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민주노동당 뒤집어졌다?

등록 2005-07-28 00:00 수정 2020-05-03 04:24

568호 ‘민주노동당이 뒤집어진다’ 보도 후 <판갈이> 등에서 격론
당직·공직 분리가 핵심인 개선 논쟁은 대선후보 경쟁과 맞물려 혼전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민주노동당이 뒤집어진다’는 <한겨레21> 특집 기사(제568호, 7월11일자) 에 대한 민주노동당 안팎의 반응은 뜨겁고도 격렬했다.

광고

"익명의 취재원을 동원해 독단을 주입했다"

진보적 감수성이 부족한 지도부로 지목된 몇몇 최고위원들은 <한겨레21> 기사가 최고위원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면서 당 차원의 강력한 대응을 요구했다. 특히 7월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부 최고위원은 <한겨레21>과 인터뷰에서 ‘당내 수구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고언을 서슴지 않은 윤종훈 회계사에 대해 “프락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성토하며 명예훼손 고발 등 법적 대응까지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의 기관지도 아닌 이상 우리 입맞에 맞는 기사만 기대할 수는 없다”는 반론, “지나친 대응은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지적 등 격론이 이어지면서 최고위원회의는 <한겨레21>에 반론권 보장을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한겨레21>은 생산적인 논쟁을 희망하며 민주노동당 홍보위원장인 최규엽 최고위원의 기고를 받기로 결정했다(40~41쪽 참조).

최고위원회의의 이런 결정과 무관하게 <한겨레21> 기사로 촉발된 민주노동당 안팎의 파장은 여전히 뜨겁다. 일단 <한겨레21> 보도 내용과 이에 대한 지도부의 대응 태도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게 일었다.

광고

민주노동당의 인터넷 기관지 성격인 <판갈이>는 ‘쌩뚱맞은 정치 선정보도’라는 비판 기사를 통해 통해 <한겨레21>을 맹렬히 비판했다. 비판 요지는 △익명의 취재원을 도열해 현 지도부는 무능하고, 무식하고, 철학이 없고, 특정 경향이다라는 레토릭을 쏟아내고 당이 살기 위해서는 지도부를 판갈이해야 한다는 독단을 독자들에게 주입시켰고 △당의 중견 책임자로 있다가 당에 불만을 품고 뛰쳐나간 뒤 당을 연일 비난하는 전직 시민운동가 윤종훈 공인회계사의 인터뷰로 일방적인 주장을 여과 없이 소개하며 결국 지도부 교체라는 세뇌를 되뇌고 있다는 것이다. 글을 쓴 김장민 기자는 특히 ‘요즘 한겨레가 달라진 정치 지형과 언론 환경, 재정 압박으로 신뢰와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에 벅차 남의 파산을 단정할 여유가 있는 처지가 아니다’면서 ‘한겨레가 나날이 둔감해지는 애독자에게 이번 기사를 통해 조·중·동 저리가라는 절정과 배설을 제공하는 황색언론의 표본을 유감없이 보여줬다’고 한겨레신문사를 향해 상당한 비난까지 퍼부었다.

몇몇은 “사실 반박과 한겨레에 대한 추궁이 잘 어울리는 칼럼”(당원), “<한겨레21> 기사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는데, 명쾌하게 정리해준 김장민 동지께 감사드리고 싶다”(광진당원)고 지지를 표시했다.

당 지도부 대응 비판 목소리도

하지만 다수 댓글들은 <판갈이>의 감정 과잉을 비판했다. “기사를 쓴 것인지, 분풀이를 한 것인지”(초록), “당 홈페이지 대문에 실릴 정도의 글이라면 당의 이미지에 맞게 차분하고 정돈된 합리적 글이어야 할 텐데, 감정에 격해 분을 참지 못하고 내뱉는 말 같다”(완두). <한겨레21>의 보도가 별로 틀리지 않다는 글도 있었다. “<한겨레21>의 비판은 지난번 원내 진출 1주년 기념 최고위 평가에서도 나왔던 비판인 듯한데…. 지금까지 그 비판들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나 대책 마련도 하지 않았다는 얘기 아닌가?”(언론 좋아), “<한겨레21> 기사 틀린 거 하나도 없다. 당 지도부는 제발 상식을 지켜달라”(이덕진)….

광고

당원 게시판의 쟁점토론 코너에서는 당 지도부의 대응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좀더 강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열을 좀 받았나본데, <한겨레21> 기사와 윤종훈 인터뷰, 홍세화 선생의 비판 등이 별로 그르지 않은 내용들인 것 같다. 당원 게시판에 일반 평당원의 비판적 논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평검사), “<한겨레21>은 그저 두개의 민주노동당을 얘기했을 뿐이다. 탄탄한 당원들과 건강한 지역활동이 그 하나요, 또 하나는 중앙당 지도부에 관한 얘기다. 민주노동당을 싸잡아 두들겨팬 기사가 아니라, 중앙당 지도부만 두들겨팬 기사다. 민주노동당 전부를 깠다고 말하는 건, 그렇게 말해 ‘유리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다”(neung1an), “<한겨레21> 기사에 나온 민주노동당 비판은 이미 당 내부에서 당원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제기된 내용들이다”(이강토 395).

하지만 “민주노동당 당 지도부는 정치적 자폐증”이라고 진단한 윤종훈 회계사의 인터뷰를 둘러싼 논쟁은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렸다. “윤종훈 전 연구원의 욕망과 개인 이기주의에 물든 사상적 퇴폐 수위를 보는 것 같아 분노스럽다”(누렁소1324)는 비판부터 “광적인 사이비 신도처럼 최고위원회를 옹호하고, 윤종훈에게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쓰며 매도하는 이유가 진정 궁금하다”(아름다운 반역)는 반론까지 그야말로 백가쟁명이었다.

한편, <한겨레21> 보도에 대한 최고위원회의 대응을 차기 당권을 겨냥한 힘겨루기로 보는 일부 언론의 시각이 곁들여지면서 민주노동당 제도개선특위(위원장 김창현 사무총장)를 중심으로 진행돼온 당직·공직 분리 원칙, 최고위원 선출 제도 개선책 등에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인터넷 매일노동뉴스 <레이버투데이>는 민주노동당의 <한겨레21>에 대한 반론권 보장 결정에 대해 “차기 당직 선거를 의식한 당내 세력간 파워게임의 전초전 성격도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레이버투데이>는 “주대환 정책위 의장은 내년 1월보다 더욱 앞당긴 조기선거론을 주장했고, 주 의장은 ‘조기선거=현 지도부 사퇴부’라고 설명했다”면서 “최고위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퇴론’은 선거 시기를 둘러싼 당내 역학관계의 산물이며, 결국 반론권 요청은 1월 (지도부) 조기 선거를 반대하는 세력과 그렇지 않은 세력간의 파워게임 부산물”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권영길-노회찬 대권경쟁 촉발?

그 속사정이 어떻든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최근 당직·공직 분리, 최고위원회의 선출 방식 개선책 등을 놓고 팽팽한 긴장관계를 거듭하고 있다. 한 최고위원은 “현재 당내 최대 현안은 당직·공직 분리 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의원에게 당 대표직 등 당직 겸임을 허용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라며 “결국 이 논쟁은 당내 각 정파별 합의가 없다면 쉽게 결론 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 최고위원도 “특정 정파가 선출직 최고위원 7명을 독식할 수 있는 현행 1인7표제는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고, 현재 남녀 최고위원 후보에게 각 1표씩 행사하는 쪽으로 개선하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면서 “결국 당직·공직 분리가 당내 논쟁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당직·공직 분리제도 개선 논쟁은 특히 오는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쟁 구도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쉽게 결단이 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 대표가 누리는 언론 노출 빈도 등을 고려할 때 현역 의원의 당 대표 겸직 허용은 곧바로 다음 대선 후보 공식화라는 등식으로 비약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한 최고위원은 “언론의 조명이 쉽게 집중되지 않는 민주노동당의 현실에서, 현역 의원 가운데 당 대표가 선출된다면 자연스레 언론을 통해 국민들 사이에 민주노동당 다음 대선주자로 자리를 굳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현역 의원의 대표직 겸직 허용은 당내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권영길·노회찬 두 의원의 치열한 대권 경쟁을 촉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회찬 의원은 최근 일부 언론과 인터뷰에서 “서울시장 출마에는 부정적”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당 일각에서 제기된 ‘노회찬 2006년 서울시장 출마-권영길 2007년 대선 출마’라는 역할 분담론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치면서 대권 도전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한겨레21> 보도로 한동안 분란을 겪은 민주노동당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4월3일부터 한겨레 로그인만 지원됩니다 기존에 작성하신 소셜 댓글 삭제 및 계정 관련 궁금한 점이 있다면, 라이브리로 연락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