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궐 선거를 겨냥한 염동연 열린우리당 사무총장의 연이은 발언 논란… 당장은 실현 가능성 적지만 장상 단일후보 추대나 정계개편 계기될 수도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선동(先動)자는 망하고, 중동(中動)자는 흥하고, 말동(末動)자는 미흡하다.”
호남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열린우리당 중진의 말이다. 그는 “중국 고전에 나오는 말”이라며 “기회주의적인 처세인 것 같지만 지금까지 별로 틀린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창당 등 굵직한 정치적 격동기마다, 먼저 움직여 깃발을 꽂으면 그만큼 많은 지분을 얻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태가 어찌 정리되는지 지켜보고 난 뒤에 움직이는 이들이 실리를 챙겼다는, 나름대로 그가 체득한 정치 철학인 셈이다.
가까스로 당을 추스리는데 또…
다시 그의 더듬이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7·26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겨냥한 염동연 사무총장의 ‘선거연대론’이 퍼진 뒤였다.
그의 잠정 결론은 이렇다. “호남의 복원은 운명이며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점에서 염 총장의 충정은 이해하나 모든 일에는 적당한 때가 있게 마련이다. 애인이 아직 마음을 열지도 않았는데 손목을 잡아끌어서 되겠나.” 아직은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얘기다. 호남, 특히 광주·전남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다른 의원들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이 중진 의원의 현실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염 총장의 선거연대론은 6월20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처음 제기됐다. 현재의 열린우리당 상황과 지지율로는 재보선에서 이기기 힘드니 연합공천이나 공천연대를 시도해봐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김근태 의장은 논란이 일자 6월27일 비공개 회의를 열어 논의하자며 함구령을 내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5·31 지방선거 완패 이후 가까스로 당을 추스르고 있는데, 정계 개편의 큰 불로 번질 수 있는 불씨(선거연합론) 때문에 당내 갈등이 빚어질 경우 다시 원심력이 커지면서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뚫린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6월23일 기자와 만난 염 총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연합공천이나 공천연대로 코앞에 닥친 선거에서 이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가겠구나 하는 비전과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서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호남 정치세력의 복원, 외연 확장을 통한 반한나라당 연합만이 살길이라고 보고 있다.
염 총장의 구상이 7·26 재보선에서 현실로 나타날 수 있을까. 쉽지는 않다. 비대위 구성 직후 6월14일 열린 비대위 워크숍의 결론은 두 가지였다. 민생우선론과 단합이다. 우선 열린우리당을 추스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구체적으로 보면, △정계 개편 본격 논의는 정기국회 이후로 미루고 민생법안 처리에 주력하며 △‘개혁 대 실용’이라는 당내 구도에 대해서는 “개혁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이고, 실용은 이를 실현할 전략”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런데 비대위가 위기 수습 방안이라고 내놓은 지 1주일 만에, 같은 회의체인 비대위에서 정계 개편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선거연합론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검토 가능” 맞장구
선거연합 구상이 현실화하기 힘든 또 다른 이유는, 연합이 쉽지 않을뿐더러 연합한다고 해도 이길 수 있겠느냐는 패배의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5·31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의 서울지역 정당득표율(비례대표)은 57.2%였다. 선거연합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민주당(10.4%)과 열린우리당(21.3%)의 득표율을 합치더라도, 심지어 반한나라당 연합이 성사되더라도 산술적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 게임이다.게다가 2004년 탄핵의 주역이었던 조순형 전 의원이 민주당의 예비후보로 등록을 마친 터라, 열린우리당이 후보를 내지 않고 조 전 의원으로 단일화하는 식의 그림은 열린우리당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구도이다.
또 다른 걸림돌은 보궐선거의 원인이 된 신계륜 전 의원의 존재다. 신 전 의원이 지난 2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기는 했지만, 당내에서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하다. ‘신계륜과 함께하는 의원 모임’에는 70여 명의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번에 보궐선거를 치르기는 하지만 공천 과정에서도 ‘신계륜 지역구’임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신 전 의원 쪽은 “경쟁력 있는 후보를 추천하기 위해 물색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며 “이기기 힘든 선거라면 초심으로 돌아가 우리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어떻게 반성하고 앞으로 어떻게 잘하겠다는 것인지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젊고 개혁적인 후보가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신 전 의원은 2007년 대선에서 민주개혁 세력의 재집권을 위해 반한나라당 연합의 필요성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당장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과의 연합공천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염 총장이 제기한 선거연합론이 단지 중장기적인 포석만은 아닌 것 같다. 구체적인 물밑 움직임의 징후들이 감지된다. 염 총장의 회의 석상 발언이 알려진 직후, 민주당 이상열 대변인은 “선거라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여러 가능성에 대해 검토할 수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사람만 잘 고르면, 서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적의 인물로 거론되는 인사가, 김대중 정부 시절 총리 후보로 올랐던 민주당의 장상 공동대표다. 열린우리당 쪽의 거부감과 민주당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염 총장은 조 전 의원이 연합후보가 될 가능성을 묻자,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자녀 계획을 묻는다”며 빼다가 “장상 대표라면 어떠냐”고 되물었다. 같은 날 한화갑 대표 쪽은 “조 전 후보의 나이가 많아 당내 반발도 적지 않다”며 “장상 대표도 가능성이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제 막 물 위로 올라왔는데 양당 핵심인사들끼리 구체적인 후보까지 일치하는 것을 우연으로만 보기는 힘들다.
마땅한 후보 없으면 세 얻을 수도
7·26 재·보궐 선거가 한 달가량 남은 상태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복잡한 당내 사정을 고려하면 선거연합이 실현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6월27일 열린우리당의 비대위 회의에서도 소수 의견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후보다운 후보를 내세우지 못한다면, 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장상 카드’를 전제로 한 선거연합론이 지금보다 세를 얻을 수 있다. 또 선거연합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민주당과 통합을 위한 ‘군불 지피기’는 계속될 것 같다. ‘본격적인 정계 개편 논의는 정기국회 이후로 미룬다’는 원칙은 그만큼 깨어지기 쉬운 유리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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