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이명박의 경쟁력 아냐… 삶과 직결된다고 받아들여지면 기존 담론 압도할 수도
▣ 김윤재 정치컨설턴트·미국 변호사
대선을 앞두고 도덕성 논란이 한창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도덕성이 선거판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이 논란이다.
올 대선의 마지막 변수가 될 거라는 ‘BBK 사건’은 별개로 하고라도 외로이(?) 선두를 달리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도덕성 문제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선거법 위반으로 인한 의원직 박탈은 물론이고 자녀들의 위장전입과 위장채용 등은 이미 사실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이 후보의 지지율에 영향을 미친 흔적은 별로 없다. ‘미스터리’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는 유권자가 후보의 도덕성을 평가하고 지지에 반영할 때에는 전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선거의 주요 담론 속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상대적 중요성, 즉 우선순위를 따진다. 또한 후보별로 다른 기대치를 갖고서 거기에 맞는 잣대로 도덕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에게 위장전입, 위장채용 등의 문제는 지지율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왜 그럴까. 2002년 이회창 당시 대선 후보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 후보가 무개차 위에서 유세를 벌이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정우 기자)
다른 기대치, 상대적 평가
미국의 예를 보자. 1972년 대선. 반전을 기치로 민주당 후보가 된 진보정치인 조지 맥거번은 음모스럽고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평가받던 리처드 닉슨에 참패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이미 벌어진 상태였다. 맥거번은 이를 쟁점화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닉슨 개입 의혹은 그야말로 의혹이었고, 이 사건은 반향을 얻지 못했다. 72년 대선은 닉슨의 도덕성이 아닌 60, 70년대 미국을 뜨겁게 달궜던 민권, 반전, 진보 등에 관한 선거였다. 닉슨은 ‘법과 질서’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를 경계했다. 미국민은 맥거번보다는 닉슨이 베트남전도 안정적으로 종식시키고 사회 내부의 질서도 잡을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빌 클린턴은 가장 흠결 많은 후보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정치 어젠다와 경제 메시지에 집중하면서, 선거는 후보 개인의 도덕성이나 과거가 아니라 후보가 실현하고자 하는 어젠다에 있음을 설득했다. 국민은 자신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 같은 그의 눈빛에 설득당했다. 클린턴은 임기 내내 도덕성에 대한 각종 조사에서 국민의 불신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업무수행에서는 거짓말이 탄로나 탄핵 절차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다른 역대 대통령 못지않은 높은 점수를 받았다. 클린턴의 도덕성이 바람직하지는 못하나 그의 업무능력이 자신들의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한국의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97년과 2002년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이 치명적 타격을 입힌 이유는 그를 판단하는 기준을 대쪽 같은 도덕성에 맞추었다는 데 있었다. 도덕성으로 기대를 받은 후보가 도덕성에서 흔들리는 것은 상업적으로 비유하자면 커피숍에 커피가 떨어진 상황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경제능력을 내세운 후보가 그의 경제능력에 대해 의심을 받는다면 다른 어떤 이슈보다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도덕성은 이명박 후보의 경쟁력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내 경선 중에 “나는 그렇게 큰 죄를 지은 적이 없다”라는 식의 발언을 했던 기억이 난다. 도덕성에 관한 한 국민의 기대치를 낮춰온 것이다.
동시에 국민이 바라보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도 한몫을 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이지 흙탕물을 옷에 묻히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는 일부 언론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객관적 기준으로 덜 묻은 사람을 평가해주는 것이 아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기대치가 다른 것이다. 도덕성을 앞세운 정치를 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무능한 세력의 재집권 전략은
사회가 깨끗해지고 투명해진 것도 도덕성이 큰 이슈가 되지 못하는 이유다. 현 정권의 부패나 도덕성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개선된 상황에서 이는 관심사가 아닌 것이다. 한반도 평화가 큰 쟁점이 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당면 과제라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절박함이 사라지게 된다. 오히려 이러한 사회적 발전이 시스템적으로 누가 집권을 해도 어느 정도의 투명성을 보장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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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 이것이 이명박 후보의 지지를 합리화하는 이유로 활용된다. 안심하고 도덕성을 보지 않고 경제성장 능력만 보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 경제 성장의 담론 위에 이명박 후보가 있는 것이다.
경제성장과 함께 이번 대선의 주도적 담론은 현 집권세력에 대한 평가라 할 수 있다. 이것의 응집력은 처음부터 야당 후보군의 도덕성 문제를 쟁점화하지 못하는 조건을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유권자는 대선에서 두 단계를 거쳐 후보를 선택한다. 첫 번째가 현 집권세력에 대한 재신임 여부다. 불신임을 결정하면 그 다음의 질문이 야권세력은 대안이 될 수 있는가다. 이 질문에 그렇다는 답을 하지 못하면 그래도 몇 년을 겪어본 집권세력에게 다시 돌아온다. 차악의 선택이 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동서를 막론하고 국민에게 거부당한 집권세력이 재집권을 하는 길은 상대가 우리보다 더 무능하거나 불안한 세력임을 각인시키는 차악의 선거를 치르는 것이었다.
96년 러시아의 옐친이나 2004년 부시는 이렇게 해서 재선에 성공했다. 88년 아버지 부시 역시 레이건의 8년 집권으로 인한 공화당에 대한 권태를 듀카키스의 인격적 파괴(?)를 통해 해결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선거구도가 일방적 격차를 허용하지 않게끔 되어 있었다. 또한 선거법적 제한을 걱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다양한 방식의 캠페인 전개가 가능했다.
지금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여권은 공학적으로라도 경쟁해볼 수 있는 이 두 가지가 모두 결여된 상태다. 따라서 상당수의 중간층 유권자는 이명박 후보에게 도덕성 논란이 불거져도 그를 떠나서 갈 곳이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다른 대안이 없다고 결론 내리는 순간 유권자는 자신들의 선택을 합리화하고 공고히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도덕성 문제는 뻔한 얘기나 상대의 네거티브 전략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이번 선거와 같은 경우 도덕성 문제는 의미가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대선에서 유권자는 캠페인 과정을 통해 후보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져 답을 구하려 한다. 하나, 강한가. 둘, 신뢰할 수 있는가. 셋, 나 같은 사람을 돌볼 사람인가. 지금과 같은 담론이 주도하면 도덕성은 이 세 가지 질문의 답에 큰 영향을 미치게 않게 된다. 그러나 후보의 도덕성이 삶과 직결되는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기존의 담론을 압도하게 될 수 있다. ‘프레임’의 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다른 후보군이 대안으로서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전제는 대안의 조건을 갖추는 것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민은 수많은 도덕성 논란에도 68, 72년 닉슨과 92, 96년 클린턴을 선택했다. 두 사람에 대한 선택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클린턴은 미국의 경제번영을 주도하면서 비록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 해도 국정운영과는 구분하면서 국민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반면 닉슨은 워터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탄핵 직전에 스스로 사임했다. 미국민에게 충격과 치욕을 안겨주었고 공화당은 붕괴 직전의 위기 상황까지 맞았다. 이처럼 후보의 도덕성 논란이 집권 뒤 어떤 결과를 만들지는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그에 따른 결과는 유권자가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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