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 압승과 함께 소장파·비주류 공격당하는 한나라당… 혁신위의 당 개혁작업 물건너가나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지난 5월3일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 사회를 본 이명규 의원은 박근혜 대표가 연단에 오르기에 앞서 “이번 선거에서 온몸을 던지신…”이란 소개와 함께 의원들의 박수를 청했다. 짝짝~. 이 의원이 박 대표의 말이 끝났을 때 “압승을 이끈 박근혜 대표에게 다시 한번 큰 박수를 부탁드립니다”라고 하자, 우레와 같은 의원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반대파들을 모조리 쳐야”
반면 같은 날 한나라당 홈페이지에서는 ‘마녀사냥’이 벌어지고 있었다. “소위 반박 진영 보시오~. 이재오, 홍준표,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당신들이 국민을 위해 한 게 뭐가 있다고 설치냐?” “자칭 소장파라고 말하는 의원들과 홍준표씨에게~ 이번 재보선 압승에 대해 당신들은 박 대표에게 큰절이라도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4·30 재보궐 선거로 한나라당 내 소장파와 비주류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다. 한나라당이 ‘4·30’에서 승리했지만, 전리품은 모두의 몫이 아니었다. 온전히 박 대표에게 돌아갔다. ‘안티 박근혜’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잔치에서 ‘왕따’다. 한나라당 인터넷 홈페이지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게시판에 소장개혁파로 분류되는 수요모임의 원희룡·남경필·정병국 의원과 비주류를 대표하는 이재오·김문수·홍준표 의원을 비난하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건씩 올라오고 있다.
“4·30은 박 대표에게 생과 사를 경험하게 한 중요한 일전이었다. …들끓는 반박의 시끄러움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박사모 인터넷 게시판에 아이디 ‘굴비 한두름’이 올린 글이다. 한나라당 게시판에는 아이디 ‘좋은 사람’이 “박근혜 반대파들이 만약 선거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분명히 박 대표를 쫓아내려고 했을 것이다. 반대파들을 모조리 쳐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 지지자들이 4·30을 계기로 반박 의원들의 출당이나 탈당을 요구하는 등 집단 공세에 나선 것이다.
네티즌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의원들도 소장파 등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김무성 사무총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선거 현장에서 열심히 뛴 소장파와 친노 매체나 만나 당을 비판하고 상대 당을 옹호한 나쁜 소장파를 분류해야 한다. 그동안 조용한 게 좋다고 해서 아무 말 안 했는데 앞으로 할 말은 하겠다”고 소장파에 날을 세웠다. 공성진 의원은 “소장파들의 얘기가 당내 반향이 없다. 대다수 의원들은 남경필·원희룡 의원 등이 얘기하는 것에 귀기울이지 않는다”고 소장파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4·30 결과가 ‘박근혜의, 박근혜에 의한, 박근혜를 위한’ 선거로 불릴 만큼 강화된 박 대표의 당내 입지가 불러온 단상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재오 의원은 “비주류에 대한 비판이 커지는 이유를 모르겠다. 당을 위해 당의 잘못된 노선을 비판했지만, 이번 재보궐 선거 등 당내 문제에서 협조해오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이성권 의원은 “박 대표 지지자나 골수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이참에 비주류의 씨를 말리려 하고 있다”며 “비판 세력에 귀를 기울이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박의 입지 약화는 당 개혁작업을 주도하는 혁신위(홍준표 위원장)의 추진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재보선 패배로 혁신위를 만들어 개혁에 불을 댕기려는 열린우리당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박 대표는 5월3일 기자들과 오찬에서 혁신위의 집단지도체제 제안에 대해 “우리 당은 지금 대표 한 사람이 좌지우지하는 정당이 아니다. 모든 중요한 사안을 의원 전원이 참여하는 의총에서 결정하고 있다. 이를 9인 위원회(집단지도체제)로 돌린다는 것은 거꾸로 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재보선 뒤 당내 정치적 위상이 높아진 박 대표의 입에서 나온 이러한 발언은 한층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조기 전대와 집단지도체제도 불투명
실제로 5월3일 의원총회에서 박 대표의 변화된 힘이 감지됐다. 지도부와 혁신위가 날카롭게 대립한 책임당원제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의총은 의외로 조용히 해산됐다. 정병국·고진화 의원 외에 지도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책임당원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원이 아무도 없었다. 재보궐 선거 이전에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한 안상수 의원 등 3선 의원들은 이날 모습을 나타내지 않거나 발언자로 나서지 않았다. 이를 두고 한 초선 의원은 “머리를 들면 총을 맞을까봐, (박 대표에게) 다들 납작 엎드렸다”고 표현했다. 혁신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의원은 “박 대표가 힘을 얻으면서 혁신위가 힘을 잃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혁신위의 추동력이 많이 떨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 때문에 조기 전당대회와 집단지도체제가 사실상 물건너간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많다.
하지만 홍준표 혁신위원장은 “혁신위 안이 힘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다. 결국 박 대표가 혁신위 안을 앞장서서 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의 이러한 인식의 밑바탕에 “재보선을 통해 대표의 권한이 강화됐다는 것은 난센스다. 재보선 효과는 한달을 못 갈 것”이라고 말했다. 원희룡 의원은 “4·30으로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당 혁신 작업에 힘을 실어주고 갈 길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어쨌든 한동안 소장파와 비주류들의 목소리가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소나기가 내리는데 피하지 않으면 감기가 걸려서 더 못 가게 된다.” 최근 당내 상황을 걱정하면서 한 소장개혁파가 던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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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 재보궐 선거가 끝난 뒤 의원회관에서 만난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이 내뱉은 말이다. 많은 한나라당 의원들과 지지자들은 소장파가 선거에서 당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날을 세우고 있다. 과연 소장파들은 이런 비판을 받아 마땅할까?
원희룡 의원은 4월17~28일 김해·공주·아산·영천 등 4곳의 선거구를 돌았다. 정병국 의원은 성남에 3번 간 것을 비롯해 포천과 김해, 영천에 가서 유세를 도왔다. 남경필 의원도 성남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지원유세에 나섰다. 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소장파 의원들도 너나 없이 유세 현장을 누볐다.
그런데 왜 뒷짐만 진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당 안팎의 오해를 받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박근혜 대표 등 지도부와의 동선이 엇갈린 탓으로 보인다. 정병국 의원은 “들러리 설까봐 가능한 한 대표가 가는 날은 피했다. 또 가급적 당에도 얘기하지 않고 곧장 현장에 내려갔다”고 말했다. 선거철 카메라와 당의 시선은 대표에게 집중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대표와 거리를 두고 움직인 소장파들의 동선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다.
한 소장파 의원은 “소장파들의 속성상 지도부가 가는 데 따라다니며 카메라 찍히는 것을 싫어한다”며 “소장파들이 재보궐을 돕지 않았다는 것은 소장파를 씹기 위해 만든 소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비주류 의원들도 자기 몫은 했다고 자부한다. 김문수 의원과 박계동 의원은 각각 영천과 성남에서 며칠씩 머물며 후보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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