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을 재보선 투표결과는 무섭게 큰 한나라 견제하려는 민심… 주당을 대안으로 인정했다기보다는 제3의 세력 결집하라는 메시지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호남의 공포?!
성북을에서 한나라당의 패배와 조순형의 당선은 ‘반노비한’이란 단어로 압축된다. 노무현에 대한 반감과 한나라당이 싫은 표심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반노비한의 주축은 호남이기도 하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더피플의 장강직 사장의 분석은 이렇다. “반노비한이 갈 데가 없었다.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이미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심판이 끝났다.
한나라당이 성추행을 했든 돈공천을 했든지 간에 노무현이 더 미웠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노무현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한나라당은 노무현의 대척점에서가 아니라 독립적으로 서 있으면서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이 비로소 심판의 대상이 됐다는 말이다.
‘호남의 결집’으로 봐야 할까
김형준 국민대 정치학 교수(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부소장)의 분석도 다르지 않다. 김 교수는 “전반적으로 전략적 투표를 하는 호남 출신들이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판단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말했다. 여기서 잠깐 한국선거학회의 분석을 보자.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광주·전라 출신들은 전국적으로 광역단체장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한나라당에 18.2%, 민주당에 50.5%, 열린우리당에 27.3%의 지지를 보냈다. 서울의 기초단체장 선거로 범위를 좁히면 한나라당 지지율은 58.8%로 열린우리당 지지율인 35.3%를 훌쩍 넘어선다. 호남 출신들이 한나라당에 적지 않은 표를 던진 것이다.
그렇다면 불과 몇 달 새 갑자기 왜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표심이 작용했을까? 김 교수는 “한나라당이 무섭게 보수회귀했다. 한나라당의 회귀에 호남이 결집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7·11 전당대회에서 ‘도로 민정당’으로 상징되는 지도체제를 탄생시켰다. 지역적으로도 ‘영남당’이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지방선거에서 호남 출신들이 한나라당에 잠정적 지지를 보냈지만 더 이상 지지할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른 것이다. 앞서 지방선거를 싹쓸이한 한나라당에 대한 견제 심리도 자라났다. 말이 야당이지 지방권력은 견제받지 않는 한나라당의 것이 돼버렸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 너무 싫어서 한나라당에 표를 던졌지만 이제 한나라당이 너무 무서울 만큼 커버렸다고 판단한 것일 수 있다.
여기에 한나라당 출신 광명시장의 ‘호남비하 발언’(“전라도 사람은 이래서 욕을 먹는다”)도 작용했다. ‘수해 골프’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의 자만을 넘어 오만에 가까운 태도에 등을 돌린 것이다. 성북을은 특히 호남 출신들의 밀집도(25%안팎)가 높은 편이다. 성북을이란 선거구가 처음 생긴 1981년부터 96년까지 단 한 차례를 빼곤 모두 호남 또는 야당이 승리했다.
물론 한나라당의 성북을 패배를 호남 민심의 결집으로만 보긴 힘들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된 부천 소사도 호남 출신이 적지 않은 지역이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소장 김헌태) 연구실장은 “호남 민심이 결집해서 조순형을 당선시켰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호남 비하 발언과 수해 골프에 곁들여 별다른 이슈 없이 인물론 구도로 치러진 선거 탓이 크다”고 말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도 “조순형이란 인물적 효과가 컸다”고 분석했다.
소장파 명분 획득, 약으로 작용할 수도
하지만 한 실장은 “무엇보다 한나라당의 지지도 하락 등으로 나타난 결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조순형을 당선시킨 민심의 주체가 호남 출신이든 아니든지 간에 결과가 한나라당에 대한 견제와 심판이라는 분석틀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뜻이다.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도 “이대로 가다간 한나라당이 대한민국을 지배할 수 있다고 본 민심이 민주당을 통해 한나라당의 연승 행진을 견제한 것이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재차 심판한 것은 틀림없고, 한나라당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관점이 조금 다르지만 장강직 사장의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국민들 입장에서 아직도 반노가 있긴 하다. 하지만 비한나라당이 더 노골화되기 시작하면 반한나라당으로 갈 것이다.” 반노비한이 ‘반한’(반한나라당)으로 조금씩 진화해나갈 것이란 예측이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심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임태희 의원은 지방선거 뒤 당을 향해 “다음번 심판 대상은 한나라당이 될 수 있다”며 자만감에 빠져선 안 된다고 거듭 외쳤다. 원희룡·남경필·박형준 의원 등 소장개혁파도 같은 목소리였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원인이야 어떻든 한나라당의 불패 신화는 깨졌다. 참여정부의 무능과 실정에 기댄 반사효과도 지속되겠지만 약발은 조금씩 떨어질 것이 틀림없다. 한나라당의 정당지지율도 선거 때 부풀어오른 거품이 무섭게 빠졌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전국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재·보궐 선거 전날인 2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36.1%로 2주 전 조사보다 무려 7.9%포인트나 떨어졌다. 정당지지율이 마의 40%대를 넘고 50%에 근접했다가 추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북을 패배는 제대로만 다룬다면 한나라당에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 원희룡 전 최고위원은 “전당대회 뒤 자력으로 최고위원을 배출하지 못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던 소장개혁파의 ‘당의 끊임없는 변화와 쇄신’ 요구가 조금이나마 명분을 쥐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물론 당 지도부의 인식은 다르다. 한 당직자는 “우리가 한 석을 잃긴 했으나 여전히 노무현 정권에 대한 강한 심판이 존재한다. 대안세력으로서 한나라당을 선택하는 구도엔 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진화 의원은 “이번 재·보궐 선거 결과 한나라당이 성북을에서만 패배해 수치상 75%를 획득했지만 사실 국민은 한나라당에 ‘옐로카드’를 던진 셈”이라며 “한나라당이 체질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열린우리당처럼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민주당 지지율은 선거 전후 변동 없어
열린우리당은 이번 재·보궐을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였다. 김형준 교수는 “열린우리당으론 안 된다는 국민들의 판단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기회”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심판하고 찾으려는 대안은 무엇이며, 던지려는 메시지는 뭘까? 정치전문가들은 조순형을 뽑은 ‘비한나라당’ 민심이 민주당을 대안으로 인정했다는 뜻은 아니라는 데 입을 모았다. 유종필 대변인도 이 점에선 동의한다. 민주당이 대외적으로 수도권에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실제 수도권의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은 재·보궐 선거 전후로 거의 변동이 없다.
메시지를 정계 개편 필요성의 손짓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유선호 열린우리당 의원(전남 장흥·영암)은 “민심이 거대 야당에 맞서 대안세력을 모색해야 한다는 요구를 보인 것 아닌가 싶다.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이나 독자적으로 한나라당에 맞서 정국에 대응하기엔 힘이 부족하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최소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 등을 포함한 정계 개편 논의의 계기점으로 선거 결과를 해석하는 것이다. 한귀영 실장도 같은 분석이다. 김형준 교수는 한 발짝 더 나아가 “호남 출신들이 준 시그널(신호)은 민주당이 정계 개편의 중심이 되라는 얘기도, 열린우리당이 되라는 얘기도 아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고건 등을 포함한 제3의 세력이 동등한 지분을 갖고 평등한 입장에서 경선을 치르면서 (한나라당에 맞서) 경쟁력 있는 후보를 만들어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입체적 분석은 놔두고서라도 선거 결과가 정계 개편 논거와 명분에 하나 더 얹어준 것임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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