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지역구와 서울 두 곳에 집이 있다. 주중엔 국회, 주말엔 지역구 활동에 주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이 지역구여서 굳이 ‘두 집 살림’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 의원들 가운데서도 주소지와 실제 사는 곳이 다르거나 두 집을 오가는 이들이 있다.
서울 금천이 지역구인 안형환 한나라당 의원의 주소지는 금천구 가산동 ㄷ아파트다. 하지만 안 의원의 가족들은 강남구 청담동의 한 아파트에 산다. 이 때문에 안 의원의 주소지인 ㄷ아파트 주민들 중엔 섭섭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주민들은 “지난봄에 이사 온다고 펼침막까지 내걸렸던데, 끝내 안 오더라. 기껏 뽑아줬더니 강남 살겠다고 이사도 안 온다고 동네 사람들이 다 욕한다”고 말한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안형환(왼쪽)·정몽준 의원이 각각 자신들의 지역구인 서울 금천구 독산동과 동작구 사당동에서 선거운동을 벌이는 모습. 한겨레 강창광·김태형 기자(왼쪽부터)
안 의원이 전세를 든 ㄷ아파트에 가보니, 아파트 현관문 옆에 붙어 있는 도시가스 검침계는 지난 6월부터 아무런 사용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검침원이 ‘미사용’이라고 적어뒀다. 또 4월 총선 때 경쟁했던 이목희 전 민주당 의원이 안 의원을 상대로 서울고등법원에 낸 선거법 위반 혐의 관련 재정신청 접수 통지서도 10월21일과 11월11일 ‘폐문부재’(문이 잠겨 있고 사람이 없음)를 사유로 반송됐다.
이 아파트에 ‘생활의 흔적’이 적다보니, 일부 주민들은 안 의원 자신도 이곳에서 자주 살지 않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반면 한 60대 주부는 “아침에 손자를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안 의원이 집에서 나와 경비원한테 인사하고 기다리던 까만 승용차에 타는 걸 봤다”고 했다.
안 의원의 설명은 이렇다. “선거 전날 아이가 전학 스트레스 때문에 몸이 많이 아팠다. 상대 후보들한테 공격받을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아픈 자식을 데려올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2학년인데, 큰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는 내년 말엔 지역으로 데리고 올 계획이다. 나는 지역 주민들한테 최대한 성의를 보이려고 홀아비처럼 아침도 못 먹고 다니면서, 가족들은 주말에만 만난다. 집사람이 왔다갔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설명해도 변명으로 느낄 것 같아 주민들을 만나지 않는다.” 취사는 혼자서 라면을 끓여 먹는 정도라 도시가스를 연결하지 않고 휴대용 가스렌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보통 오전 6시50분에 나와 밤 12시에 들어가기 때문에 집배원이 오는 시간에는 집이 비어있다는 해명도 덧붙였다.
서울 동작을이 지역구인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도 ‘두 집 살림’을 한다. 울산동 지역구에서 이곳으로 지역을 옮겨오면서 동작구 사당동에 아파트 전세를 얻었는데, 지역구 활동을 강화하겠다며 최근 아예 집을 구입했다. 하지만 정 의원은 원래 살던 종로구 평창동 집에서도 여전히 생활한다. 정 의원 쪽은 “평창동에 학교 다니는 애(중학생)가 있어서 가족이 다 옮겨오지는 못했다. 반반 정도 양쪽을 왔다갔다 한다”고 말했다.
거주지와 주소지를 오가는 의원들은 비단 이들 뿐만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의 한 초선의원은 “주거나 교육환경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지역구의 경우 의원들이 원래 살던 강남 등지의 집을 고수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들이 ‘두 집 살림’을 하는 건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공직선거법은 국회의원의 거주지를 제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관용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보담당관은 “지역을 위해 일하는 지방의원과 달리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기 때문에 꼭 해당 지역구에 살아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위장전입이라고 해도 주민등록법 위반은 될 수 있어도 선거법과는 무관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역 발전을 약속한 국회의원이, 그것도 국회와 지역구의 거리가 멀어 어쩔 수 없이 집을 새로 장만해야 하는 것도 아닌 서울 지역 의원이 보이는 이런 모습은 유권자들이 ‘배신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동작을의 한 주민은 “정몽준 의원의 첫 번째 공약이 ‘교육 동작’이었는데, 정작 자신의 아이는 전학을 못 시키겠다는 걸 보면 왜 이 지역에 출마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안형환 의원의 주소지 아파트와 같은 동에 사는 한 주부는 “총선 때 지역 발전 공약도 많이 내놨고 강남 살던 사람이 우리 지역으로 이사를 온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결국 안 와서 실망했다. 인근에서 제일 큰 평수의 아파트까지 계약해놓고 왜 안 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역구 의원 공천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염경형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정책실장은 “지역구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지역 대표성도 띠고 있다. 선거 때도 사실상 지역 연고를 강조해 당선되는 것 아니냐”며 “거주지는 따로 있으면서 연고, 당선 가능성 등에 따라 공천을 받는 건 옳지 않다. 해당 지역구에서 철저히 인물을 검증하고, 그곳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판단된 사람을 공천하는 ‘상향식’ 공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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