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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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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에서 딴살림하는 의원님

자녀 교육 때문에 지역구와 원래 집 두 군데서 생활하는 안형환·정몽준 의원…
거주 의무 없어 “선거법과는 무관”
등록 2008-12-16 11:31 수정 2020-05-03 04:25

지방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지역구와 서울 두 곳에 집이 있다. 주중엔 국회, 주말엔 지역구 활동에 주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이 지역구여서 굳이 ‘두 집 살림’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 의원들 가운데서도 주소지와 실제 사는 곳이 다르거나 두 집을 오가는 이들이 있다.
서울 금천이 지역구인 안형환 한나라당 의원의 주소지는 금천구 가산동 ㄷ아파트다. 하지만 안 의원의 가족들은 강남구 청담동의 한 아파트에 산다. 이 때문에 안 의원의 주소지인 ㄷ아파트 주민들 중엔 섭섭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주민들은 “지난봄에 이사 온다고 펼침막까지 내걸렸던데, 끝내 안 오더라. 기껏 뽑아줬더니 강남 살겠다고 이사도 안 온다고 동네 사람들이 다 욕한다”고 말한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안형환(왼쪽)·정몽준 의원이 각각 자신들의 지역구인 서울 금천구 독산동과 동작구 사당동에서 선거운동을 벌이는 모습. 한겨레 강창광·김태형 기자(왼쪽부터)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안형환(왼쪽)·정몽준 의원이 각각 자신들의 지역구인 서울 금천구 독산동과 동작구 사당동에서 선거운동을 벌이는 모습. 한겨레 강창광·김태형 기자(왼쪽부터)

도시가스 미사용, ‘폐문부재’

안 의원이 전세를 든 ㄷ아파트에 가보니, 아파트 현관문 옆에 붙어 있는 도시가스 검침계는 지난 6월부터 아무런 사용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검침원이 ‘미사용’이라고 적어뒀다. 또 4월 총선 때 경쟁했던 이목희 전 민주당 의원이 안 의원을 상대로 서울고등법원에 낸 선거법 위반 혐의 관련 재정신청 접수 통지서도 10월21일과 11월11일 ‘폐문부재’(문이 잠겨 있고 사람이 없음)를 사유로 반송됐다.

이 아파트에 ‘생활의 흔적’이 적다보니, 일부 주민들은 안 의원 자신도 이곳에서 자주 살지 않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반면 한 60대 주부는 “아침에 손자를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안 의원이 집에서 나와 경비원한테 인사하고 기다리던 까만 승용차에 타는 걸 봤다”고 했다.

안 의원의 설명은 이렇다. “선거 전날 아이가 전학 스트레스 때문에 몸이 많이 아팠다. 상대 후보들한테 공격받을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아픈 자식을 데려올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2학년인데, 큰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는 내년 말엔 지역으로 데리고 올 계획이다. 나는 지역 주민들한테 최대한 성의를 보이려고 홀아비처럼 아침도 못 먹고 다니면서, 가족들은 주말에만 만난다. 집사람이 왔다갔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설명해도 변명으로 느낄 것 같아 주민들을 만나지 않는다.” 취사는 혼자서 라면을 끓여 먹는 정도라 도시가스를 연결하지 않고 휴대용 가스렌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보통 오전 6시50분에 나와 밤 12시에 들어가기 때문에 집배원이 오는 시간에는 집이 비어있다는 해명도 덧붙였다.

서울 동작을이 지역구인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도 ‘두 집 살림’을 한다. 울산동 지역구에서 이곳으로 지역을 옮겨오면서 동작구 사당동에 아파트 전세를 얻었는데, 지역구 활동을 강화하겠다며 최근 아예 집을 구입했다. 하지만 정 의원은 원래 살던 종로구 평창동 집에서도 여전히 생활한다. 정 의원 쪽은 “평창동에 학교 다니는 애(중학생)가 있어서 가족이 다 옮겨오지는 못했다. 반반 정도 양쪽을 왔다갔다 한다”고 말했다.

거주지와 주소지를 오가는 의원들은 비단 이들 뿐만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의 한 초선의원은 “주거나 교육환경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지역구의 경우 의원들이 원래 살던 강남 등지의 집을 고수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정 의원의 첫 번째 공약이 ‘교육’

이들이 ‘두 집 살림’을 하는 건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공직선거법은 국회의원의 거주지를 제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관용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보담당관은 “지역을 위해 일하는 지방의원과 달리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기 때문에 꼭 해당 지역구에 살아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위장전입이라고 해도 주민등록법 위반은 될 수 있어도 선거법과는 무관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역 발전을 약속한 국회의원이, 그것도 국회와 지역구의 거리가 멀어 어쩔 수 없이 집을 새로 장만해야 하는 것도 아닌 서울 지역 의원이 보이는 이런 모습은 유권자들이 ‘배신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동작을의 한 주민은 “정몽준 의원의 첫 번째 공약이 ‘교육 동작’이었는데, 정작 자신의 아이는 전학을 못 시키겠다는 걸 보면 왜 이 지역에 출마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안형환 의원의 주소지 아파트와 같은 동에 사는 한 주부는 “총선 때 지역 발전 공약도 많이 내놨고 강남 살던 사람이 우리 지역으로 이사를 온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결국 안 와서 실망했다. 인근에서 제일 큰 평수의 아파트까지 계약해놓고 왜 안 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역구 의원 공천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염경형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정책실장은 “지역구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지역 대표성도 띠고 있다. 선거 때도 사실상 지역 연고를 강조해 당선되는 것 아니냐”며 “거주지는 따로 있으면서 연고, 당선 가능성 등에 따라 공천을 받는 건 옳지 않다. 해당 지역구에서 철저히 인물을 검증하고, 그곳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판단된 사람을 공천하는 ‘상향식’ 공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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