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발동 걸린 대선주자들] 박근혜, 여유로운 만남과 학습

경선 패배의 교훈 새기며 언론 쪽 인사들 두루 만나… 의견 표명 없이 조용히 지켜보는 자세
등록 2008-09-11 17:33 수정 2020-05-03 04:25

“한마디로 여유가 있다.” 최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만난 여당 의원들과 정치권 인사들은 박 전 대표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그 여유는 ‘차기 대권’에 대한 자신감에서 올 것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한겨레 강창광 기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한겨레 강창광 기자

친박 모임에 ‘중립’ 의원들도

박 전 대표의 요즘 일상은 ‘만남’과 ‘학습’으로 요약된다. 만남의 대상은 주로 전문가들이라고 한다. 외교 쪽 인사들과 언론 쪽 인사들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9월3일에는 오는 9월18일 한국을 떠나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를 따로 만났다. 그 자리에서 박 전 대표는 “한국을 위해 정말 많은 것을 해주셨다”며 격려와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버시바우 대사가 공식 퇴임 일정을 시작하고 단독으로 만난 ‘전직’ 인사는 그때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했다고 한다. 박 전 대표의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언론을 중시하는 것은 지난번 경선 패배의 교훈 때문이다. 당시 패인은 여론조사였다. 여론조사에서 졌다는 것 자체가 언론 환경이 나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다. 친박 계열의 한 초선 의원은 “박 전 대표는 지난해 경선에서 언론 환경이 본인에게 매우 불리했다고 봤다”며 “최근에는 언론계 중진들을 중심으로 한 모임에 종종 참석해 의견을 듣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런 자리에서는 자신의 뜻을 말하기보다는 주로 듣는 편이라고 한다. 자신의 말이 외부로 나가는 것을 막자는 뜻도 있다.

‘조용히 지켜보자’는 것으로 설정한 이명박 정부와의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대변인 격인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집권한 만큼, 이 대통령이 본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조용히 지켜보겠다는 것이 박 전 대표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간섭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친박’으로 불리는 의원들에게 “별도로 모임을 열지 말라”고 지시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친박’이라는 이름으로 뭉치고 모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주류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박 전 대표가 최근 3주 연속으로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 불참한 것도, 새로 구성된 당 지도부에 대한 배려였다고 한다. 친박 쪽의 한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참석하면 방송사 카메라와 기자들의 질문은 모두 박 전 대표 쪽으로 몰리니, 안 가는 것이 최대한의 배려인 셈”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친박 의원들의 이해는 다르다. 비주류라는 것도 서러운데, 흩어져 있으면 불안하다. 자연히 모인다. ‘여의포럼’과 ‘선진사회연구포럼’ 등이 대표적이다. 박 전 대표도 공식적으로는 “모이지 말라”고 했지만, 정치 동지들인 이상 챙기지 않을 수는 없다. 여의포럼이 생긴 뒤로 3번 정도 모임에 참석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중립’으로 분류되던 의원들도 이들 모임에 참석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 정치에서 계보 형성의 가장 큰 구심력은 ‘재선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념 좌표, 중도우파 개혁?

박 전 대표 쪽은 최근 새로운 이념 좌표 설정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박 전 대표의 텃밭은 영남과 충청권이다. 수도권과 호남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 지역을 잡기 위해서는 보수의 이미지로는 힘들다는 결론이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이명박 대통령과는 달리, 박 전 대표는 좀더 개혁적인 정책을 내세워도 보수 본류의 반발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며 “중도우파 개혁적인, 서민지향적인 노선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과연 실험을 할까?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