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면 꼭 나오는 정치 이야기, ‘누가 돼야 한다’고 외치지 마시라…한나라당 집권 가능성 ·정치권 재편 등 내년 대선을 위한 대화 주제들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다음엔 누가 되는 거야?”
걱정이다. 명절 때마다 정치를 묻는다. 신문과 인터넷에 실린 기사를 관심 갖고 들여다봤다면 기자 못지않은 ‘혜안’을 가지고 있을 친척들이 자꾸 시험대 위에 올린다. 준비한 답은 “Who knows?”다.
내년 대선 즈음에도 현재처럼 양강(열린우리당·한나라당)과 군소정당(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중심당) 체제가 유지될 가능성은 적다. 정당 이름은 바뀌어도 윤곽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누가 대선후보가 될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차기 대통령을 어떻게 콕 집어내겠는가.
2002년 대선을 돌아보면, 투표 몇 시간 전에도 결과를 점치기 힘들 만한 돌발변수가 생기는데 1년3개월 앞을 어떻게 내다보겠는가. 2004년 4·15 총선 몇 달 전까지 ‘군소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할지 누가 예견할 수 있었나.
사실 오랜만에 모인 정겨운 자리에서 정치와 종교 얘기는 하지 않는 게 좋다. 둘 다 꼭 뒤끝이 좋지 않다. 과학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과 예측을 위한 투입 요소들을 달리 보거나 종교에 가까운 ‘신념’의 소유자라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고 장단을 맞추며 피하는 게 정신 건강과 가정의 평화에 도움이 된다. 그러기 힘들다면 사람을 두고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는가’(혹은 그 사람이어서는 안 되는가)를 놓고 다투기보다는, 몇 가지 주제로 화제를 바꾸는 게 낫다.
한나라당의 집권은 확실한가
지난 9월 같은 제목의 토론회가 한나라당의 박찬숙 의원의 주최로 열렸다. 어찌 보면 어리석은 질문일 수 있다.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은 ‘마의 30’ 때문에 고민했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30%를 넘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은 40%를 오르내린다. 열린우리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다른 정당의 지지율의 총합보다 높다. 정당 지지율로 선거를 치르면 ‘떼놓은 당상’이다. 게다가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빅3’ 가운데 2명이 한나라당이다.
그런데 스스로 ‘확실한가’라고 묻는 이유는,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의 잠재적 대선후보들의 지지율은 모두 한 자릿수이다. 그러다 보니 한나라당의 독주 자체가 오히려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지율 거품 논란을 논외로 치더라도, 2002년 대선과 비교하면 불확실성 요인은 더 늘었다.
인터넷상에서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열성 지지자들의 경쟁은, 양쪽은 물론 한나라당 지도부까지 나서 자제를 촉구할 정도로 위험 수준에 달했다. 지난 7월 전당대회가 양쪽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러지면서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들의 관심은 본선보다 더 치열할 것으로 보이는 당내 경선에 쏠려 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를 선출할 것인가, 당내 경선을 공정하게 치를 수 있을 것인가가 초점이다. 룰을 정하는 단계부터, 룰에 따라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그리고 게임 이후 여러 단계의 난관을 통과해야 한다. 각 단계마다 지뢰가 있다. 한나라당은 ‘이인제 학습효과’와 ‘잃어버린 10년’의 압박이 지뢰를 누르고 경선 후보들의 다른 선택을 막을 것이라고 하지만,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이 일어나는 곳이 정치권이다. 누구도 알 수 없다.
정치권은 재편되나
이미 대선은 시작됐다. 합법적인 대선운동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는 1년 이상 남았지만, 정치권은 2002년 대선 다음날부터 2006년 다음 고지를 향한 대선운동을 시작했고, 시점이 가까워져오면서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최근 주요 정치인, 정치세력들의 움직임은 모두 하나의 점을 향해 있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한나라당 의원 모임에 참석해 정책공조 이상의 분위기를 피우는 것도, 전시 작전권 환수 반대 운동을 벌이는 보수세력들이 대선과 ‘차기’를 운운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민주당, 그중에서도 한화갑 대표다. 사정이 다급한 탓이다. 민주당은 족보가 있는 뼈대 있는 집안을 자처하지만, 가계를 책임질 재목이 없다. 대선 국면에서 장사를 하려면 후보를 꿔오거나 다른 정당과 합쳐야 할 처지다. 뭔가를 도모할 힘이 있지는 않다. 고건 전 총리, 열린우리당과의 조합이 자주 거론됐지만 한 대표의 ‘광폭 정치’ 이후 한나라당도 조합 후보군에 이름을 걸쳤다. 이른바 ‘영호남 연대설’(DJ-박근혜 연합설도 같은 범주에 포함된다)이다.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민주당은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햇볕정책’을 족보로 내세우고 있다. 한나라당의 주요 대선주자들이 호남을 찾는 발길이 잦아졌다지만, 지난 7월 전당대회 이후 새로 구성된 한나라당 지도부는 영남 보수 색채가 더욱 강화됐다. 여기에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는 DJ와 관련해 ‘치매’ 발언 논란 당사자가 있고 “햇볕정책 실패에 사과는커녕 추태를 부리고 있다”는 이도 포함돼 있다. 민주화운동과는 양립하기 힘든 공작정치 전문가도 있다. 영호남 화합이라는 명분이 정체성 차이를 뛰어넘을 만큼 호소력이 커 보이지는 않는다.
또 다른 ‘설’ 수준의 그림은, 노무현-이명박 연대설이다. 양쪽 모두에서 펄쩍 뛴다. 구체적인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아, 누군가 의도를 갖고 퍼뜨리고 있다는 음모설이 따라붙는다.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정계개편론은 통합신당이다. ‘제3지대론’으로도 불리는 이 방안은, 신당을 만들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을 주축으로 여러 정치세력이 합류하는 형태다. ‘도로 민주당’ 형태가 될지, ‘반한나라당 연합전선’ 성격을 띨지 가늠하기는 힘들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9월20일 핵심당원 연수회에서 “12월 초가 되면 한나라당의 수구보수 대연합에 대응하는 민주개혁 대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고, 미국을 방문 중인 고건 전 총리는 “중도실용 개혁세력의 연대 통합에 대한 여러 가지 공감대는 많이 확산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열린우리당발의 ‘12월 정계 빅뱅론’의 구체적인 움직임은 드러나고 있지 않다.
대선후보들은 어떻게 윤곽이 잡힐까
대통령 선거일(12월19일) 240일 전 중앙선관위에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선거운동을 시작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당헌·당규에 180일 전에 후보를 선출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 당헌·당규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혹은 조기에 선출해 지지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상대 당 후보가 결정되기까지 늦추고 싶어한다. 한나라당은 너무 일찍 경쟁이 과열되는 것이 부담스럽고, 열린우리당은 당선권에 근접한 후보가 없기 때문이다.
경선 방식도 대폭 바뀔 것으로 보인다. 진원지는 열린우리당이다. 열린우리당은 현재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참여경선제) 도입을 사실상 확정짓고, 전국을 돌면서 당원들을 상대로 의견 수렴과 시연을 하고 있다. 2002년에는 당원과 국민의 참여 비율이 절반이었는데, 이번에는 참여를 원하는 국민 모두에게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취지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전자단말기를 설치하고 간단한 인증 절차를 거치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바꿀 예정이다. 열린우리당은 인기투표로 변질될 우려가 있음에도 이 선출 방식이 가진 역동성에 주목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중심의 정계개편에 대비한 포석이기도 하다. 누가 바뀐 제도의 수혜자가 될지는 아직 모른다.
열린우리당(혹은 열린우리당 다수가 참여하는 신당)이 경선 제도를 바꾸면, 2002년 그랬던 것처럼 한나라당도 기존 방식을 고집하기 힘들다. 현재는 2(대의원):3(당원):3(국민):2(여론조사) 방식인데 결국 당원과 국민의 비율이 50%씩인 만큼 2002년의 재판인 셈이다. 한나라당의 강재섭 대표는 오픈 프라이머리의 단점을 지적하면서도 “여의도연구소에 오픈 프라이머리를 연구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고, 과거처럼 재미없는 방법으로 경선을 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경선 방식은 내년에 얘기하자고 못을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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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과 2002년 대선이 열리던 해, 새해 지지도 조사에서 1위를 한 정치인들이 모두 고배를 마셨다. 박찬종 전 의원은 본선에 오르기 전에 낙마했고, 이회창 전 총재도 줄곧 선두를 지키다 막판에 떨어졌다.
현재 대선후보 지지도 추이는 ‘메이저리그(고건·박근혜·이명박-철자순)’와 ‘마이너리그’로 확연히 구분된다. 한나라당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와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의장, 정동영 전 의장이 마이너리그로 처져 있다. 그 밖에 범여권의 후보로 강금실·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추미애 전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본인들은 “정치에 뜻이 없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박원순 변호사(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도 잠재력 있는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최대 고민은 현재의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후보들 간에 파열음이 없이 대선까지 가느냐인 반면, 그 상대편의 고민은 “누구 없소?”로 요약된다. ‘저평가 우량주’로 꼽히는 김 의장이나 대중적 인기가 높았지만 현재는 거의 사그라진 정 전 의장이 한나라당 후보들과의 격차가 벌어진 채 고착화돼버린 이후 ‘역전의 주인공’을 찾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난 5·31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등장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같은 제3의 후보에 목말라하고 있는 것이다.
자천타천의 마이너리거 가운데 박원순 변호사는 보수세력들에 의해 ‘노무현 대통령의 히든카드’로 꼽히기도 했다. 제성호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겸 대변인(중앙대 법대 교수)은 지난 6월 노 대통령의 대선 승리 자신감은 히든카드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며 1순위는 박원순 변호사, 2순위는 천정배 법무장관이라고 주장했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한나라당 후보-고건-박원순이 본선에 나섰다가 박원순으로 통합되면 한나라당이 또 고배를 마실 가능성이 있으니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정 전 총장과 박 변호사는 끊임없이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으면서도 거리를 둬왔다는 점에서 신선하며, 특정 정치세력에 치우치지 않고 공익적인 활동에 주력해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잠재력은 아직 측정되지 않았다는 의미인 만큼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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