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삼성제일빌딩 18층에 가면 모조리 다 있다
황장엽 노동당 전 비서부터 조갑제·서정갑·이동복씨까지 한층에 사무실 차려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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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역삼동 702-2번지 삼성제일빌딩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헌법 수도를 외치는 원조 보수 세력의 메카로 확고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2003년 대령연합회가 맨처음 입주
이 빌딩의 겉모습은 강남의 여느 오피스텔과 다를 게 없다. 널찍한 현관 로비, 로비 한켠에 놓인 휴식용 소파 몇개, 각종 사무실 이름이 빼곡한 표식판, 보편적인 사무용 건물의 외관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건물 18층에 오르면 얘기는 좀 달라진다. 이곳은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보수계 주요 인사들의 사무실이 촘촘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테헤란로를 기준으로 왼쪽 뒤 복도 끝에 있는 방인 1804호. 등기부등본 서류상 29평, 실평수 15평 규모의 이 사무실에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상시적인 투쟁’ 기치를 내걸고 싸워온 대한민국 육해공군해병대대령연합회가 입주해 있다. 보수 우익 단체들의 연합체인 ‘반핵반김정일국권수호국민협의회’의 제5대 회장을 지낸 서정갑 예비역 대령이 회장을 맡고, 전역 대령 7천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대령연합회는 지난 2003년 3월 총회를 거쳐 1억8500만원에 이 사무실을 구입했다. 보수단체 가운데 처음 이곳에 둥지를 튼 것이다. 이 사무실은 현재 ‘밝고힘찬나라운동본부’ ‘국민행동 친북좌익척결본부’의 근거지 역할도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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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령연합회 바로 옆방인 1803호에는 대한민국의 보수 세력을 대표한다는 논객과 지식인들이 모여 있다. 극우세력의 이론적 대부 노릇을 해온 조갑제 <월간조선> 전 대표가 지난 3월31일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이곳을 근거지로 활동 중이다. 지난 1971년 기자 생활을 시작한 이후 34년 만에 다시 한번 평기자로 돌아온 그는 이곳에서 ‘자유지식인선언그룹’과 한방 살림을 시작했다. 지난 2월3일 ‘대한민국의 자유와 정통성 및 헌법가치 수호’의 기치에 동의한 40~70대 보수 지식인 1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출범한 자유지식인선언그룹은 최광 전 보건복지부 장관·김상철 미래한국신문 발행인 등이 공동대표를 맡고, 현재 600여명의 회원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 3월24일 발족한 전향한 좌파와 중견 보수 학자 중심의 ‘뉴라이트 싱크넷’이 민족통일과 국가보안법 개정을 내거는 것과 달리 “현행 헌법 고수를 근간으로 한 통일론”으로 정통 보수의 가치를 차별화하고 있다. 자유지식인선언그룹은 실제 지난 6·15 공동선언 5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남쪽 대표단 335명이 참여한 가운데 통일대축전 행사가 성대하게 열리는 것에 맞불을 놓는 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6월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월례 심포지엄이 대표적인 사례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이 심포지엄에서 “김대중의 6·15 공동선언은 그 내용이 반헌법적, 반역적“이라고 주장하는 등 극우보수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황장엽씨, <자유북한방송> 주도
조 전 대표는 이곳을 근거지로 자유지식인선언그룹 멤버들과 정통 보수의 맥을 있는 활동에 주력하면서 매주 월요일 7시이면 건물 18층 공동 회의실에서 ‘조갑제의 기자교실’을 열고 있다. 월 10만원의 수강료를 받는 이 강의는 현재 30명 정도가 수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8층에 모인 보수단체는 이들뿐이 아니다. 이들 사무실과 인접한 1819호에는 이동복 전 의원(자민련)이 입주했다. 이 전 의원은 지난해 9월9일 남덕우 전 국무총리·박관용 전 국회의장·이종구 전 국방장관 등과 함께 △연방제 통일을 수용한 6·15 남북 공동선언 파기 △소모적 현안인 수도 이전과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 등 과거사 청산, 언론개혁 등의 일방적 추진 중단 △안보와 경제 영역의 좌경화 정책 종지부 등을 요구하는 ‘보수원로 시국선언’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런 이 전 의원이 최근 자신이 주도하는 ‘북한민주화포럼’ 사무실을 이곳으로 이전한 것이다. 북한민주화포럼은 ‘북한의 민주화 없이는 대한민국의 안전과 번영도 없다’는 신념을 가진 보수 인사들이 모인 단체로 이동복 전 의원을 상임 공동대표,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김영작 국민대 교수·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박용옥 전 국방차관·윤대일 탈북자동지회 부회장 등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신혜식 인터넷 독립신문사 사장은 이 단체의 상임 공동사무국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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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제일빌딩 18층을 보수단체의 메카로 만드는 백미는 북한에 김일성 중심의 주체사상을 확립하고 김정일을 지원하던 북한의 최고위급 권력자로, 1997년 대한민국에 망명한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다. ‘최악의 폐쇄된 독재국가 북한의 민주화’에 여생을 바치겠다며 2004년 2월 각종 새터민(탈북자) 단체의 연합체 격인 ‘북한민주화동맹’을 결성한 황장엽 전 비서가 이 빌딩 1810호와 1811호 사무실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사무실은 테헤란로를 기준으로 오른쪽 앞에 있는 방이다. 황 전 비서는 지난해 12월 김영삼 전 대통령을 이 동맹의 명예위원장으로 영입했고, 올 초부터 ‘북한의 실상을 알릴’ 목적으로 <자유북한>이라는 잡지를 만드는 등 활발한 북한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황 전 비서는 이곳에서 지난 2004년 4월20일 탈북자들이 만든 라디오 방송국인 <자유북한방송>을 주도하고 있다. 현재 김성민 방송국장이 이끄는 <자유북한방송>은 탈북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별도 사무실에 방송 관련 주요 기자재를 갖춰놓고 있다. 그러나 <자유북한방송>의 방송 콘텐츠, 방송 제작 등을 주도하는 실질적인 두뇌집단은 ‘자유북한방송 방송위원회’ 위원장인 황장엽 전 비서의 사무실인 역삼동 삼성제일빌딩 18층에 모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북한방송> 방송위원회에는 현재 김동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민관식 전 문교부 장관·손병두 서강대 총장·안응모 전 내무부 장관·이철승 자유민주민족회의 대표상임의장·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등 쟁쟁한 보수 인사들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싼 임대료에 ‘협조체제 구축’장점
강남의 중심지인 역삼동 삼성제일빌딩이 보수세력의 메카로 자리잡은 것은 어떤 이유일까. 이곳에 입주해 있는 한 보수단체의 핵심 인사는 “무엇보다 강남의 중심권에 위치한 이 빌딩의 29평형 사무실 임대료가 보증금 1천만원에 월 90만원 수준으로 사당동 등 인근 지역보다 훨씬 저렴하고, 정통 보수를 자처하는 단체들 사이에 유기적인 협조 체제 구축과 정보 교환이 원활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각종 보수단체들이 알음알음으로 모여들다 보니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헌법을 수호하는 세력의 중심지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 빌딩 12층 1205호에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를 지지하고 헌정질서 유지를 위해 국가보안법을 사수해야 한다고 외쳐온 보수 법조인 단체인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이 입주해 있어 보수세력의 메카로서 명성을 한층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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