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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구에서 몸 달았다

등록 2005-10-12 00:00 수정 2020-05-03 04:24

이명박에 밀리는 상황에서 유승민이 이강철 꺾어줘야 주가 띄울 수 있어
10·26 재보궐 선거, 3곳 노리는 한나라당과 마음 비운 열린우리당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10·26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분위기가 하늘과 땅 차이다. 열린우리당은 중앙당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있는 반면에 한나라당은 중앙당 차원에서 적극 나서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별 ‘재미’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체념이 열린우리당 내부의 지배적인 분위기라면 한나라당에서는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이정현 한나라당 부대변인)는 승리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선거에 임하는 두 당의 차이는 결과에 대한 당 지도부의 셈법과 이번 선거전의 의미에 대한 시각차에서 비롯된다.

한나라당은 전체 299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4명(1.33%)을 다시 뽑는 이번 선거에 거의 ‘올인’(다 걸기)했다. 중앙당이 후보 고르기 과정에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관여하는 듯한 모양새다. 그만큼 공천 과정의 잡음도 컸다. 당 지도부가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무리하게 공천 과정에 관여했다는 비판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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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재선거는 노무현과의 대리전

당 지도부가 이번 선거를 얼마나 중요하게 보고 있는지는 대구 동구을 후보 공천 과정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지난 1월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에 임명된 뒤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돼온 유승민 의원(비례대표)의 대구 동구을 공천이 최종 확정됐다. 과정은 복잡했다. 애초 공모 신청자들은 15명이나 됐다. 하지만 공천 신청자가 3명으로 압축된 상황에서 이들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하는 열린우리당의 이강철 후보(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를 이길 수 없다는 명분과 논리가 뒷받침된 유승민 대안론이 불쑥 튀어나왔다. 당 공천심사위는 공모 신청도 하지 않은 유 의원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재공고를 냈으며, 우여곡절을 거쳐 유 의원의 공천을 확정했다. ㅈ의원은 “여론조사가 낮아서 안 된다는 것은 다른 후보들을 배척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유 의원이 아니더라도 대구라는 지역과 재·보궐 선거의 특성을 고려할 때 충분히 승산이 있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비례대표(전국구) 의원이 임기 중 돌연 지역구 의원으로 나선 것도 ‘문제’로 꼽힌다. ㅇ의원은 “전국구도 국민들이 다 투표해서 뽑은 것이다. 전국에서 당선된 사람이 지역에서 또 당선되겠다고 나선 것을 국민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 의원의 공천 과정은 박 대표를 중심으로 한 지도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정현 부대변인은 “박 대표가 (유 의원이) 나가도록 적극 권유했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며 그럴 입장도 아니다. 비서실장이 나간다고 해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비서실장의 출마 여부에 대한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박 대표의 역할을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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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에서 공개적으로 나서 재·보궐 선거의 공천 과정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없다. 물밑 분위기는 다르다. 당직을 지낸 한 의원은 “어차피 이겨도 반사이익을 얻는 것에 불과한 판에 대구에서 한 석 건지는 게 뭐 그리 대단하냐”며 “대선을 향해 외연을 확장해야 할 판인데, 개혁적이면서 능력 있는 외부 인사를 데려오지 못하고 오히려 폐쇄적으로 공천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대선이라는 큰 싸움을 위해 준비하는 게 아니라 작은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인 셈이다.

열린우리당 “알아서들 하시라”

그렇다면 박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원칙 훼손과 잡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대구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계산을 세운 것일까. 박 대표는 재·보궐 선거에서 재미를 톡톡히 봐왔다. 특히, 지난 4·30 재·보궐 선거에서 압승하면서 당내 박근혜 체제를 더욱 굳힌 것이다. 한 초선 의원은 “지난해 총선 이후 박 대표의 지지율이 재·보궐 선거를 계기로 올라가곤 했다. 이번에도 그런 효과를 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최근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추월당했다. 또 지난해 12월 초 39.4%(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달하던 지지율이 지난 9월 말에는 28.8%로 지지율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 때문에 박 대표로서는 다소 ‘리스크’(위험)가 있더라도 ‘베팅’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유승민 의원과 이강철 전 특보의 대결이 노무현 대통령과 박 대표와의 대리전 양상으로 비치는 것은, 선거에서 이길 경우 박 대표의 주가를 띄울 만한 소재가 될 수 있다. 물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영남에 틈새를 허용할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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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낙승을 장담할 수 있는 곳은 한곳도 없다. 부천 원미갑에서 임해규 후보가 이상수 열린우리당 후보에 앞서는 것으로 나오지만 호남 출신이 많이 사는 부천의 인구 구성의 특성과 호남 출신의 거물 정치인이라는 이 후보의 뒷심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구에서는 유 의원이 오차 범위 안에서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규제 해소가 절실한 지역의 특성상 대통령의 측근이자 인지도가 높은 이 후보가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울산 북구에서는 민주노동당의 아성을 깨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은근히 울산을 제외한 3곳을 차지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경기 광주가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공천 결과에 불복해 독자 후보로 나선 홍사덕 전 의원이 한나라당 지지층의 표를 분산시킬 가능성을 염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당직자는 “이번 선거에서 큰일이 터질 수 있다. 울산은 힘들고, 홍사덕이 광주에 그대로 나오게 되면 100% (열린우리당에)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4곳에서 2곳 이상을 잃는다면 한나라당은 내부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 의원은 “대구나 광주 등 한 군데서 뚫리면 박 대표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어쨌든 박 대표가 ‘기대 이상’으로 선전한다면 공천 과정의 잡음은 용서가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리더십은 공천 잡음과 엮여 도마에 오를 게 뻔하다.

지난 4·30 참패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는 열린우리당에게 이번 선거는 ‘큰 의미가 없는 선거’로 저평가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당 지지율은 당시보다 더 떨어진 10%대로 열악한 상태다. 문희상 의장 등 당 지도부는 결과에 대해 제기될 책임으로부터 은근히 ‘선긋기’를 해놓은 상태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당 지도부가 이번 선거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중앙당의 개입을 최소화한 것은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한 측면이 작용한 것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사실상 선거가 지역 후보자에게 내맡겨진 상태다. 한편으로 당 지지율이 바닥을 보이는 상황에서 당을 강조해봤자 득될 게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 선거전략 관계자는 “희망 섞인 바람은 대구와 광주에서 선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석도 건지기 쉽지 않다는 우울한 분석이 팽배하다. 오히려 희망이라면 욕심을 버렸다는 것과 한나라당이 공천 과정에 보였던 파열음을 통한 반사이익의 기대가 고작이다.

민주노동당, 울산 북구에 올인

한나라당 이상으로 이번 재·보궐 선거에 ‘올인’한 것은 민주노동당이다. 당장 울산 북구를 탈환해 독자적인 법안 발의 의석 수(10석)를 확보해야 한다. 조승수 의원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의석 수가 9석으로 줄어, 민주당(11석)에 이어 제4당으로 추락한 상태다. 김배곤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은 “이번에 결연한 각오로 선거를 치르자는 당내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객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지만 선거전이 본격화하면 당이 다 달라붙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은 정갑득 전 현대차 노조위원장과 정창윤 울산시당위원장 가운데 한 사람이 경선을 통해 10월10일 최종 후보로 확정된다.



홍사덕과 이상수의 운명은

탄핵과 대선자금의 원죄 지닌 후보들, 광주와 부천에서 한판승부



‘화려한 부활을 꿈꾸지만….’
‘탄핵의 주역’으로 낙인찍힌 홍사덕 전 한나라당 원내총무가 ‘10·26 재보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 4·15 총선에서 고양 일산갑에 나가 한명숙 열린우리당에 패배하면서, 정치권을 떠난 지 1년6개월여 만이다. 그는 당시 총선 유세에서 “내가 승리할 경우 노무현 대통령이 물러나고, 반대의 경우엔 내가 떠날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지만, ‘탄핵 역풍’의 부메랑을 피하진 못했다.
그리고 ‘떠날 것’이라는 약속을 접고 다시 ‘돌아왔다’. 항상 그렇듯 복귀는 순탄치 않은 법이다. 그는 자신의 지역구가 아닌 경기 광주에 터를 잡았다. 높은 인지도에 힘입어 자체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홍 의원을 공천에서 아예 배제한 것이다. 한 당직자는 “‘홍’을 공천했더라면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평이 어떻겠냐? 탄핵부터 시작해 물갈이와 세대교체 얘기가 쏟아져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에 득이 될 게 하나도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홍 전 의원은 “당은 탄핵의 주역이라는 나를 버렸지만, 나는 당을 버릴 수 없다. 당선 뒤 당에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무소속 후보로 공천에서 탈락한 김을동 전 상임위원의 지원을 받으면 유세현장을 누비고 있다. 난처하게 된 것은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은 정진섭 전 경기지사 특보다. 홍 후보쪽은 “현재 2위를 4~5%포인트로 따돌리고 있으며, 현재 추세대로 간다면 표 차이를 더 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당 지도부는 탄핵 역풍의 ‘희생양’에게 던졌던 동정을 거둔 채, 홍 전 의원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김무성 사무총장은 “홍 전 의원이 당선되더라도 입당을 받아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이상수 전 의원이 부천 원미갑에서 재기를 꿈꾼다. 그는 2002년 대선자금 비리 수사로 구속됐다가 지난 8월15일 특별사면으로 복권됐다. 그는 ‘부천서 성고문 사건’(권인숙씨)과 ‘서울운동연합 사건’(김문수 한나라당 의원)의 변호를 맡으면서 부천과 인연을 맺고 참여정부의 ‘짐’을 떠안았다는 동정론을 받고 있지만, 한나라당쪽 후보에 다소 밀리는 상황이다. 유권자들이 탄핵과 대선자금의 원죄를 지닌 후보들이 정치적 부활을 시도하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선거 결과를 지켜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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