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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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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의원 정당공천, 풀뿌리 딜레마!

등록 2005-08-31 00:00 수정 2020-05-03 04:24

고양시의회 의원 32명을 상대로 한 전화여론조사에서 30명이 반대의사
민주노동당이 가장 큰 수혜 받을 것으로 보이나 시민운동가들은 좌절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전국 232개 시·군·구 의회가 폭발 직전이다. 국회가 지난 6월 기초의회 의원의 정당 공천이 가능하도록 공직선거법을 바꿨기 때문이다. 예고 없이 이뤄진 선거 시스템의 변화가 기초의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벌써 9월 정기국회에서 선거법을 다시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앙정치와 지방정치의 대립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기초의원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정당 줄서기를 하고 있으며, 당내 경선을 통과하기 위한 준비로 당원 가입에 분주하다. 이런 가운데 꾸준히 풀뿌리 정치참여를 넓혀온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뜻밖의 장벽에 부딪혀 남다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중선거구제는 26명이 원치않아

다른 한편에서는 정당정치의 실현과 토호가 지배하는 지방의회의 질 향상, 단체장 견제를 위한 정당 공천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버티고 있다. 소선거구제를 중선거구제로 바꾸는 문제는 기초의원들뿐만 아니라 중앙정치판에서 첨예하게 이해가 갈리는 상황이다. 과연 선거법 개정은 10년을 맞은 풀뿌리 지방자치에 독일까, 약일까?

<한겨레21>은 선거법 개정의 논란에 맞춰 지난 8월23~25일 경기 고양시의회 의원 32명 모두를 상대로 전화 여론조사를 벌였다. 정당공천제에 대한 찬반 입장을 묻자, 32명의 기초의원 가운데 2명을 뺀 30명이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무려 93%에 이르는 수치다.

정당 공천을 반대한다고 응답한 기초의원들은 정당 공천이 막 뿌리를 내리고 있는 풀뿌리 지방자치를 해칠 것으로 봤다. “국회의원의 하수인 역할밖에 더 하겠냐” “지방정치를 중앙정치의 부속물로 만들려는 것이다” “중앙집권제를 강화시키는 것이다”라는 등 지방정치의 중앙정치 예속화를 우려했다. 비슷하게 기초의회가 ‘미니 국회’가 될 것을 걱정하는 응답도 많았다. 기초의회가 당리당략의 싸움터로 변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당 공천을 찬성한다고 밝힌 2명의 의원은 “일 잘하는 사람을 공천할 수 있다”거나 “후보 난립을 막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고양시의회 의원들은 중선거구제에 대해선 ‘판단 유보’(2명), ‘찬성’(4명)을 제외한 나머지 26명이 반대 의사를 밝혔다. 81%가 현 소선거구제에서 중선거구제로의 변화를 원치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 소선거구제에서는 동마다 한명씩의 시·구의회 의원이 읍·면에 한명씩 군의원이 나오지만, 중선거구제에서는 여러 읍·면·동을 한 선거구로 통합한 뒤 2~4명의 기초의원을 선출한다. 중선거구제를 반대하는 의원들은 선거비용의 증가, 인구 확대에 따른 민원 수렴의 곤란 등 합리적 이유와 더불어 국회의원은 소선거구제를 하면서 애꿎은 기초의원들만 중선거구제로 바꿔놨다는 불평도 적지 않았다. 기초의원들의 반발 심리엔 현재 3496명의 의원 정수가 2922명으로 16.4% 감소한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선거구제를 환영하는 의원들은 “대표성을 가질 수 있다” “동대표에 불과한 협의의 지방자치를 극복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꼽았다. 중선거구제 문제는 정당 공천에 비해 의원들 사이에 의견의 쏠림이 덜했다.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8월22일 소선거구제와 기초의원 정수를 과거 상태로 회복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의원은 “국회의원과 광역의원 선거는 소선거구제로 하고 기초의원을 중선거구제로 한 것은 공직자 선출제도의 혼선이 야기될 수 있는데다 대표성에서도 광역의원과의 차별이 불분명하다”며 “기초의원 정수는 지방의원 유급화로 인한 재정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로 기초의원 수의 적정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손쉽게 축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거래작품

각계 대표가 참여해 국회의장 자문기구로 설치된 정치개혁협의회가 제안한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제를 제외한 중선거구제, 기초의원 정수 감축, 유급제 도입 등은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중앙 정치권의 절충으로 만들어진 안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선거법 개정안은 정당 공천을 원한 한나라당과 중선거구제를 원한 열린우리당의 거래 결과”라고 비판했다.

정당공천제는 여든 야든 큰 정당의 간판을 달고 나가는 후보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또 정당 간판을 다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탓에 정당 줄서기가 이어지고 있다. 고양시 의원 가운데 내년 6월 기초의원에 재도전하겠다고 밝힌 21명 가운데 한나라당 10명, 열린우리당 3명, 무소속 5명, 미결정 3명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법 개정 이후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 당원으로 가입한 의원들도 셋이나 됐다. 고양시 한 의원은 “당 공천을 한다는데 안 받으면 안 되잖아”라고 정당 가입 이유를 댔다. 기초의원이 당내 경선에 대비하기 위해 늘리고 있는 당원도 만만치 않은 수다.

개정된 선거법의 가장 큰 수혜자와 피해자는 누구일까. 민주노동당 관계자는 “가장 큰 수혜자는 민주노동당인 것 같다. 현재 36명인 민주노동당 소속 기초의원이 250~30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자신했다. 최근까지 10% 이상 정당지지율을 유지해온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의원 정수의 8.5~10%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사실상 한나라당이 점령한 기초의회에 중선거구제를 활용해 지금보다 10%포인트 이상의 점유율 증가와 영남 진출을 노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내심 기초의회가 호남의 교두보가 될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있다.

각 정당이 나름대로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무소속으로 나갈 후보들은 불리한 구조에 놓이기 마련이다. 기성 정치권에 얽매이지 않고 지방자치에 독자적으로 진출하기를 바랐던 풀뿌리 시민운동가들의 좌절감은 상당하다. 과천시의원을 꿈꾸는 서형원 초록정치연대 간사는 “두 가지가 확실해졌다. 정당 공천자와 돈 많은 후보가 유리해졌다”며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지역 활동가들, 특히 주부 여성은 재정적 부담이 만만치 않아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선거법 개정 이후 정당에 가입하거나, 이를 고민하는 지역 활동가들이 많다. 과천시 지역신문인 <마을회관> 편집장 우필호씨는 “‘지역재단’(박진도 소장)에서 농촌에 있는 자치 시·군·구 의회 희망 후보자들을 상대로 지방자치, 예산, 올바른 정치 리더십의 이해, 풀뿌리 정치 등 프로그램을 갖고 교육하려고 했지만, 대상자들이 정당 공천을 받으려는 쪽으로 줄서는 흐름이 있어서 아예 포기했다”고 말했다. ‘리스크’가 커진 정치권 진출을 포기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에서 여성단체 활동가로 일하며 내년 기초의회를 준비해온 ㅈ씨는 달라진 선거환경으로 출마를 접을지를 놓고 고민중이다.

지역토호-중앙정치 연대 더 굳어질 수도

민주노동당을 포함해 진보세력들이 연대와 조정을 통해 후보를 조정하던 풍습도 사라지게 됐다. 김달수 고양시의원은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노동당과 선거 대책 등을 놓고 회의를 같이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틀이 완전히 깨졌다”고 말했다. 선거법 개정에 찬성한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역 운동가들의 불만 또한 적지 않다. 물론, 선거구제만을 놓고 봤을 때 중선거구제로 전환되면서 한나라당 성향의 의원들이 점령하다시피 한 기초의회에 전체적으로 진보세력이 더 많이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을 희망적으로 보려는 시각도 있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정치학자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정당 공천이 책임정치를 한다는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그렇게 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지금은 지역 토호와 중앙정치가 손잡을 가능성이 있는 기득권적 정치 지형이 지방에서 형성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라며 “개정된 선거법은 이를 견제할 수 있는 풀뿌리 시민사회의 자유로운 지방정치 참여를 봉쇄했다”고 말했다.



“정당정치의 기본 아니냐”

[찬성한다/ 권오을 한나라당 지방자치위원장]

당을 통해 기초단위 행정에 분명한 목소리 내야



권오을 한나라당 지방자치위원장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지방의원 정당 공천은 정당정치의 기본”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의 지방에 대한 간섭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이제까지 단체장, 광역의회가 다 정당 공천을 해왔다. 나도 지방의회 출신이지만, 중앙당이 기초단체장이나 광역의회 의장의 활동에 간섭하지 않는다. 그럴 여력도, 시간도 없다. 관여해도 말을 안 들었다. 그렇게 걱정하듯이 정당정치가 중앙에서 하는 것처럼 지역에 반영되지 않을 것이다.
토호들이 지방의회를 장악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제껏 토호들을 견제할 수단이 없었다. 당을 통해 공천하게 되면 아무나 내겠나? 앞으로 당을 통해서 기초단위 행정에 분명한 목소리를 내게 되면, 시·군·구 단체장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공천권을 통해 지역을 장악하려 한다는 의문도 있다.

=가만히 있으면 다 내 편인데 공천을 하면 적을 만드는 것이다. 공천은 오히려 지역구 의원에게 손해가 될 수 있다. 물론, 국회의원의 영향력이 발휘될 것이다. 정당정치의 기본 아니냐. 국회의원이 지역에 기본 방향은 제시해줘야 한다.
기초의회가 중선구제로 가면 한나라당이 손해를 보는 것 아니냐.

=손해 본다. 현재 수도권에서 한나라당 출신 기초의원이 60% 가까이 되지만, 중선구제로 가면 50% 안팎으로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지난 두번의 대선을 뒤돌아봐야 한다. 지방선거에서 이긴다고 대선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지방정치를 손에 쥐겠다는 것”

[반대한다/ 심재덕 열린우리당 의원]

'공천=당선' 이라는 공식이 100% 성립하는 지역적 특성 여전한데…



심재덕 열린우리당 의원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정당공천제는 중앙정치가 지방정치를 손에 쥐겠다는 것”이라고 맞섰다. 심 의원은 지난 6월27일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기초자치단체장의 정당공천제와 연임 제한 유지를 결정하자, 이에 반대하며 당 지방자치위원회 위원장직에서 물러나고 나흘 동안 단식을 했다.
그는 “옛날에 국회의원이 지방에 사사건건 관여했는데, 앞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 정당공천을 하게 되면 지방의원들은 당에 줄을 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공천=당선’의 공식이 100% 성립하는 지역적 특성이 있는 곳이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당 공천은 아직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역에서는 후보자들이 공천을 받는 데 더 열을 올리지, 국민 속으로 뛰어들겠느냐는 것이다. 아울러 정당 공천을 받은 후보들이 아무래도 그렇지 못한 후보들보다 유리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정당 공천이 자칫 공천을 받기 위해 비리로 터지거나, 경선 과정에서 대의원 확보를 위한 과열경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선거법 개정이 당리당략에 따라 이뤄졌다고 봤다. 열린우리당이 기초의회의 정당 공천 배제쪽으로 의견을 모았지만,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확 태도를 바꾼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어느 세력이라고 할 것 없이, 4당의 당리당략에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며 “열린우리당은 지금 당장 한나라당과의 대결에서 기초의원 수를 하나라도 더 얻자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지방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 당선 가능성 별로 없어요”

2002 지방 선거에서 최연소로 당선된 김혜련씨의 고민



“당선 가능성? 별로 없어요.”
곧바로 망설임 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굳이 태연한 척하지도 않았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에서 전국 최연소 기초의회 의원으로 당선된 김혜련(29)씨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당선 가능성을 어둡게 점쳤다. 고양환경운동연합 회원사업 부장도 맡고 있는 그는 시민단체 활동가 출신으로 지난 3년여 동안 의정활동을 결코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자부하지만, 개정된 선거법 앞에선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해 보였다. <한겨레21>은 그가 어떻게 달라진 환경에서 선거를 치르게 될지 한번 들여다봤다.
남편도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인 김씨에게 피부에 와닿는 가장 큰 변화는 돈이다. 지난번 선거는 부모님과 친지, 환경단체 동료들이 모아준 1천만원으로 어렵사리 치러냈다. 고양 화정2동에서 득표율 40.7%를 기록한 그는 500만원을 돌려받았다. 결과적으로 500만원으로 선거를 치른 셈이다. 다른 후보 2명도 각각 공탁금 반환 기준인 15% 이상을 득표해 선거비용을 일부 보전받을 수 있었다. 상황은 지난 선거와 크게 달라졌다. 소선구제에서 중선구제로 바뀌면서 선거비용 또한 껑충 뛸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선거구가 커지면서 이번엔 사무실 없이 선거를 치르기 어려울 것 같다.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1인당 선거비용도 늘어날 것을 감안하면 3천만원 이상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선거비용을 마련할 재주가 없다고 토로했다. 더 어려운 것은 선거비용을 보전받기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선거구가 확대되면서 과거 3명이던 후보자가 이번에 10여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공탁금 반환 기준이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최소 10% 이상 득표해야 선거비용을 일부라도 보전받을 수 있는 국고보조 혜택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당선이 안 되면 3천만원을 고스란히 날려야 할지 모를 선거판은, “원래 없는 사람들”인 그에겐 너무 큰 모험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중선구제가 되면서 인간적인 고민마저 하나 더 늘었다. 화정2동과 화정1동이 한 선거구로 합쳐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화정1동은 고양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인 김달수(38) 의원의 지역구다. 김씨는 “의원직에 별로 욕심이 없다. 우리는 누가 해도 잘할 테니까”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불편한 환경 변화에 대한 원망을 떨쳐버리지는 못한 듯했다.
정당 공천을 할 수 있게 된 마당에 무소속의 불리함도 각오해야 한다. 지난번 선거에서 3명 중 기호가 ‘다’였지만, 이제 후보로 나간다고 하면 유권자의 시선을 끌기 어려운 10번 언저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처럼 추첨으로 기호를 배정받는 것이 아니라 정당의 국회의원 수에 따라 차례대로 번호를 배정받기 때문이다.
너나 없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 줄서는 동료 의원들을 지켜보는 것도 착잡하긴 마찬가지다. “이제껏 의원들이 당 성향을 내세우는 일은 거의 없었거든요. 아예 당 성향을 서로 모르고 살았는데….” 그래서 그는 새로 바뀐 선거법을 ‘전쟁’으로 묘사했다. “암울함 그 자체”라고도 했다. 그의 바람은 이랬다. “각 지역 사정과 상황이 다른 만큼 자율권을 주든지, 아니면 기본적인 모델을 몇개 제시한 뒤 그것을 지역 시·군·구민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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