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출마 선언 후 범여권 지지자들 추스리고 있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지난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선거를 영화에 빗댔다. 400여억원(공식 선거운동비)의 제작비를 들여 영화를 찍고 개봉일인 12월19일(투표일)에 관객이 많이 드는 쪽이 이긴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감독과 배우·스태프, 무대와 이미지·메시지·테마라는 구성 요소들이 비슷하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감독’이었던 이 전 총리가 이번에는 ‘주연’이 되겠다고 나섰다.
그는 “누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될지는 몰라도 이회창 후보에 비해 약체인 점은 분명한 만큼 역대 선거보다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 쪽이 진영을 갖추고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세우면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언론에 보도된 각종 여론조사의 ‘비관적인’ 지지율에 대해서는 “응답률이 낮은 조사는 객관성이 낮아 여론을 제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집권을 위한 창당, 숨길 일 아니다
범여권의 대통합신당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특정 정당의 집권을 반대하는 것이 신당의 정체성인가.
=대통령 선거 때가 아니라면 노선 논의가 많이 돼야 하지만 지금은 선거를 앞두고 연합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국민경선을 위해 정치 연합을 하자는 것이다. 역대 세 차례의 선거에서 한 세력이 단독으로 집권한 적은 없다. 집권을 위한 정치 연합이다.
집권이 유일한 목표인가.
=그렇다. 숨길 일이 아니다. 집권을 위한 창당이다.
정치 연합이라도 집권을 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공감대는 있어야 하지 않나.
=그건 형성돼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제도화, 양극화 해소, 민주주의의 발전과 인재 양성, 국가 경쟁력 강화 등을 공감대로 가지고 있다. 한나라당과는 그런 점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지 않나. 한나라당은 이런 흐름에 역행한다. 대북정책 수정 등으로 따라오려고 애쓴다지만 양극화 해소에 소극적이지 않나. 지역주의 해소, 민주주의 발전 같은 문제에 보수적이거나 수구적이다.
정치 연합이 순조로울 것으로 보나. 여러 톱니바퀴가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데 쉽지 않아 보인다.
=통합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어떤 후보든 단독으로 출마해 한나라당을 이길 수 없다. 집권 목표가 없는 사람 혹은 세력만이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누굴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가. 통합의 걸림돌은 뭔가.
=통합할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통합하려는 대상이 서로 차이가 있는 부분을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통합으로 갈 수 있다. 반한나라당 세력을 다 모아야 겨우 이길 수 있다. 전체를 모으려 하지 않고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자기중심주의에 빠지니까 배제론, 해체론 등이 나오는 것 아닌가. 그게 걸림돌이다. 8월5일까지 통합을 하고 열린우리당과는 당 대 당 통합하는 쪽으로 논의되고 있다.
손학규 전 지사는 반한나라당 후보
손학규 전 경기지사도 정치 연합의 대상 아닌가. 이른바 범여권이 연합하자면서 손 전 지사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이유는 뭔가.
=손 전 지사는 반한나라당 후보이지 범여권은 아니라는 점부터 분명히 하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연합하는 거 아닌가. 차이가 없으면 통합을 하는 거지. 국민들이 경선에서 최종 선택하는 데 객관적 사실, 차이를 드러내 보이는 것은 나쁘지 않다. 살아온 길이 다르지 않나. 살아온 길, 정책과 철학을 보여주고 경선에서 평가받으면 된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너무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비판, 비난으로 비칠 수 있다. 손 전 지사는 국가 균형발전 정책 당시 공공기관 이전을 적극 반대했다. 난 총리로서 적극 추진했고…. 그는 수도권 규제 완화도 총량규제로 전면 풀자고 주장했다. 그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총리는 출마 선언을 하기 전까지 대통령을 목표로 정치해오지 않았고 나는 감이 아니라는 자세를 견지해왔다. 출마하기로 결심한 배경은 뭔가.
=대통령을 목표로 정치해본 적이 없다. 대선보다는 남북관계,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드는 것이 나나 국가를 위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고건 전 총리,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그만두는 것을 보면서 고민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을 길이 막막하고 범민주개혁 세력이 결집하지 못한다고 출마를 강하게 권유하는 분들이 많았다.
출마하지 않고 다른 후보를 도울 수도 있지 않나.
=전체적으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역사성을 지키고 정통성을 갖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운영하고 집행한 정책을 옳게, 겸허하게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 피해갈 수 없다. 또 여러 세력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통합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그런 역량을 두루 갖춘 후보가 보이지 않았다. 후보는 상당한 인내력과 뚝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 주체가 강하고 뚝심 있어야 어떤 상황이 발생하고 변수가 생겼을 때 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역대 선거가 다 그랬다. 1997년 DJP(DJ(김대중)+JP(김종필))만으론 지고 있었다. DJ라는 후보에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라는 상황이 발생해 이겼다. 2002년에는 노무현이라는 정통성 있는 후보가 있었고 월드컵으로 부상한 정몽준과의 연합이 있었기에 이길 수 있었다.
한나라당 후보, 누구든 이회창 보다 약체
유시민 전 장관의 출마 여부를 두고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논쟁이 일고 있다.
=유 전 장관은 이미 독립된 정치인이다. 장관을 지냈고 재선 국회의원이다. 내 보좌관을 지낸 건 15년 전 일이다. 우리는 서로 존중하는 사이다. 그분이 잘 판단할 것이다.
범여권의 후보는 넘쳐나는데 지지도는 한나라당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통합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국민경선이 흥행에 성공한다고 해도 집권 전망이 밝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나.
=질문의 전제가 잘못됐다. 여론조사의 응답률이 30% 이하면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 프랑스나 미국은 여론조사 검증위가 따로 있어 응답률이 30% 이하인 여론조사는 언론에 공표하지 못하게 한다. 국민을 현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증위가 설문 설계, 샘플, 응답률 등을 조사한다. 현재 발표되는 각종 여론조사는 응답률이 10%, 20% 수준인 것도 많다. 객관성이 떨어지고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어떤 조사를 보니 ‘이명박 전 시장의 여러 의혹이 사실이라고 본다’가 60% 정도 되면서 지지율도 높게 나왔다. 골수 지지자들의 응답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 쪽 지지자들은 진영이 갖춰지지 않아 당이, 후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어떻게 조사에 응할 수 있겠나. 그리고 누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될지는 몰라도 (지난 대선의) 이회창 후보보다 약체인 점은 분명하다. 역대 선거보다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본다. 우리 쪽이 진영을 갖추고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세우면 이길 가능성이 높다.
역대 선거는 여론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응답률이 올라간다. 현재는 응답률이 매우 낮다. 여론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70% 정도 되면 조사가 제대로 될 수 없다.
이 전 총리의 지지도가 낮기 때문에 여론조사의 객관성을 문제 삼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캠프 차원에서 조사한 결과는 다른가.
=한나라당이나 우리나 각각의 지지 기반은 견고하다. 사회 조건이 크게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지 기반도 여전하다. 앙시앵레짐(구체제)과 개혁을 바라는 쪽의 구분이 뚜렷하다.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개혁을 바라는데 실리적 개혁을 원한다는 것이다. 사회 전체가 공정하고 투명해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한테도 좀 도움이 돼야겠다는 것이다. 이념적 개혁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는 개혁을 바라는 목소리를 심층 인터뷰 방식의 조사로 들을 수 있었다.
이명박, 싸움을 딴 곳으로 돌리나
최근 이명박 전 시장과 관련해 “한 방이면 간다”고 했는데 무슨 근거가 있나.
=굳이 내 입으로 얘기해야 하나. 언론에서 이미 보도하지 않았나. 신문에서 거의 보낸 거 아닌가.
국가정보원 직원이 이명박 전 시장의 개인정보에 접근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상업 전 국정원 제2차장 등이 고발당했다. 참여정부의 핵심 인사로서 공작정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부패척결 태스크포스(TF) 운영 자체를 잘못됐다고 하는 주장은 정말 엉뚱하다. 국가기관이 부패척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나. 공작정치를 한다고? 참여정부가 정치사찰을 한 사례가 있나. 이명박씨가 자기 범죄사실이나 잘못된 사실이 거론되지 않게 하려고 싸움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일부 언론은 본질과 관계없는 경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도둑을 잡았더니 도둑이 뭘 훔쳤는지는 관심 없고 경찰이 왜 교통신호를 위반하면서 잡았느냐고 따지는 꼴이다. 나도 대통령이 보는 국정원 보고서를 다 봤다. 정치인이 관련된 보고는 본 적이 없다.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은 늘 논란이 돼왔다. 국정원이 정치 정보를 수집하면 활용하고 싶지 않겠나.
=정보 수집이 국정원의 기본 기능이다. 이름도 국가정보원 아닌가. 경제·산업·국방·안보·정치 같은 국내 정보가 없으면 어떡하나. 법에 따라 하는 것이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 한 달째다. 선거운동을 잘하고 있나. 지지자들이 늘어났다.
=지지와는 별 상관없고…. 주로 시·도 지부를 돌아다니면서 열린우리당 당원들을 상대로 강연을 많이 했다. 그동안 불안하고 침체돼 있었는데 얘기를 하다 보면 조금씩 기운을 차리더라. 1년 이상 표류하지 않았나. 뭘 해야 할지 당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고, 만날 누가 탈당한다, 당 해체해야 한다고 하니 힘들었다고 하더라. 신명나고 재미있는 강연을 하려 애쓰고 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요즘의 선거운동 중에서 뭐가 더 힘든가.
=마찬가지로 힘들다. 그런데 현재가 더 복잡하고 예민하다. 그때는 군부독재 세력을 퇴진시킨다는, 목표가 단순했다. 대선은 복잡하다.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는 4900만 명, 거기에 북한 동포까지 7200만 명이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안보 위협이 없고,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루고 문화적 풍요로움 속에서 살도록 하는 것은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큰 전쟁을 치르고 민족이 체제를 달리하며 분단돼 있는 나라가 또 있나.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총리나 대통령을 만나 얘기해보면 우리처럼 복잡한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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