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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표, 신경 써야 될걸요”

등록 2007-11-09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지난해부터 선거권 갖게 된 만 19살 이상의 정치 참여 운동 ‘파워(Power) 19’</font>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깃발은 없었다. 20년 전과 달리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도 없었다. 저마다 바쁜 걸음을 옮겼다. 학생들은 도서관으로 강의실로 쉼없이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그 속에서 ‘대학희망’(지부장 김선경) 동아리 회원인 연세대 1학년 최민경(19)·박유미(18)·신정은(18)씨와 3학년인 백윤석(20)씨는 지나가는 학생들을 붙들어 세웠다. 스티커를 건네받은 학생들은 잠깐씩 생각하더니 ‘등록금 인하’ ‘대학교육의 내실화’ ‘취업 문제’ 등으로 나뉜 이동 게시판의 커다란 동그라미 안에 스티커를 붙이곤 다시 흩어졌다.

“맘속 요구 얘기하지 않았을 뿐”

지난 10월31일 대학희망 회원들의 양손에 들린 큰 알림판엔 ‘파워(Power) 19’가 선명했다. 그 아래엔 “지난해부터 선거권을 가지게 된 만 19살 이상의 젊은 세대들의 힘을 상징하는 정치참여 운동이며, 이번에는 우리 사회에서 대학생들의 그것을 하나로 모아내는 대학생 요구운동이 될 것입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대학희망은 서울 지역 7개 대학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사회체험 연합동아리다. 이들이 펼치는 ‘파워 19’ 운동은 대학생들의 요구를 모아 올 12월19일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 정책 의제를 제시하는 걸 목표로 한다. 지난해엔 5·31 지방선거에 앞서 만 19살의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대학생 1만 명으로부터 투표를 다짐하는 서명을 받았다( 610호 표지이야기 ‘열아홉, 너희 능력을 보여줘!’ 참조).

이들은 10월13일 발대식을 시작으로 다시 움직였다. 10월15일에서 24일까지 강의실을 돌며 참여를 호소했다. 대학생들이 정치권에 뭘 요구하는지 설문지를 돌려가며 조사도 벌였다. 그리고 10월25일부터 본격적으로 경희대, 동덕여대, 성공회대, 건국대, 서울교대, 연세대 캠퍼스 내 선전전을 벌였다.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club.cyworld.com/power19)을 통해서도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학생 각자가 맘속에 요구할 게 있어도 얘기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최민경씨는 대학생들이 목소리 없는 정치적 무관심층이라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았다.

“투표권이 있는데도, (정치권은) 대학생들이 뭘 원하는지 고려하는 모습이 없어요.” ‘표’를 좇는 현실 정치권이 대학생들의 정치적 요구를 무시한다고 신정은씨는 말했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엔 대학생들을 위한 게 없다. 그러니 학생들의 관심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투표율도 낮아진다.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문제는 학생들로 하여금 정치에 참여할, 투표할 계기가 없다는 거다.” 박유미씨는 문제의 본질을 짚어냈다.

등록금 인하·취업 보장 가장 바라

그래서 이들이 찾아낸 나름의 답은 대학생들의 요구를 모아 현실 정치권에 정책으로 제안하는 것이다. 권리는 요구하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의 실천이다. 요구는 숫자가 늘고 집합될수록 힘이 커진다. 11월1일 현재 대학희망 동아리 회원들은 대학생 5094명의 요구를 수렴했다. 대학생들의 정치적 요구는 그들이 처한 현실적 조건을 그대로 보여줬다. 가장 큰 요구는 등록금 인하였다. 4216명의 학생들이 등록금 인하에 스티커를 붙였다. 그 다음은 취업보장 문제(3131명) → 대학교육의 내실화(1737명) → 교통비 인하(1659명) → 군대 문제(1418명) → 문화생활 콘텐츠 활성화(974명) → 비정규직 문제(845명) → 학력차별 철폐(704명) → 학자금 대출 이자 인하(598명) 등의 순으로 이어졌다. 조사 참가자 1명이 3개의 항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대학희망이 파악한 대학생의 정치적 요구가 엄밀한 조사를 거치지는 않았지만 나름으로 충분한 대표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여러 대학을 돌아다니며 많은 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직접 대면조사를 했기 때문이다.

대학희망 블로그의 ‘내가 바라는 정책 토크’ 코너에선 체계적으로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대학생들이 뭘 원하는지 구체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수호씨는 ‘학자금 이자 때문에 걱정?’이란 제목으로 올린 글에서 두 번이나 학자금 대출을 받은 자신을 예로 들면서 현재 330만원인 한 학기 등록금이 해가 갈수록 천정부지로 오르는 상황에서 은행의 학자금 대출 대상자 선정 방식 등의 문제를 꼬집었다. 봉인권씨는 대선 후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취업과 교육만을 얘기한다며, “등록금, 교통비 인하와 같은 대학생들의 삶 그 자체를 반영하는 요구”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조사 목표치인 1만여 명의 학생 요구가 집합되면 이런 제안들이 정책으로 다듬어져 대선 후보와 정당에 제출될 예정이다. 굳이 따지자면 정치판 소비자 운동이다. 대선을 앞두고 몇몇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런 움직임들이 있지만, ‘파워 19’ 운동처럼 특정 계층이나 집단이 직접 나서 자신들의 요구를 모아내 정치권에 전달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다.

여의도란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지만, 학생들한테 정치란 어감은 너무 멀다. 낯설다. 그래서 대학 희망의 ‘파워 19’ 운동의 본질적인 과제 중 하나가 정치권과 거리 좁히기다. 대학희망이 자체 제작한 ‘대학생도 사회의 주인, 우리의 요구도 들어줘!’란 홍보물은 “‘파워 19’ 운동의 가장 큰 의미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대학생들에게 정치란 어려운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주는 활동”이라고 적고 있다. 그렇다고 특정 후보나 정당의 지향성을 드러내진 않는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에서부터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까지 특정 정당과 후보를 지지하는 대학 내 모임과 조직과는 성격이 다르다. 쉽게 어느 게 낫고 어느 게 나쁘다고 할 순 없다. 다만 백윤석씨는 캠퍼스 분위기에 대해 “대학 안에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모임과 단체도 있지만, 다수의 학생들은 그들과의 접촉을 불편해한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전체 학생들의 목소리를 묶어내려는 ‘파워 19’ 방식의 운동이 폭넓게 학생들과 접점을 찾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쉬운 길임엔 틀림없다.

콘서트와 퍼레이드, 재미있는 운동

대학희망 학생들은 재미없는 운동은 거부한다. 콘서트와 퍼레이드를 벌여 더 많은 학생의 참여를 유도할 참이다. 11월9일 홍익대 롤링홀에서 예정된 공연은 철저하게 공연 중심이다. 정치참여 운동의 메시지는 공연의 전체 2시간30분 중 오프닝 영상 상영 등 30분에 불과하다. 분명 20년 전 아니 10년 전과 다른 형식과 내용의 정치참여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강도가 약해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찌됐든 학생들이 주체가 되는 밑으로부터의 정치참여 운동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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