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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대북정책은 변했는가

등록 2006-08-18 00:00 수정 2020-05-03 04:24

북한 수해지역 지원 촉구하며 수구적 입장에서 탈피하는 모습… 대북 제재 유지 방침은 고수하는 등 아직 변화 단정할 순 없어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한나라당의 부정적 이미지엔 여러 가지가 있다. ‘수구꼴통당’ ‘부자정당’ ‘차떼기당’‘영남당’…. 당은 부정하고 싶겠지만 어느 것 하나 쉽게 떨쳐낼 수 없는 꼬리표들이다. 이 가운데 수구의 이미지는 역사가 깊다. 군사정권과 민정당 등 구정치 세력에 뿌리를 두고 있어 수구적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국민의 정부 들어서부터 ‘대북 퍼주기’로 상징되는 대북정책 발목잡기로 보태진 이미지도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남북관계 변화란 시대 흐름에 딴죽을 거는 듯한 모습이 당의 외연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정형근의 대북 돕기?

한나라당은 8월3일 정부에 물난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생필품과 의약품 등을 지원할 것을 촉구했다. 생필품에는 쌀을 제외한 라면·음료 등 구호식품이 포함된다고 나경원 대변인은 밝혔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여야 5당 회담을 주도해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인도적 지원을 촉구”하는 국회 차원의 통일된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당에선 최고위원인 정형근 의원이 맨 먼저 대북 지원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반공의 기수이자 대북 문제에서 가장 극우적 목소리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그가 갑자기 대북 인도적 지원의 전도사로 바뀐 것이다. 이 때문에 당내 다른 극우파들도 반발할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정형근 의원의 개인기를 넘어 당의 대북 인도적 지원이 별 잡음 없이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최고위원회의와 통일안보전략특위, 정책위 등 당 조직을 무사히 통과했다는 점이다.

대북정책에 대한 한나라당의 입장이 변하고 있다는 신호일까?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 등 다른 당에 앞서 정부에 대북 지원을 촉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권영세 의원(최고위원)은 “종이 위 기조의 변화에서 행태적 변화로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나라당은 당 혁신위가 제안해 지난 연말에 뜯어고친 정강정책에서 “소극적·방어적 대북정책에서 벗어나 호혜적 상호공존 원칙에 입각한 유연하고 적극적인 통일정책으로 전환한다… 국민적 공감대와 투명성을 확보한 가운데 진취적인 교류협력과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여 북한의 개혁·개방을 촉진해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구현한다”고 못박았다. 종이 위의 대북정책은 분명히 바뀐 것이다. 이보다 앞서 2004년 말 여의도연구소는 ‘선진통일의 길’을 통해 △남북경협 활성화와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 △비무장지대(DMZ) 내 평화통일시 건설 △사회·문화적 교류 확대와 민족 동질성 회복 △인도적 지원 방식의 변화와 남북한 자유 왕래 실현 등의 핵심 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인도적 지원 방식의 변화는 구호성 지원에서 개발사업 지원 쪽으로, 일회성 지원 방식보다 지속적 지원이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당 관계자는 “당의 대북정책은 보수적 수구적이지만 정강정책을 보면 그런 것이 많이 희석됐다”고 말했다. 두 번의 대선 패배 교훈을 바탕으로 새로운 집권 전략을 짜면서 대북정책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다만 그동안 한나라당의 이같은 변화가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까닭은 실천에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국가로서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자고 주장해온 정문헌 의원은 “지난 16대까지 당내 경직된 대북 인식이 다수였지만 당의 인적 구성이 크게 바뀐 17대 들어 소수가 됐다.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에서 이번 대북 인도적 지원은 당이 변화된 대북정책으로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이라고 말했다.

라면은 돼도 쌀은 안된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변했다고 단정짓기는 이르다. 진정성이 있느냐도 아직 의문이다. 한나라당은 2004년부터 이어져온 북핵, 국가보안법 개폐, 미군기지 이전, 미사일 문제 등에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 때리기와 국내 우파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파하는 데 충실했다. 북한 수해 주민 지원 건에서도 당의 한계를 보여줬다. 처음엔 수해 지원 품목에 쌀을 뺀 것이다. “미사일 발사로 정부가 모처럼 대북 채찍을 든 쌀 지원 거부에 야당이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말 못할 다른 이유도 있다. 당은 오랫동안 대북 쌀 지원이 군량미로 전용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대북 쌀 지원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과거 자신의 입장에 모순되는 모습을 보이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한나라당이 5당 회담을 통해 쌀 지원에 동의했지만 단서를 붙였다. 한나라당은 제2정조위에서 작성한 내부 문건에서 “피해 지역 실태 조사를 하지 않고 지원을 수해 지역으로 국한하지 않을 경우 미사일 발사 후 진행 중인 정부의 대북 제재의 사실상 철회로 간주할 것이며, 이를 정부·여당에 문제 제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인도주의적 지원이라도 미사일 발사에 따른 대북 제재는 계속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대북정책에 언제나 ‘안티’의 목소리를 내왔다. 의제를 주도할 수 없는 방어적 구도였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당과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하면서 대북 의제의 중요한 한 축에서 주도권을 쥐었다. 빈틈 공략에 성공한 것이다. 남경필 의원은 당의 대북 지원 결정과 관련해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며 “이벤트성 변화가 아니라 일관되게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북 지원 등에서 한나라당이 또 다른 빈틈을 찾아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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