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관들은 물러가시오.”
난감한 표정들이었다. 11월20일 아침 8시10분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를 찾은 검찰 수사관들은 결국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집행하지 못했다. 민주당 국회의원과 열성 당원들이 겹겹이 쌓아놓은 인간 바리케이드 때문이었다. 당원들과 함께 수사관들의 당사 진입을 막은 강기정 민주당 의원은 “(검찰이) 정말 집행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온 게 아니라 사진 찍기 위해 왔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식으로 집행하는 것은 협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이 언론 플레이를 한다는 것이 강 의원의 주장이었다.
세 번째였다. 검찰은 이미 11월12일과 16일에도 김 최고위원을 검찰로 데려가기 위해 민주당을 찾았다. 물론 그때마다 검찰은 민주당의 실력 저지에 막혀 번번이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지고 있는 쪽은 검찰이 아니라 민주당이다. 초조한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다. ‘김민석 구하기’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최고위원의 버티기가 본격적인 이슈로 떠오른 직후(11월19일) 소개된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의 정당 지지도는 8.5%였다. 경제위기에 대한 정부의 서툰 대응과 이명박 대통령의 독주를 감안하면 제1야당의 지지도가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다는 사실은 심각한 징후로 읽힌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민주당 스스로 자신들이 왜 존재해야 하는 정당인지, 그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민은 그런 민주당을 비판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아예 무의미한 정당으로 본다는 뜻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대다수 국민은 법질서와 민주주의의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김민석 최고위원 사건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은 법질서에 대항하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야당 탄압 표적 수사’라는 민주당의 주장이 검찰과 한나라당에서 제기하는 ‘법질서’ 프레임에 막혀 별다른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박주선 의원 “수사 협조하되 불구속” 절충안야당 탄압과 법질서 무시라는 두 개의 프레임 가운데 여론이 후자 쪽으로 반응하는 것은 주인공이 김민석 최고위원인 탓도 있다. 검찰로부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김 최고위원은 2002년 서울시장 선거 직후에도 같은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게다가 2002년 대선 때는 ‘철새’ 행보를 보여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야당의 유력 정치인을 먼지떨이식으로 뒤지는 검찰 행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김 최고위원은 일단 검찰 수사에 떳떳하게 응해야 한다는 보는 것이다.
민주당이 갑갑함을 호소하는 지점도 여기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언론들이) 아무리 김민석이 밉더라도 검찰의 표적 수사는 그것대로 다뤄줘야 한다”며 “현재는 외부 여론이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언론이 검찰의 표적 수사를 제대로 조명해주면 여론도 움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민석 구하기’에 박주선 최고위원이 전면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 세 번 구속됐다가 세 번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박 최고위원은 검찰의 표적 수사에 대해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11월17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김민석 최고위원이 수사 협조와 재판 출석을 약속하면 당 지도부가 이를 보증하는 ‘신원보증’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박 최고위원은 과의 인터뷰에서도 “검찰이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고 김 최고위원도 혐의를 받고 있어 국민적 지지를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도 “현행 형사소송법에서는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으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만큼 표적 수사가 아니라면 불구속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김민석 구하기’에 대한 명분을 야당 탄압이라는 사실에서 찾고 있지만, 외부에서는 민주당 구성원들의 밥그릇 지키기 투쟁으로 본다는 주장도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도부가 쌀 직불금 파동 등 서민 생활과 직접 관계된 이슈에 대해 이처럼 강하게 나간 적이 없었다”며 “김 최고위원에 대한 수사를 지켜보면서 자신의 거취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이 서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민주당에서는 “김 최고위원을 내주면 검찰은 임시국회가 끝난 뒤 김재윤 의원도 구속하려고 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김민석 구하기’에 대한 당 안팎의 여론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민주당이지만 당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일단 강경 대응의 중심에 있는 정세균 대표가 스스로 물러설 명분은 없다. 김민석 최고위원 사건이 본격적으로 확대된 것은 정 대표가 10월25일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회담을 마치고 나온 직후인 10월29일이었다. 당시 회담에서 정 대표는 이 대통령에게 경제 살리기에 대한 초당적 협력을 약속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곧바로 김 최고위원에 대한 검찰의 영장청구가 이어졌다. 해석하기에 따라 정 대표가 정통으로 뒤통수를 맞았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옛 민주계를 끌어안아야 하는 당 대표로서는 김 최고위원을 최대한 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옛 민주계는 평소에도 주요 당직에서 배제되는 등 당내에서 소외돼왔다는 불만을 터뜨려왔다. 이번 사건만 보더라도 특히 열린우리당 출신 국회의원들은 김민석 최고위원 지키기에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주장이 옛 민주계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정 대표가 김 최고위원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당사를 가능한 한 자주 찾으려 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또 한 차례의 표적 수사 논란 예고민주당에 대한 검찰의 태도도 여전히 강경하다. 이와 관련해 11월19일 대검 중수부가 김형진 세종캐피탈 회장을 긴급체포한 장면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김 회장은 2005~2006년 상장법인인 ㅎ사의 주식을 거래하며 시세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문제는 검찰이 수사를 개시한 시점이다. 검찰이 이 사건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것은 2~3년 전이었기 때문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당시 김 회장이 세종증권을 농협중앙회에 넘기는 과정에서 참여정부 실세였던 ㅇ씨와 ㅁ씨,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까운 ㄱ씨 등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불거졌었다. 수사 개시 시점과 거론되는 인사들의 면면을 볼 때 또 한 차례의 표적 수사 논란은 불가피하다.
당 안팎의 환경을 감안한다면 ‘김민석 딜레마’에 대한 해법은 결국 김 최고위원 본인이 찾을 수밖에 없다. 구속영장 유효기간이 만료된 11월21일까지 당이 김 최고위원을 보호해왔다면, 그 이후에는 김 최고위원이 당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이 마침 11월21일 오전 영장집행 불응 방침을 철회하고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응하겠다고 했다. 법원에서는 김 최고위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다시 발부할 가능성이 높다. 김 최고위원이나 민주당으로서는 얻은 것은 없고 체면은 구길 대로 구긴 셈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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