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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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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로비스트, 검찰도 로비스트

등록 2005-07-12 00:00 수정 2020-05-02 04:24

9월 정기국회서 본격 논의될 수사권 조정문제 놓고 의원 포섭 전력
학연·지연·혈연 동원한 과열 양상, 권력기관 밥그릇싸움으로 비쳐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수사권 조정을 놓고 갈등을 벌이는 검찰·경찰(검경)이 정치권 줄대기에 ‘올인’하고 있다.
검경이 지난 6월 수사권 조정에 대한 당사자간 합의에 최종 실패하고, 논의의 공간이 국회로 옮겨온 탓이다. 이인기 한나라당, 홍미영 열린우리당 의원이 사법경찰관을 수사 주체로 명문화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나란히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또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조정기획단은 지난 7월5~6일 각각 열린우리당의 수사권조정 태스크포스를 찾아가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수사권 조정 문제는 이제 9월 정기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검경은 벌써부터 학연·지연·혈연 등을 동원해 자신들의 논리와 입장을 의원들에게 홍보하느라 분주하다. 이들이 자신의 논리를 펴는 것을 나무랄 순 없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 의원 초청 강연 일사불란

경찰은 일찌감치 대국회 로비전에 들어갔다. 경찰청에서 최종 통제와 관리를 한다. 경찰 관계자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최광식 경찰청 차장이 국회의원을 강사로 모셔 강연이나 특강을 개최하도록 하고, 전화나 메일 등을 통해 경찰의 입장을 적극 알리라는 구두 지시를 전국 경찰서에 내려보냈다”고 밝혔다. 이같은 내용이 대외에 공개됐을 때 빚어질 모양새를 고려해 차장이 구두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경찰 안팎에서는 허준영 경찰청장이 지휘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고 있다. 전국 경찰서가 불과 한두달 새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앞다퉈 의원들을 초청해 강연을 듣는 풍경도 다 경찰청 차원의 지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기준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6월18일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서부경찰서에 내려가 수사권 조정이란 주제를 놓고 30분 이상 강연을 했다. 서부경찰서장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유 의원뿐만 아니다. <한겨레21>이 무작위로 여야 의원 10명에게 물었더니, 모두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경찰서나 경찰청에서 요청을 받고 최근 강연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의원들은 경찰서장으로부터 수사권 조정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내용의 메일을 받기도 했다.

의원들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지지하는 글들로 도배됐다. 홍미영 의원의 홈페이지에는 수사권 조정 논쟁이 불붙기 시작한 지난 4월부터 무려 3천건의 관련 글이 올라 있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지지하는 글이 90% 이상이다. 그런데 많은 의원들의 홈페이지에 같은 아이디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어, 경찰청 차원에서 온라인 홍보 담당자나 ‘알바’를 따로 둔 게 아니냐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황운하 경찰 수사권조정팀장(총경)은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다. 경찰의 입장을 홍보하는 것은 정상적인 활동이자,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한발 늦게 경찰을 뒤따라 하고 있다. 전국 각 검찰청이 동원돼 의원들에게 검찰쪽의 논리를 홍보하고 있다. 주로 대학, 사법시험, 사법연수원 동기 등으로 얽힌 친분 관계를 활용하고 있다. 박상옥 대검 공판송무부장은 “내부적으로 일선 기관장한테 지역구 의원 등과 기회가 있으면 수사권 조정 문제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라고 여러 번 연락을 했다”고 밝혔다. 실제 부산에 지역구를 둔 한나라당 의원 2명은 부산지검 차장한테서 이같은 전화를 받았다. 박상옥 공판부장은 6월30일 여야 모든 의원들한테 ‘수사권 조정에 대한 검찰의 입장’이란 책자와 함께 “국가의 장래가 걸려 있는 이 문제에 대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논의를 이끌어주시리가 굳게 믿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A4용지 한장짜리 서한을 보냈다. 검찰 관계자는 “준사법기관인 검찰이 이렇게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야겠냐”라고 반문했다. 좀체 정치권에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는 검찰이 수사권 조정 문제로 정치권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모양새다. 국회 법제사법위 소속 의원실의 보좌관은 “평소 자료 요구에도 시큰둥하던 검찰이 먼저 찾아와서 수사권 조정을 설명하고 난 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도와주겠다고 한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평소 시큰둥하던 검찰, 먼저 찾아오네

검경의 정치권 로비는 수사권 조정을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들에게 좋은지를 이해시키는 과정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검경이 공식적인 통로보다 사적 인맥이나 비공식적인 접촉 등 온갖 통로를 활용해 정치권에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것이다. 또 기관의 일선까지 조직적으로 나서 수사권 조정 문제에 경쟁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은 권력기관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친다. 노무현 대통령이 7월5일 검경의 싸움 중단을 지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유기준 의원은 “한쪽에서 대포를 쏘니, 다른 쪽에서 대응 포격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사권 조정은 국민들이 결정할 몫인데, 검경이 벌써부터 지나치게 대국회 로비를 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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