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동 법안’과 ‘송영길 법안’으로 택시 기사 유혹하는 여·야…정작 법안 간 혜택 차이는 거의 없고 복지 예산은 삭감돼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택시를 잡아라!’
여야가 ‘택시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회의사당 본관에서 의원회관을 오갈 때도 ‘검정색 세단’을 이용해 ‘삼보불행’(三步不行·세 걸음 이상은 걷지 않는다)이라는 비꼼의 대상이 된 의원들이 실제 택시를 잡느라 애쓸 리는 없다. 택시 관련 법안들을 통과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
정치 재개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11개월 동안 택시기사 생활을 하고 그 애환을 책으로 내기도 했던 박계동 한나라당 의원이 열성이다. 박 의원은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해 3월29일에 제안했으나 지난 12월26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이 부결됐다. 이 법안은 택시운송 사업에 공급하는 액화석유가스(LPG)에 대해서는 특별소비세를 면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박 의원은 2004년 8월에 같은 취지의 법안을 제안한 바 있으나 그때도 부결됐다. 이 법안은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채택할 만큼 당 차원에서도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
‘택시를 지원했다’ 꼬리표 선점하기
택시에 각별한 애정을 쏟는 것은 한나라당만이 아니다. 열린우리당도 택시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여당은 지난 12월25일 박계동 의원의 법안에 대응해 “택시기사에게 유류세 인상분(2001년 1차 에너지세제 개편 기준)의 75%를 지급해왔던 유가보조금을 100%까지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은 2006년으로 끝나는 택시 운송사업자의 부가가치세 납부세액 경감제도(부가가치세 납부 세액의 50%를 택시 운수종사자에게 돌려주는 것)를 2008년 12월31일까지 2년간 연장하는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안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치인들의 택시를 향한 ‘러브콜’에는 이유가 있다. 박계동 의원실의 장웅조 보좌관은 “대선을 앞두고 ‘누가 택시를 지원했다’는 꼬리표를 달기 위해 정치권이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택시 종사자들의 ‘표심’을 잡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노동부와 택시연합회의 자료를 보면, 2003년 12월 현재 전국의 택시업체는 1779개이고 택시 종사자는 모두 29만2781명이다. 약 30만 명인데 역대 대선 결과를 보면 이 수치는 선거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정도다. 16대 대선에서는 39만557표가, 17대 대선에서는 57만980표가 당락을 갈랐다.
30만이라는 숫자도 적지 않지만 택시기사들의 영향력은 그 이상이다. 박계동 의원은 “택시기사는 이동하는 홍보요원이다. 경기를 체감할 수 있는 직업군일 뿐만 아니라 승객들과 대화를 하기 때문에 여론에 민감하다”며 택시기사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게 평가했다. 실제 정치권에서는 여론을 움직이는 중요한 직업군으로 언론,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 오피니언 리더뿐만 아니라 보험회사 직원, 택시기사를 꼽는다. 즉 택시 관련 법안은 ‘구전홍보단’인 택시업 종사자들과 그들의 전파력을 의식하고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통계청의 2003년 조사를 보면, 법인 택시기사의 월 평균 급여는 77만원, 일 평균 근로 시간은 10시간26분이다. 경기침체, 유가상승, 대중교통 수단의 확충 등으로 택시업계의 여건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따라서 택시업계를 지원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그 방법이 적합한 것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LPG 특소세 면제’ vs ‘유가보조금 100%’
박계동 의원의 법안은 택시 LPG 특소세를 면제해 택시 운전사들에게 그 혜택을 주자는 것이고, 여당은 유류세 인상분의 75%만 지급하던 유가보조금을 100%로 인상하자는 것이다. 현행 부가가치세 납부세액 경감제도를 2년 연장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지만, 2년 뒤엔 같은 논란이 재연될 수 있는 만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LPG 특소세를 폐지하면 택시 운전사는 ℓ당 226.06원을 시가보다 싸게 살 수 있다. 송영길 의원의 제안대로 유가보조금 지급을 100%로 인상하면 ℓ당 186.5원에서 32.27원 많은 218.77원의 유가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박계동 법안’이 ‘송영길 법안’에 비해 ℓ당 7.29원 정도 득이다. 하루에 40ℓ를 소비하고 한 달에 25일 택시를 가동한다고 치면 박 의원 법안이 한 달에 7290원 정도 이익인 셈이다.
그러나 택시 LPG 특소세 폐지는 다른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택시 LPG 특소세만 면제했을 때 면세 LPG와 과세 LPG를 어떻게 구별할지, 면세 LPG가 불법으로 유통될 경우 이를 어떻게 막을지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와 유사한 문제점은 면세유에서 드러난 바 있다. 현재 농업기계와 어업용 선박에 면세유를 배정하고 있는데, 폐농기계나 폐어선을 이용해 배정받은 면세유류구입권을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주유소와 결탁해 유류구입권을 매매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면세 LPG도 비슷한 문제점을 양산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택시만 LPG 특소세를 폐지하면 다른 운송업계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버스나 화물차 등 다른 운송업계도 면세를 요구할 수 있다. 만약 택시 이외의 운송업계가 사용하는 유류에 면세를 적용할 경우에 세수가 크게 줄어든다. 재정경제부 문경호 사무관은 LPG 특소세를 면제했을 때 세수 감소가 택시의 경우는 840억원이지만 이를 버스·화물차까지 확대 적용했을 때는 세수가 1조41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유가보조금 지급 기준을 인상했을 때 세수 감소는 920억원, 버스·화물차량까지 보조금을 지급했을 때는 2470억원 정도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유가보조금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최낙봉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정책부장은 “유가보조금의 경우 사업주가 돈을 받아서 근로자에게 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근로자에게 전달이 잘 되지 않고 보조금이 기사들에게 환급될 때까지 길게는 6개월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택시 기사들은 LPG 특소세 폐지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특정 계층에 대한 과도한 지원”
그러나 조세전문가들은 LPG 특소세 폐지 법안에 대체로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박기백 한국조세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특정한 상품의 가격을 다르게 하는 것은 가격 체계에 왜곡을 가져오기 때문에 소득 공제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좋다”고 지적했다. 현재 비과세 감면제도는 약 226개에 이른다. 2005년의 경우 비과세 감면 규모는 약 19.9조원으로, 2004년과 비교하면 1.7조원(9.3%)가량 증가했다. 조세 감면 규모가 1999년에는 국세의 13.9%였는데 2005년에는 14.5%로 증가했다. 이는 조세 감면의 증가율이 국세의 증가율보다 높다는 것을 뜻한다.
참여연대의 이상민 간사는 “이렇게 조세 감면 규모가 크면 세입 기반이 약화돼 재정 건전성을 위협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특정 계층에 대한 과도한 지원이 과세 형평을 저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박기백 실장은 “장애인이나 노후 소득 보장 등 꼭 필요한 곳에 비과세 감면을 하는 것은 옳지만 특정성이 강한 것은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12월27일에 통과한 2007년 예산안에서 사회복지 관련 예산은 991억원 삭감됐다. 택시기사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자고 경쟁을 벌였던 이들이 정말 열악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예산은 칼로 무 베어내듯 잘라버렸다. 대선을 앞두고 특정 이익집단을 겨냥한 선심성 법안은 결과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밥을 빼앗을 수도 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박종준 전 경호처장 다시 경찰 출석…김성훈 차장은 세번째 불응
경호처, ‘김건희 라인’ 지휘부로 체포 저지 나설 듯…“사병이냐” 내부 불만
중립인 척 최상목의 ‘여야 합의’…“특검도 수사도 하지 말잔 소리”
김민전에 “잠자는 백골공주” 비판 확산…본회의장서 또 쿨쿨
미 국가안보보좌관 “윤석열 계엄 선포는 충격적이며 잘못됐다”
연봉 지키려는 류희림, 직원과 대치…경찰 불러 4시간만에 ‘탈출’
“김건희가 박찬욱에게, 날 주인공으로 영화 한편 어때요 했다더라”
‘독감 대유행’ 예년보다 길어질 수도...개학 전후 ‘정점’ 가능성 [건강한겨레]
박종준 전 경호처장 긴급체포 없이 귀가…경찰, 구속영장 검토
25년 경호 공무원의 조언 “대통령 ‘개인’ 아닌 ‘공인’ 지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