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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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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수 파동, 배신과 보복의 회오리

등록 2005-04-27 00:00 수정 2020-05-03 04:24

자민련의 거부로 당적 정리 못해 아산 후보 등록 무산…열린우리당의 승리지상주의는 또 논란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기초자치단체 출마 예정자 가운데 제출 서류 미비로 후보 등록을 거부당한 경우는 있지만, 집권 여당이 영입해 전략 공천한 국회의원 후보가 과거 당적을 깔끔하게 정리 못해 출마하지 못한 것은 처음이다. 정치사에 길이 남을 최초의 사건이다. 창피해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다.”

4·30 재보선에 깊이 관여한 열린우리당의 핵심 당직자는 최근 기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기간 당원들 반발에도 공천했건만…

4·30 재보선에 올인하고 있는 여의도 정가. 그것도 지난해 4월 17대 총선에서 확보한 원내 과반수 의석 회복을 공언하며 총력전을 펼쳐온 집권 여당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고개를 떨군 것이다. 바로 ‘이명수 파동’이다.

열린우리당이 아산 지역에 필승 카드로 영입한 이명수 전 충청남도 부지사가 후보 등록을 못한 이유는 ‘정당 추천이 허용되는 공직선거시 당원인 자가 무소속으로 등록하거나, 둘 이상의 이중 당적을 가진 자가 후보자로 등록한 경우 등록 무효 또는 당선 무효 사유가 된다’는 법규정 때문이었다. 자민련을 탈당한 심대평 충남지사, 조부영 전 국회부의장 등과 함께 ‘중부권 신당’을 도모해온 핵심 주역인 그가 열린우리당으로 말을 바꿔타고 공천장을 받았지만, 자민련 당적을 뒷정리하지 못해 이 규정에 걸린 것이다.

언뜻 이씨의 단순한 실수로 집권 여당과 이씨 모두 조롱거리가 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명수 파동은 승리지상주의가 판치고,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배신과 보복, 협력과 견제가 거듭되는 물고 물리는 대한민국 정치판의 냉혹한 현실이 그대로 담겨 있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명수 파동의 근원은 열린우리당의 ‘승리지상주의적’ 재보선 전략에서 비롯됐다. 법원의 선거법 위반 확정 판결 등으로 무려 5명(이상락·이철우·오시덕·복기왕·김맹곤)의 소속 의원이 금배지를 상실하자 열린우리당은 4·30 재보선에 사활을 걸었다. 당 안에서 성남·중원, 포천·연천, 공주·연기, 아산, 영천, 김해갑 등 6곳의 재보선 지역 가운데 승리가 확실한 곳은 한두 군데뿐이라는 부정적 분석이 나오자 여당 지도부는 기간당원에 의한 직접 후보선출 원칙을 상당수 지역에서 유보했다.

이명수씨를 전략 공천한 충남 아산 지역이 대표적인 경우다. 아산시 기간당원들은 ‘상향식 민주주의’ ‘당원들의 의사결정’ 원칙에 대한 배신이라며 반발했고, 이씨가 지난해 대통령 탄핵을 지지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하지만 김태홍 공천심사위원장, 최규성 당 사무처장 등은 ‘당선 가능성 최우선 원칙’을 고수했다. 여당 자체 여론조사 결과 공천을 신청한 임좌순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이씨에 비해 10% 이상 뒤지는 것으로 나오자 이씨 영입쪽으로 분위기를 몰고 간 것이다. ‘낙하산 공천’을 받은 이씨는 아산 전투에 투하됐다. 그런데 어이없게 ‘호적 정리’를 못한 이명수씨의 낙하산은 끝내 펴지지 않았다.

‘배신’ 비난 피하려 탈당계 제출 안했다?

후보 등록 마감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불거진 뜻밖의 상황에 여당 지도부는 임좌순씨 재공천 카드를 꺼내들었다. 4월15일 밤 이명수씨에게 후보 등록 마감날인 16일 낮 12시까지 자민련에서 탈당 확인서를 받아오지 못하면 후보직을 포기하라고 압박했다. 동시에 이씨에게 밀렸던 임좌순씨에게 후보 등록에 대비한 서류를 준비하라는 심야 지시를 하달했다. 결국 이씨가 제명 확인서를 받아오지 못했고, 16일 2시30분까지 기다리던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후보를 교체해 임씨를 등록시켰다.

문희상 당 의장은 4월17일 이명수씨, 여기서 의원직을 상실한 복기왕 전 의원과 함께 아산에서 열린 임좌순 후보 사무실 개소식에 참여해 지지를 호소하는 등 후유증 봉합에 주력했다. 하지만 4월20일 한나라당을 탈당한 염홍철 대전시장 영입까지 겹치면서 여당 안팎에서 정책과 노선, 원칙을 상실한 선거 승리지상주의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송영길·정봉주 의원 등은 “당이 정체성을 잃고 무원칙하게 가고 있다”고 비판했고, ‘이명수 공천 반대 상경 시위’를 주도한 아산시당원협의회 신동석씨는 “지도부의 무원칙한 승리지상주의 때문에 조직의 결속력이 떨어졌다”며 “일단 승리를 위해 매진하되, 선거가 끝난 뒤 지도부에 따질 건 따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번 파동은 이명수씨 개인의 정치적 욕심이 초래한 측면도 강하다. 이씨는 충청권에서 심대평 충남지사의 정치적 복심으로 불려왔다. 그와 정치적 운명을 함께해왔고,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 위헌 판결 직후부터 중부권 신당 가능성을 언급해온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심 지사가 자민련을 탈당해 신당 행보를 구체화하자 그는 열린우리당으로 말을 바꿔탔다. 심 지사는 이씨에게 폭탄주를 먹여가며 만류했지만 이씨는 열린우리당으로 옮겨갔다. 충청권 정가에서는 “아직 실체가 없어 무소속 출마가 불가피한 중부권 신당보다 여당 후보가 당선에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는 평가가 대세다.

더욱이 이씨는 자민련의 영향력이 아직 남아 있는 아산에서 “탈당한 배신자”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열린우리당 공천이 확정된 뒤에도 자민련에 탈당계를 내지 않는 정치적 선택을 했다. 대신 자민련이 지난 3월8일 당기위원회를 소집해 그와 정진석 전 의원 등 4명을 심대평 지사의 탈당에 동조한 해당행위자로 규정해 제명한 것을 전면에 내세웠다. 실제 후보 등록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일부에서 우려했지만, 이씨는 자민련 대변인실 등에 몇 차례 전화를 걸어 제명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리고 ‘제명됐는데 왜 자꾸 전화하느냐’는 얘기를 듣고 끝까지 탈당계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결정적인 족쇄였다. 4월15일 후보자 등록을 위해 아산시 선관위를 찾은 이씨에게 선관위 관리실장은 “자민련 탈당 시실을 증명하든지, 제명당했다는 증명서를 가져오라”고 요구한 것이다. 인터넷에 아직 그가 자민련 당적을 갖고 있다는 글이 올라온 게 문제였다. 다급한 이씨는 이날 밤 술자리에 있는 김학원 자민련 대표를 찾아가 ‘제명 증명서’를 요구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핵심 당직자 제명은 집행위원회에서 최종 확정되는데 류근찬 의원의 반발로 집행위가 열리지 않았다며 제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김 대표에게 “제명됐다고 해놓고, 탈당이 안 됐다고 하는 게 가능하냐”고 항의했지만 별수 없었다. 이씨 핵심 지지자들은 다음날인 16일 오전 김학원 대표의 집까지 찾아가 압박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자민련은 어쨌든 심 시자 등과 함께 당을 저버린 이씨에게 보기 좋게 보복한 셈이다.

중부권 신당도 이명수 응징한 셈

이명수씨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자민련이 지난 3월8일 나에게 당기위원회에서 제명했다는 팩스를 보내왔고, 김학원 대표에게 항의했을 때도 ‘해당행위 제명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고, 원철희 전 의원을 자민련 후보로 등록시킨 점 등을 볼때 나에게 보복을 하려고 일부러 확인서를 안 내준 것”이라며 “내가 정치를 못해도 이런 풍토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씨는 물론 자신의 정치적 욕심이 초래한 과오도 인정했다. 그는 “내심 탈당했다고 비판받는 것보다 제명됐다는 얘기를 듣고 싶었다”면서 “제명 여부를 서면확인하지 않은 것은 내 실수”라고 말했다.

이명수 파동은 변화무쌍한 정치 현실도 잘 보여준다. 이씨의 좌절은 한때 쓴 잔을 마셔야 했던 임좌순 전 사무총장에게는 결과적으로 큰 행운이 됐다. 임씨는 열린우리당 후보가 됐을 뿐 아니라, 가장 강적인 이명수씨가 출마하지 못하면서 한나라당 후보와 ‘해볼 만한’ 승부를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심대평 지사 등 중부권 신당 추진 세력도 결과적으로 자신을 저버린 이명수씨를 응징한 셈이 됐다. 이씨 제명건을 당 집행위원회에 회부해 최종 확정하려는 김학원 대표를 막은 것은 류근찬 의원이다. 그런데 정작 류 의원은 4월14일 “자민련의 명이 다했다”며 탈당한 뒤 심 지사의 중부권 신당 대열에 참여했다.

류 의원은 이와 관련해 “당시 한솥밥 먹던 이명수씨를 제명하는 것은 너무 야비하다고 생각해 그를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에서 김 대표와 맞서 싸웠는데, 결과적으로 이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류 의원은 “3월8일 당기위원회에서 이씨와 함께 제명된 정진석 전 의원은 자민련에 탈당계를 제출해 공주·연기 무소속 출마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서 “결국 이씨가 자기 꾀에 넘어간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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