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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창피해라

등록 2005-03-30 00:00 수정 2020-05-03 04:24

독도 관련 초강경 기조에 비판 거세자 ‘국군 주둔’ 등의 주장 공식 폐기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민주노동당은 3월24일 최고위원회를 통해 독도 문제에 대한 대응 방향을 △남북 공조와 △국제 연대로 결정했다. 3월16일 최고위원회에서 채택했던 △주한 일본대사 추방 △독도에 국군 주둔 △독도 개발 등의 주장은 공식 폐기했다고 홍승하 대변인은 밝혔다. 독도 문제를 놓고 한참 멀리 나갔다가 1주일 만에 유턴을 한 셈이다.

고춧가루 뿌리려다 포기한 사연

사실 3월16일 결정은 기성 정당을 훌쩍 뛰어넘는 초강경 기조였다. 주한 일본대사를 추방하라는 것은 외교관계 단절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조치였던 탓이다. 그런 까닭에 당내에선 “평화와 국제연대, 생태주의를 구현해야 하는 진보정당답지 못하고 보수우익 정당과 차이가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은 슬금슬금 기조를 바꾸기 시작한다. 김혜경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3월22일 독도를 방문했다. 그 자리에선 3월16일 기조를 담은 성명서를 발표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대신 ‘독도 주권 수호로 동북아의 평화를’이란 제목의 성명서를 냈다. △일본대사 추방 △군대 주둔 △개발 등 3개항은 빼고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강조했다.

당 지도부는 애초 경북 영양농협이 기증한 고춧가루를 독도 수비대에 전달하는 퍼포먼스도 계획했다. “망동하는 일본쪽에 매운 맛을 보여주자”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당쪽은 밝혔다.

그러나 기조가 바뀌면서 고춧가루는 위문품이나 생필품 성격으로 ‘격하’됐다. 기왕 들고 간 것이니 수비대원들이 반찬 만들 때 쓰도록 슬그머니 건넨 것이다. 현장에서 당 지도부는 고춧가루 퍼포먼스 대신 평화의 연 날리기 이벤트를 했다.

당내 공식적인 문제제기는 3월22일 최고위원회에서 나왔다. 천영세 의원단 원내대표는 3월16일 결정을 비판하면서 “당은 그동안 쏟아낸 독도나 대일본 관련 주장들에 대해 잘못된 부분들을 정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3월24일 최고위원회가 다시 열려 기조 수정을 공식화했다.

이런 흐름을 두고 당직자들은 “망신살이 뻗쳤다”고 한탄한다. 엄연한 공당으로서 초강경 기조를 천명하고 발빠르게 나가는 듯하다가 1주일 만에 정반대의 기조로 유턴한 예가 드물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의 문제는 정책대응 시스템이 튼실하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 3월16일의 초강경 기조는 애초 자주 계열 인사들이 “민족주의에는 좌우가 없다”면서 들이민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였다. 그 뒤 비판론은 평등 계열 인사들이 주로 폈다. 따라서 외견상 자주 계열의 실책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고위원회에 정치감각은 있는가

그러나 평등 계열도 애초의 당론 채택 과정에서 ‘찍소리’를 내지 않은 책임이 있다. 평등 계열인 주대환 정책위의장은 3월16일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의 물음에 “생각은 다르지만 회의에선 주장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떨군 바 있다.

이번 파동을 계기로 ‘의원단에 대한 당 지도부 우위’ 원칙도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당 지도부는 3월16일 당론을 ‘일본국의 독도 영유권 주장 규탄 결의안’으로 성안해 3월18일 소속 의원 10명의 이름으로 국회에 제출하도록 했다. 그러나 의원단은 일단 당론에 따라 행동한 다음, 곧바로 문제를 제기해 당론을 뒤집었다. 최고위원회가 현안에 관한 정보와 정치감각이 뒤져 의원단을 지도하지 못하는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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