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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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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사퇴는 불신임 결과 아니다”

등록 2005-07-28 00:00 수정 2020-05-03 04:24

568호 ‘민주노동당이 뒤집어진다’에 대한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의 반론
무상교육·무상의료·부유세 계속 추진… ‘대안 집권 세력’으로 인정받을 것

▣ 최규엽/ 민주노동당 최고위원·당 홍보위원장

최고위원회가 원외 대중운동과 원내 정치를 통합해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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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의석의 30분의 1 정도에 불과한 민주노동당이 6월 국회에서 비정규직 관련 법안의 강행 처리를 무산시킨 배경에는 ‘거대한 소수전략’이 있다. 원외 지도부인 최고위원회는 시민사회 운동의 지지를, 10명의 의원단은 최고위원회의 방침과 원외 시민사회 운동의 힘을 바탕으로 제도적 승리를 거둔다는 전략이다. 예를 들면 당의 원내외 지도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지도부가 수시로 회동해 비정규직 관련 법안의 강행 처리를 막아냈으며, 이 기간 동안 국회 맞은편에서 양대 노총 소속 노동자들의 집회가 열려 원내 활동에 힘을 실어주었다.

지난 6월29일 아침 8시에 개최된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에서 민주노동당은 ‘GP참사’와 관련해 윤광웅 국방장관 해임안에 반대하지만 김혜경 대표와 천영세 의원단 대표가 청와대 오찬에 참석해 장관의 사표 수리와 국방개혁을 대통령에게 요구하기로 했다. 결국 국방개혁 약속과 국회에 방위사업청 신설이라는 개가를 올렸다. 사실 이러한 원내외 통합전략이 처음에는 잘 작동되지 못했다. 지난 집행부에서 권영길 대표, 천영세 부대표, 최순영 부대표, 노회찬 사무총장 등 대표단의 대거 국회 진출로 다수의 최고위원들은 중앙정치를 익히면서 원내외 통합 지도력을 발휘해야 했다. 그러나 막강한 보좌진을 갖추고 대중적 지지를 얻으면서 중앙정치를 꿰뚫고 있는 의원단을 특별한 보좌진도 없었던 최고위원들이 곧바로 지도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겨레21>의 보도는 이러한 점에 대한 진지한 접근 없이 기술됐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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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공직 겸직 금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아

당연직 최고위원인 천영세 의원단 대표를 제외하면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당규에 따라 의원직을 겸임하지 못한다. 현재 겸직 금지 제도는 정치와 운동의 장점을 결합했다는 찬사와 의회정치 현실과 민주노동당의 인적 한계를 무시한 지나친 원칙론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당직·공직 겸직 금지, 책임최고위원 제도뿐 아니라 최고위원 선출 방식 등 지도 체제의 개편을 위해 6월에 이미 제도개선특위를 구성해 논의 중이다. 당 지지도가 총선 뒤 최고 20%를 돌파했으나 10% 내외로 곤두박질치다 최근 15% 내외에서 답보 상태에 있어 ‘과연 당이 2012년 집권은커녕 제1야당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자기 반성이 당내에 팽배하다. 이런 다급함이 민주노동당으로 하여금 2004년 5월 최고위원회 선거 전부터 근 2년 동안 논의만 무성하던 집권전략위원회를 올 7월 초 구성해 2006년 1월까지 최종적인 집권 전략을 수립하게끔 했다. 현재 당내에서 차기 지도부 조기 선출 주장이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다. 조기 선출을 주장하는 다수의 입장은, 당 대회 일정과 매년 상반기 각종 선거 일정에 맞춰 최고위원회 임기를 이번에 한해 2월 당 대회까지로 단축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를 지도부에 대한 불신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부의 주장처럼 견책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한겨레21>이 보도한 바와 같이 ‘민주노동당이 사실상 파산한 마당에 당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최고위원 전원이 사퇴하고 (임시집행부 밑에서) 긴급하게 새 지도부를 꾸린다’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주관적인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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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세와 대부업법 관련 혼선 교훈 삼아 정책결정 시스템 보완

한편, 당 안팎에서 “지난해 말 부유세 관련 당론과 올 4월 대부업법 당론 결정 과정에서 보듯이 당내 의사소통, 정책결정 과정의 미숙함도 극복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고위원회는 이러한 혼선을 예방하기 위해 ‘정책위원회와 의원단은 향후 입법계획서를 최고위원회에 정기적으로 제출할 것’을 결정했다. 아무리 널리 알려진 당의 입장이라도 최고위원회가 충분히 논의해 당론으로 정해 입법화하겠다는 의미다. 어쨌든 최고위원들은 부유세 관련 안건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켰고, 의원들은 지난해 11월 초 부유세 도입을 위한 조세 인프라를 구축하고자 10대 조세 관련법 개정안을 입법 발의했다. 부유세 관련 입법 발의 당시 혼선을 교훈 삼아 현재 최고위원, 의원 등 6명의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공동본부장회의를 통해 원내외 추진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이를 추진단 회의에서 구체화해 최고위원회의 추인을 받아 의원단에서 입법화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사실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 중 단 한개도 실현하기 벅차지만 이 세 가지 과제를 ‘집권을 앞당길 수 있는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삼겠다’는 민주노동당의 각오는 결연하다. <한겨레21>의 보도처럼 진보정책에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구호로서의 부유세를 현실에 안착시키기 위해 충분한 논의와 대중적 힘을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자, 농민, 서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지지율 답보상태 돌파

민주노동당의 집권상은 뭘까? 창당선언문과 강령에 의하면 ‘노동자, 농민, 서민이 중심이 돼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아 줏대 있으며 평등과 참여를 추구하는 실질적인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1998년 ‘국민승리21’ 시절 민주노총 조합원을 중심으로 1900명에 불과했던 당원이 올해 7만명을 돌파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은 농민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10여년간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민주노동당을 통해 2004년 총선에 조직적으로 참여했다. 올 상반기 정부의 비정규직 관련 법안 저지와 김태환 한국노총 충주지부장 사망 사건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당과 민주노총, 한국노총은 현안에 공동 대응했고, 그 결과 사회적 교섭 논란과 노조 비리에 대한 도덕성 공방으로 수세에 몰렸던 양대 노총이 단결 투쟁을 통해 공세적 입장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민주노동당은 집권을 실현하기 위해 ‘화두만 제공하는 운동권 정당’이라는 인식을 ‘대안 집권세력’이라는 인식으로 전환시켜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제안에 대해 최고위원회와 의원단 총회 등을 통해 “연정은 곤란하지만 민생보호와 정치개혁을 위해 열린우리당과 적극 공조할 수 있다”고 밝히고 “특히 정당명부제 확대 등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하자”고 역으로 제안했다. 민주노동당이 정당명부제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이유는 소수정당과 정치 신진세력에게 매우 불리한 족쇄를 풀지 않고서는 집권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한편 민주노동당의 유기적 통일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당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세력들간의 경쟁과 통합을 통한 변증법적 결합력이 약해 항상 갈등이 잠재돼 있기 때문이다. 노선과 조직을 중시하는 민주노동당 당원들의 속성상 이러한 갈등은 단시간 내 치유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당직과 공직 후보 선거를 통해 분란을 경험한 당내 각 세력들이 당 지도부의 지도력을 보장해주는 대신 정치적 책임을 묻는 선거제도를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겨레21>이 보도한 대표, 최고위원 총사퇴는 이러한 당내 상황과 그간의 활동을 감안한다면 정치적 책임에 대한 총사퇴와는 분명히 구분돼야 함에도 부적절한 표현으로 인해 민주노동당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대단히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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