 청와대는 한국방송 이사인 신태섭 동의대 교수를 해임한 뒤 곧바로 정연주 사장 해임까지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다.

“한국방송 이사장을 교체하고 이사를 내쫓았죠. 그리고 결국 경찰을 투입해서 정연주 전 사장까지 끌어내는데 하나도 막지 못했다는 무기력감을 느꼈습니다. 그때 가장 힘들었습니다.”

자유선진당 대변인을 맡고 있는 박선영 의원은 언론을 통해 나타나는 이미지가 실제와 다른 편이다. 언론이 그를 소개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 ‘여전사’다. 지난해 대정부 질문 때 얻은 별명이다. 한승수 국무총리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날카롭게 몰아붙이던 그의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정작 그는 여전사 혹은 ‘송곳 질의’ 등의 표현을 부담스러워한다. 평소 모습도 여전사와는 거리가 멀다. 여리게 보이는 외모만큼이나 목소리도 조용하다.

“좋은 뜻으로 써주신 것 같은데, 송곳이 좋은 이미지가 아니잖아요. 그런 표현은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해요. 여전사처럼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건 별로 안 좋아하고요. 게다가 전사라는 게 군사문화 잔재 아니겠습니까. ‘2중대’라는 표현도 정치권에서 흔히 쓰는데 굉장히 폭력적으로 느껴져요. 용어보다는 주목해주셨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죠.”

박 의원은 정치인의 길을 선택한 뒤 삶의 질이 크게 떨어졌다고 했다. 수면 부족이 최대의 적이다. 자유선진당 의원이 많지 않다 보니 대변인인 그에게 일이 몰렸다. 지난해 총선 이후 친정어머니를 처음 본 게 1월 초였을 정도다. 그래도 정치인이라는 직업을 택한 것에 후회는 없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대변인 자리에도 만족한다. 문제는 주변의 견제다.

이 “날치기 처리에 엄청난 모멸감”

“카메라가 오면 의원님들이 평소와 달라지시더라고요. 카메라 앞에서 저는 정면에 안 서려 하고 뒤로 물러나요. 그런데도 팔꿈치로 치기도 하고 어깨로 밀기도 하고 아예 확 밀치기도 해요. 안 그래도 다 비켜드리고 중앙에 서지 않으려 하는데, 그런 모습은 안타깝죠.”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2008년 한 해에 쏟은 눈물이 그 어느 때보다 많다. 울었다기보다 차라리 절규했다. 촛불집회 때는 현역 국회의원이면서도 경찰에 연행됐다. 8월에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11일간 단식한 뒤 병원에 실려갔다. 12월17일 새벽에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쓰러졌다. 올 초 법안 전쟁 때도 마지막까지 국회 본회의장 앞을 지키다 또다시 실신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치열한 전선으로 내몰았을까.

“원래 그렇게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8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많이 울지 않았는데요, 국회에 들어오면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끼려 했습니다. 정치인이라면 자신이 대변해야 하는 사람들과 최대한 일치돼야 한다고 믿거든요. 거기서 나오는 절실함인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정치는 도 닦는 심정으로 걸어가야 할 구도의 길이기도 합니다.”

이 의원은 87학번이다. 대학입시에서 전국 여자 수석을 차지했다. 서울대 총여학생회장을 거쳐, 졸업 이후에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복지위원장을 지냈지만 스스로 “그렇게 격렬하게 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지난 연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회의실에서 한나라당 의원의 명패를 박살내는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이었다. 한나라당이 새해 예산안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의 상임위 상정을 강행 처리한 직후였다.

왼쪽부터 한나라당 진성호, 민주당 최문순(<한겨레21> 박승화), 민주노동당 이정희,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한겨레21> 류우종기자). 누구보다 초선 의원 첫해를 치열하게 보낸 이들이다.

왼쪽부터 한나라당 진성호, 민주당 최문순(<한겨레21> 박승화), 민주노동당 이정희,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한겨레21> 류우종기자). 누구보다 초선 의원 첫해를 치열하게 보낸 이들이다.

“예산안과 감세안이 날치기 처리된 뒤 마음이 많이 힘들었어요. 정말 이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느낌이었습니다. 그게 일종의 극단적 체험이자 엄청난 모멸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정치 입문을 후회한 적 없냐고 물었다. 이 의원은 18대 총선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민노당 비례대표 후보 3번을 제안받고 그는 망설였다. 당선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례대표 당선 소식을 듣는 순간, 비례대표 의석을 하나라도 보태겠다며 지역구에 출마한 103명 지역구 후보 얼굴이 떠올랐다”며 “정치인으로서 맞닥뜨려야 하는 낯선 상황이 힘든 적도 있었지만 무를 수 없으니 끝까지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1월6일 일단락된 ‘법안 전쟁’은 여야 초선 의원에게 상처로 남기도 했고, 반성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에게는 가능성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그때 MB 악법을 막아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망설임이 없었다. “의원직을 던졌을 것”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 1년간 정부와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습니다. 언론계만 보더라도 한국방송 사장을 경찰이 들어가서 끌어내렸습니다. 문화방송 〈PD수첩〉을 검찰이 직접 수사한 것도 방송이 시작된 이래 처음일 겁니다. YTN에 낙하산 사장을 보낸 일, 기자들 대량으로 해고한 일, 민영미디어랩을 올해 말까지 도입하겠다고 한 것 등 셀 수도 없습니다. 그걸 한 번도 못 막아내다가 이번에 처음 막아낸 거죠. 이긴 게 아니라 저쪽이 하도 무도하게 나오니까 국민들이 힘을 보태줘 겨우 방어한 겁니다.”

최 “통과 됐으면 의원직 던졌을 것”

2월 임시국회에서 법안 전쟁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 최 의원은 “훨씬 더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본회의장을 다시 점거하기도 어려워졌고, 한나라당은 한층 강화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장외투쟁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최의원에게 정치는 양날의 칼이다.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는 도구인데 쓰기에 따라 국민을 탄압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양날의 칼이죠.”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에서 최 의원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에게도 법안 전쟁은 각별한 경험이었다. 민주당의 국회 점거 농성이 장기화되고 있을 때, 그의 발언이 갈등을 키웠다. 당시 그는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식사나 물 등 인간이 꼭 필요한 것을 제한해 인간 한계를 경험하게 하자”고 말했다.

“제 발언의 요지는 폭력 사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과 국회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방송에서는 앞뒤 다 끊어버리니까 마치 제가 피도 눈물도 없는 것처럼 비쳐졌어요. 이해는 해요. 민주당 분들 가운데는 운동권 출신도 있지만 평생 관료로 지낸 분도 있잖아요. 굉장히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 발언을 듣고 격앙되신 것 같은데, 거기에 대해서는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법안 전쟁이 끝난 1월6일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올린 글도 문제가 됐다. 제목은 ‘민주당 당명부터 바꾸세요’였다. 진 의원 글이 올라가자 순식간에 ‘반대 투표’와 비판 댓글이 쏟아졌다. 비판 댓글은 2만 개가 넘었고, 반대 투표는 3만 개에 육박했다. 네티즌은 해당 게시물에 댓글 다는 행위를 ‘성지순례’에 비유했다.

“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장을 나오는 날 정세균 대표가 성명서를 발표했어요. 민주주의를 위해 본회의장 문을 열었다는 표현이 있었는데, 너무 오만하다고 느꼈어요. 점심 때 자장면 한 그릇 먹으며 장문의 글을 써서 한나라당 홈페이지와 아고라에 올렸죠. 데뷔작치고는 예상보다 좀 뜨거웠던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에서 인터넷뉴스부장을 해서 ‘성지순례’라는 용어 등에 대해 좀 알아요. 그게 그분들에게는 즐거움이거든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진 의원은 을 통해 ‘아고리언’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저는 그들의 열정을 정말 좋아합니다. 다만 나와 견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인내심을 갖춰줬으면 좋겠어요.” 그는 “정치는 물음표”라고 말했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나쁜 것 같기도 하다는 설명이다.

이정희 민노당 의원은 법안 전쟁이 자신에게 남긴 것은 ‘반성’이라고 했다. “사이버모욕죄, 복면금지법 등 통과되더라도 위헌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는 법안을 둘러싸고 법안 전쟁이 벌어진 상황 자체가 후회스러웠습니다. 좀더 일찍 쟁점으로 삼아서 아예 이야기가 못 나오게 만들었어야 했다는 반성이 든 거죠.”

18대 국회가 모두 4라운드의 경기라면 이들은 이제 막 1라운드 종반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첫걸음을 뗀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도 임기 내내 함께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2년차를 맞는 각오는 각기 달랐다.

진성호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다. 지금도 그는 자신을 ‘슈퍼MB맨’으로 소개한다. 사람들이 이 대통령을 욕할 때면 그는 “속상하다”고 말한다.

“속상하죠. 그래도 너무 지지율에 얽매이면 오히려 포퓰리즘의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국민과의 소통이 중요하지만 정책의 깊이를 유지하려면 소신껏 일할 수 있어야 하고, 잘못했으면 심판받는 거예요. 미안한 말이지만 제가 만난 많은 정치인들이 재선·3선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답답할 때가 있어요.”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은 “지도자는 삭막한 내면을 가지면 안 된다”는 말로 이 대통령을 비판했다.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죠. 대통령이 아무리 ‘돌격 앞으로’ 한다고 해도 국민이 움직여주지 안으면 안 되잖아요. 국민이 스스로 일어나 뛸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줘야 하는 대통령이 하는 일마다 동기를 깎아먹고 국민의 무릎을 꺾어버리고 있어요. 그런 점이 안타까워요.”

박 “대통령이 국민 의욕 꺾어”

이정희 민노당 의원은 “뼈를 깎는 심정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정권이 바뀌었으니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며 “국민이 피와 땀으로 이룩한 민주주의도 자신들 마음대로 하겠다는 아집 같은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문순 의원의 올해 목표는 언론의 독립을 사수하는 일이다. 법안 전쟁의 도화선이 됐던 언론관계법이 고스란히 2월 임시국회로 넘어갔다. 공영방송법도 민주당을 기다리고 있다. 8월에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 임기가 끝난다. 방문진은 문화방송 지분의 70%를 가지고 있다. 언론계는 1년 내내 생존의 위협과 싸워야 한다. 최 의원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를 보면 철학이 너무 없어요. 경제적으로는 규제를 확 풀고, 정치적으로는 규제를 최대한 강화하고 있습니다. 언론계만 봐도 조·중·동과 재벌에 방송을 풀어주고, 외국 자본도 들어오게 해줬잖아요. 미네르바 구속이나 사이버모욕죄로 네티즌을 압박하는 것을 보면 또 정반대란 말이에요. 이렇게 가면 인터넷 산업에는 치명타가 되거든요. 경제를 살리자면서 거꾸로 정치투쟁을 하는 겁니다.”

설 연휴가 끝나면 2월 임시국회가 시작된다. 이들 초선 의원이 여야공방의 선봉에 설 수도 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진성호·최문순 의원의 말처럼 정치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고 물음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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