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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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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권’ 을 향해 몸을 던져라

등록 2005-03-29 00:00 수정 2020-05-03 04:24

“개혁 지도부냐 실용 블록이냐” 열린우리당 전당대회 초읽기… 뜨거운 합종연횡 속 후보들의 셈법은 제각각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열린우리당에 ‘개혁지도부’가 구성될 수 있을 것인가? 유시민 의원이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정동영계와 적대, 김근태계와 연대’ 원칙을 밝힌 것을 계기로 이른바 ‘개혁 블록’ 안에서 연대 논의가 구체화되면서 이들의 당권 장악 가능성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시민 “장영달과 연대하겠다”

경선을 일주일 앞둔 시점까지도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가까운 구 당권파의 지원을 받는 문희상 의원이 여전히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여권 안팎에서는 개혁당 그룹의 유시민 의원과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문 의원을 맹렬히 추격 중인 데다, 재야파의 장영달, 개혁당의 김원웅 의원도 선전하고 있어 이들 사이에 합종연횡 결과에 따라 이른바 ‘개혁 지도부’ 출현도 가능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만3천여명의 대의원들이 1인 2표를 행사하는 4월2일 전당대회에서 △유시민 의원이 문 의원을 제치고 최다 득표자로 당 의장에 선출되고, 개혁 블록의 다른 의원 2명 이상이 상임중앙원단에 진입하거나 △당의장은 문희상 의원이 차지해도, 여성 몫으로 자동 당선되는 한명숙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선출직 상임중앙위원 세 자리를 개혁 블록 출마자들이 모두 석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선두를 달리는 유 의원은 이른바 ‘개혁지도부론’을 명분으로 물밑 흥정 수준에 머물던 개혁 블록 후보들의 합종연횡 문제를 공론화하고 있다.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정동영계는 기득권 집단으로 전락했다”며 김근태계와의 연대를 선언해 당 안팎에 거센 논란을 촉발한 유 의원은 3월23일 한 발짝 더 나갔다. “장영달 후보와 연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정동영 장관 중심의 ‘실용 블록’과 전면전을 선언한 유 의원이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중심의 재야파 대표선수인 장영달 후보와 연대를 공언한 것은 정 장관계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선두를 지키는 문희상 의원을 추월해 당의장을 차지하겠다는 의중을 구체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개혁 성향의 호남과 옛 민주당쪽 대의원들에게 상당한 득표력이 있는 장 의원과의 연대 방안은 유 의원이 주창해온 ‘개혁 지도부 건설’ 명분과 당의장 당선이라는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는 ‘묘책’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유 의원의 ‘개혁 지도부 건설 드라이브’가 결실을 맺기까지는 적잖은 난관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장영달·김원웅 의원,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등 개혁 블록 후보들의 셈법이 제각각이라 연대를 성사시키기 쉽지 않다. 이들은 그동안 정동영 장관계를 중심으로 한 실용 블록이 열린우리당 지지율 하락 등 위기의 근원이라고 비판해온 만큼 유 의원의 ‘개혁지도부 건설론’을 대놓고 비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맞장구칠 처지도 아니다. 개혁 블록 후보들이 4명이나 난립한 상황이지만, 1인2표제의 당의장 경선 룰 때문에 단 한명의 후보와의 연대만 가능한데, 누구와 짝짓는 게 유리한지 판단이 잘 서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유 의원에게서 ‘러브콜’을 받은 장영달 의원을 비롯한 재야파가 가장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재야파 의원 모임인 국민정치연구회는 3월24일 지도위·집행위 연석회의를 열어 유 의원의 제안에 대한 입장 정리를 시도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재야파의 한 의원은 “유 의원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발생할 득실에 대한 의견이 크게 엇갈렸다”면서 “연대 대상은 많은데 나눠줄 것은 한표밖에 없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었다”고 말했다.

김원웅의 ‘나홀로 득표 전술’

연대 찬성론자들은 △개혁 지도부 건설에 대한 대의원 지지 분위기 확산에 따른 장 의원의 동반 상승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개혁 성향 대의원들의 김근태 장관 지원 가능성 등을 이점으로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몇몇 재야파 의원들은 △친개혁당 성향인 유 의원의 지지자는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에게 나머지 한표를 던질 뿐 재야파의 장영달 의원을 밀지 않는다는 점 △당내 ‘반유시민’ 세력의 반발 등 역풍 가능성 △실용 블록의 문희상 의원이 장 의원과 상임중앙위 진출을 놓고 경쟁 중인 염동연 의원과 연대할 가능성 등을 한계로 지적하며 유 의원과의 연대에 반대했다.

논란을 거듭하던 재야파는 결국 “3월26, 27일 서울·경기 지역 시도당 대회 결과에서 나타난 대의원의 표심을 살펴본 뒤 다시 논의하자”며 최종 방침 확정을 미뤘다. 이와 관련해 다른 한 재야파 의원은 “그동안 영남에 기반한 김두관 전 장관과의 암묵적 연대를 통해 장 의원의 개혁 성향 호남표와 김 장관의 개혁 성향 영남표를 서로 주고받는 방식으로 지도부 진입을 시도했는데, 유 의원이 개혁 지도부 건설을 명분으로 장 의원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하면서 재야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외통수에 걸렸다”면서 “전당대회 당일까지 명확한 결론을 유보한 채 김두관 전 장관과 유시민 의원 모두와 연대하는 모호한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장영달 의원이 유 의원의 연대 제안에 대해 “심정적으로 나를 돕고 싶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냐”면서도 연대 여부에 대한 확답을 피하는 것도 이런 복잡한 셈법이 반영된 것이다.

김두관 전 장관 역시 한층 더 복잡한 고민을 떠안게 됐다. 김 전 장관은 예선전에서 유 의원과 후보 단일화까지 논의했고, 현재도 표면적으로 유시민 의원과 상임중앙위원회 동반 진입을 통한 ‘개혁 지도부 건설’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유 의원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문희상 의원을 맹추격 중인 김 전 장관은 유 의원과 본질적으로 경쟁 관계다. 김 장관은 그동안 사석에서 “나로 (개혁당 그룹) 후보가 단일화되면 당의장까지 가능하다”면서 은근히 유 의원의 양보를 기대했다. 정치권에서는 “김 전 장관쪽이 영남의 자파 대의원들에게 유시민 의원은 자력으로 상임중앙위원 진출이 가능하니 한표는 김 전 장관, 다른 한표는 장영달 후보에게 던지라고 말해왔다”는 얘기도 파다하다. 이른바 ‘김-장 물밑 연대’를 통한 당의장 진출 프로그램을 가동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 의원이 당의장 진출을 도모하며 장영달 의원을 연대 대상으로 공개 지목하면서 이런 전술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반면, 같은 개혁당 그룹에 속한 김원웅 의원은 논란을 촉발한 유시민 의원과 이를 분파주의로 비판하는 문희상·송영길 의원 등 실용 블록 후보들을 싸잡아 비판하면서 ‘나홀로 득표 전술’을 펼치고 있다. 김 의원은 “정동영 장관계는 의원과 대의원들을 줄 세우는 구태를 중단하고, (유시민 의원은) 이를 과도하게 비판하면서 편을 가르는 분파주의적 언행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특히 유 의원이 내건 ‘개혁 블록 연대를 통한 개혁 지도부 건설론’에 대해 “아무리 훌륭하게 포장해도 자신을 지지하는 대의원들에게 나머지 한표를 정해준 후보에게 던지라고 강요하는 것으로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이란 대의에 어긋난다”면서 “당원의 판단을 믿고 독자적 노선과 주장을 꾸준히 설파하는 평당원과의 연대가 옳다”고 말했다. 김 의원의 이런 행보는 ‘선명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오랫동안 다져온 바닥표와 개혁 블록과 실용 블록간 논쟁에 실망한 대의원표를 흡수해 지도부에 진입하려는 전술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문희상- 염동연, 올드보이 연대?

결국 유시민 의원의 ‘김근태계와 연대’ 제안으로 개혁 블록 내부의 합종연횡 가능성은 열렸지만, 각 후보들 사이에 정치적 이해득실 때문에 개혁파 의원들이 줄기차게 외쳐온 ‘개혁지도부 건설’ 구상이 현실화할 상생의 합종연횡 가능성은 여전이 난망하다.

개혁 블록과 대척점에 있는 문희상·염동연·송영길 의원 등 ‘실용파’ 후보들의 ‘반유시민 공세’와 합종연횡도 개혁 블록의 당권 장악에 주요 걸림돌이다. 문희상 의원을 중심으로 한 실용 블록 역시 치밀한 표 계산, 2007년 대선후보 경선 구도 등을 가늠하며 개혁 블록이 당권을 장악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다. 문희상 의원쪽에서 뛰는 한 의원은 “문희상 의원이 최다 득표로 당의장이 돼도, 다른 선출직 상임중앙위원을 개혁파가 석권하면 곤경에 처할 것”이라며 “염동연·송영길 두 의원 가운데 최소한 1명은 상임중앙위에 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용 블록 역시 이런 구상을 현실화하는 방법은 마뜩지 않다. 문 의원쪽은 그동안 송영길 의원의 선전을 은근히 기대했다. 전대협 세대를 주축으로 한 386 초·재선의 대표주자로 ‘정통개혁론’을 주창해온 송 의원이 선전하면 상대적으로 개혁 블록 지지 대의원 비율이 축소되고, 송 의원과의 연대를 통해 ‘안정 속에 개혁을 추진하는 통합의 리더십 구축’을 역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 의원이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이 구상은 차질을 빚고 있다.

이에 따라 문 의원쪽은 최근 상대적으로 선전 중인 염동연 의원과의 연대를 통해 개혁 블록의 당권 장악 시도에 맞대응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선두를 달리는 문 의원이 당의장을 거머쥐고 염 의원을 선출직 상임중앙위원에 뽑히도록 견인해 여성 몫으로 자동 당선되는 한명숙 의원과 함께 실용 블록의 우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문-염 연대’를 공언하기 쉽지 않다는 약점이 있다. 문-염 연대가 구체화될 경우 옛 정치인들 사이에 기득권을 지지키 위한 담합, 이른바 ‘올드 보이 연대’로 공격당할 가능성이 있다. 또 재야파와의 연대 방침을 밝힌 유시민 의원을 분파주의로 공격해온 실용 블록 스스로 분파주의와 세 대결을 조장한다는 자기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유시민 저격수’를 자처하며 문 의원과의 연대를 희망하는 송영길 의원 및 그 지지자들과의 관계 악화도 감수해야 한다. 개혁 블록의 당권 장악 시도에 맞서 누군가와 연대를 해야하지만 이래저래 마뜩찮은 상황인 것이다. 문 의원과 가까운 한 의원은 “문희상 의원이 염동연 의원과의 연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암묵적 연대가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유시민 발언은 결정적 패착인가

최근 불거진 ‘유시민 비토’ 논쟁이 대의원의 선택에 어떤 작용을 할 것인지도 개혁 지도부 구성론의 성패를 가늠할 주요 변수다. 실용 블록 후보들은 유시민 의원의 “정동영계 적대, 김근태 연대” 발언을 ‘당권 장악을 위한 분파주의’로 규정하며 당원 및 대의원들 사이에 ‘반유시민 정서’를 확산시키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정동영계로 분류된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기간당원제 등 당헌 개정안을 만들고 정당의 민주화를 주도했다는 유 의원의 인터뷰는 100% 거짓말”이라며 “대통령 비서실장을 했던 문희상 의원도 나쁘고, 참여정부의 핵심 장관인 정동영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대통령까지 모두 죽이고 유 의원 자신만 살아남겠다는 아집에 불과하다”고 맹렬히 성토했다.

정동영계 핵심으로 문희상 의원을 밀고 있는 김현미 의원은 “당원들 사이에 유 의원의 분파주의적 행태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면서 현역 의원들과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는 중도적 당원들 사이에 유 의원에 대한 심판론이 확산되고 있어 (실용 블록의) 득표 전략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개혁 지도부 구성을 위한 유 의원의 발언은 결정적 패착이라는 것이다.

논란의 중심에 선 유 의원은 정면 승부를 통한 개혁 지도부 건설론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나에 대해 쏟아지는 비난은 내가 받아야 할 업보다. 짊어지고 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각종 유세에서 “내 발언에 대해 대의원들이 표로 판단해주실 것”이라며 개혁표 결집을 호소했다.

열린우리당에 이른바 ‘개혁 지도부’가 출범할 것인가? 아니면 정동영계로 대표되는 실용 블록이 다시 당권을 장악할 것인가? 결전의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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