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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로 싸울까, 한나라당에 달렸다

등록 2007-10-19 00:00 수정 2020-05-03 04:25

국내 정치용이냐 소신 발언이냐, 한나라당 대응 수위가 쟁점화 변수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2007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리에 마감한 뒤, 한국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53%까지 치솟았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에 근접한 유일한 정치인은 노 대통령뿐”이란 뼈 있는 농담이 나온 이유다. 임기를 불과 넉 달여 남겨둔 현직 대통령으로선 싫지 않은 평가일 게다. 만족을 못한 걸까? 노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는 끝이 없다.

“대통령이 NLL에 대해 이상한 말 해”

“북방한계선(NLL)은 헌법이 규정한 영토 개념이 아니다. 이것을 오늘에 와서 ‘영토선’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다.” 10월11일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주요 5개 정당 대표단을 초청해 마련한 오찬 간담회장에서 노 대통령이 한 발언이 다시 주요 일간지 1면을 장식했다. 당연한 수순인 양 한나라당이 발끈하고 나섰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이튿날인 10월12일 국회에서 열린 전국위원회에서 “대통령이 느닷없이 NLL에 대해 이상한 말을 했다”며 “황당한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정신이 계시는 분인지 모르겠다”고 비난했다. 노 대통령은 왜 이런 발언을 한 걸까?

“북방한계선 문제를 풀려는 진정성도 있겠지만, 국내 정치에 개입하려는 의도도 깔린 게 아니겠나?” 노 대통령의 NLL 발언을 ‘국내 정치용’으로 분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노 대통령이 NLL에 대해 “처음에는 우리 군대의 작전 금지선이었다”고 말한 것은, 다분히 한나라당을 자극하기 위한 계산된 발언이란 게다. 이런 해석을 내놓는 이들은 “한나라당이 이 문제를 거론하면 할수록, NLL 문제가 대선 쟁점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물론 이런 상황을 노 대통령이 예상했다는 게 전제다.

두 번째 해석은 노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에 근거를 둔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10월12일 정례 브리핑에서 전날 열린 정당 대표단 초청 간담회 발언록을 공개했다. 천 대변인은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먼저 ‘헌법과 배치될 수 있는 NLL 문제에 유념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며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이 ‘NLL은 헌법이 규정한 영토 개념이 아니다’라고 반박한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의도된 도발’이 아니라, 법률 전문가인 노 대통령이 강 대표의 발언에 대해 ‘평소처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강조했을 뿐이란 얘기다. 실제로 천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NLL은 실질적인 해상 경계선이며, (남북 간에) 어떤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이 선을 확고히 지킨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새삼 강조했다. 한나라당으로선 반박하고 말 내용이 없는 셈이다.

“헌법이 ‘한반도와 부속도서’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규정한다고 북녘 땅이 대한민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영토는 아니지 않나.” 청와대 출신의 한 북한전문가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일 뿐”이라며 “노 대통령이 NLL을 ‘우리 해군이 못 올라가는 선’이라고 방점을 찍은 것도 그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선정국 수류탄에 말려들지 않겠다?

북한이 NLL 등 이른바 ‘근본 문제’를 제기할 때는 통상 불리한 협상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위한 포석일 때가 많다. 남북 정상이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에 합의한 마당에 다음달 국방장관 회담에서 북쪽이 해상경계선 획정 문제로 판을 흔드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많은 이유다. 실제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NLL 문제를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싼 파문은 이대로 끝나는 걸까?

한 가지 변수는 있다. 한나라당의 대응 수위다. 이와 관련해 박형준 한나라당 대변인은 10월12일 논평을 내어 노 대통령의 발언을 “대선 정국에서 또 다른 갈라치기를 노리고 수류탄을 던졌다면 이는 근본적인 오산”이라며 “이 수류탄도 대연정 제안 때처럼 청와대와 여권에 떨어지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로선 말려들지 않겠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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