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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민주당, 탈날라 민주당

등록 2005-09-29 00:00 수정 2020-05-03 04:24

신중식 의원의 입당으로 ‘기호3번’ 회복하며 르네상스 맞을 기회지만
‘고건 올인’ 본격화되면 한화갑 대표 체제 흔드는 ‘트로이의 목마’ 될 수도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이제 열린우리당의 배신과 지난해 4월 총선 참패를 딛고 다시 한번 대한민국 정통야당인 민주당의 재건을 모색할 수 있는 확실한 기반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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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봄 한나라당과 손잡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했다 국민적 저항에 부닥쳐 그해 4월 총선에서 원내 의석 ‘꼴찌 정당’으로 몰락했던 민주당 안팎에서 요즘 이런 ‘희망가’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희망의 근거’는 지난 9월21일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신중식 의원(전남 고흥·보성)의 민주당 입당 전망. 대다수 국민들은 겨우 현역 의원 1명의 입당을 근거로 ‘화려한 부활’을 꿈꾸는 민주당에 대해 “꿈 깨”라고 외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민주당의 셈법은 좀 다르다.

일단 신 의원 입당은 민주당에 명실상부한 원내 3당의 지위를 부여할 것이라는 게 민주당 핵심 인사들의 생각이다. 유종필 대변인은 “그동안 민주당은 방송 토론회 등에 아예 초대받지 못하거나 꼴찌로 잠깐 얼굴을 비춰주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원내 3당에 걸맞은 대우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정치적 위상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기호 3번은 김대중 연상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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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민주당은 신 의원이 입당하면 원내 의석 11석으로 민주노동당을 제치고 법적으로 확실한 제3당이 된다. 전남지사·목포시장 등 각종 재보선 승리, 지난 5월30일 무소속 최인기 의원 입당 등으로 서서히 약진한 끝에 이제 민주노동당이 국회와 언론이라는 공간에서 누렸던 ‘제3당 프리미엄’을 빼앗아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핵심 인사들이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기호 3번’의 회복이다. “앞으로 민주당에 대한 각종 대접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앞으로 닥칠 각종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기호 3번을 내걸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선거에서 기호 3번과 4번의 차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 이낙연 민주당 원내대표는 “신 의원 입당 효과의 핵심은 기호 3번 확보”라며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이 ‘기호 3번’ 확보에 집착하는 이유는 호남지역 유권자들에게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민주당의 다른 한 핵심 당직자는 “민주당이 추진해온 ‘독자 생존을 통한 재건’ 전략의 핵심은 내년 지방선거 때 전남·광주 지역의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에게 더 이상 열린우리당만으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수준의 승리를 확보하는 것”이라면서 “과거 민주투사 김대중 선생이 야당인 평화민주당을 이끌며 황색 바람을 일으킬 때 기호인 3번을 민주당 후보가 내걸면 상당한 이익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기호 3번은 호남 유권자에게 ‘영원한 선생님 김대중’과 민주당을 연결하는 핵심 코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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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갑 대표가 민주당 일각의 반대를 누르고 신중식 의원 영입에 발벗고 뛴 것도 ‘기호 3번’의 의미에 집중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주당 의원은 “신 의원과 지역구가 겹치는 박상천 전 대표 등은 신중식 의원이 고건 전 총리의 사람이라는 이유 등으로 지방선거 이전에 영입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반대했지만, 한 대표는 ‘고 전 총리가 대선 후보로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이유로 민주당 재건을 늦출 수는 없다’면서 신 의원 영입을 적극 추진했다”고 전했다. 실제 한 대표는 추석 전후로 신 의원을 두 차례나 만나 입당을 설득했다.

전남 서부 넘어 동부를 개척하다

이 밖에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론을 “호남 민중에 대한 배신”이라 비판해온 신 의원이 집권 여당을 떠나 민주당에 입당할 경우 광주·전남의 민심이 민주당으로 확실히 기울고 있다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다는 점 △지난 총선에서 목포(이상열 의원), 나주·화순(최인기), 담양·곡성·장성(김효석), 해남·진도(이정일), 무안·신안(한화갑), 함평·영광(이낙연) 등 전남 서부쪽에서만 당선자를 낸 민주당이 전남 동부 지역으로 세력권을 넓혔다는 점도 ‘신중식 입당 효과’로 분석된다.

그러나 민주당 일각에서는 신 의원의 입당을 ‘민주당 르네상스’의 신호탄으로 분석하는 낙관적 분위기에 대한 경계론도 나오고 있다. 경계론자들은 “고건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할 생각으로 민주당에 입당하는 신 의원은 결국 ‘민주당 독자 생존을 통한 재건’을 추진 중인 한화갑 대표 체제의 이해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실제 한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기호 3번 민주당 후보가 호남지역에서 약진해 대선이 임박한 정치적 격변기에 민주당 중심의 헤쳐모여를 시도하고, 궁극적으로 독자적인 대선 출마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반면, 신 의원은 고건을 중심으로 민주당, 중부권 신당, 열린우리당 등 여러 정치세력이 헤쳐모이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있다. 결국 한 대표가 ‘기호 3번 회복’을 위해 신 의원 영입에 가장 공을 들였지만, 고건 전 총리가 대권 행보를 본격화하는 순간부터 한 대표 체제를 뒤흔드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핵심 인사는 “한 대표가 또 다른 호남인 전북지역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내년 지방선거 이전에 전북에 영향력이 있는 고건 전 총리에 대해 가시적인 협력적 제스처를 보여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며 “그때가 한 대표 체제의 가장 결정적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 의원 입당이 과연 ‘민주당 르네상스’의 신호탄이 될지, 한화갑 체제를 뒤흔드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지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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