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밀 누출’ 관련 의원들 ‘경고’… 청문회를 통해 활발한 토론 개진해야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위원장 김원웅·열린우리당)가 1월6일 국가기밀 유출건으로 제소된 한나라당 박진·정문헌 의원과 이들을 스파이로 지칭해 맞제소된 열린우리당 안영근 의원에 대해 각각 윤리강령 위반에 따른 ‘경고’ 징계를 결정했다.
박진 의원, 혐의 반박
윤리특위 결정은 1991년 특위가 만들어진 이래 첫 번째 ‘자정 노력’의 산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국회의원들의 막말, 검은돈 수수 등의 행위가 적잖아도 윤리특위는 ‘해당 없음’ 결정을 내려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국회법에 따른 징계 종류는 제명, 30일 이내의 출석정지, 공개회의에서 사과, 공개회의에서 경고 등 4가지인데, 그 중에 가장 낮은 단계가 채택됐다.
그러나 박·정 의원은 1월11일 성명을 내어 “윤리위 징계 결정은 무효”라며 반발했다. 박 의원은 성명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할 때 북한의 기습공격에 대한 수도권 방어가 어렵다는 것은 우리 국민이 당연히 알아야 할 내용”이라며 자신에게 적용된 ‘군 기밀 누설’ 혐의를 반박했다. 박 의원은 또 “국회 윤리특위가 징계 결정에 앞서 당사자가 출석해 진술·소명할 기회를 제공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된 박 의원의 지난해 10월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질의는 국방부 산하 국방연구원의 <2003년 연구보고서 초록집>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박 의원은 당시 “국방연구원이 미군 2사단 재배치를 전제로 전쟁 여건을 모의 분석한 결과 국군 단독으로 북한군 침략에 맞설 경우 보름 만에 서울 방어선이 무너진다”고 주장했다.
‘보름 만에 서울 함락론’은 △북한군의 공격 가능성을 남한쪽이 전혀 탐지하지 못할 경우 △우리 군의 지휘체계가 제 기능을 못할 경우 등 최악의 극단적 상황들을 가정한 것이었다. 따라서 국방연구원의 모의 분석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당시 군사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됐으며, 군 당국자도 답변에서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경우”라며 무게를 낮췄다. 박 의원이 여러 가지 모의 분석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경우만을 뽑아 부풀림으로써 ‘안보 센세이셔널리즘’에 편승했다는 비판을 받을 만한 대목이었다.
그러나 국회 윤리특위가 이러한 질의 내용의 타당성 따위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흔적이 적은 것 같다. 이를테면 △남북한 군 전력 비교의 실상 △군 기밀의 존중 △국민의 알권리 △의정활동의 한계 등의 쟁점을 청문회를 통해 토론할 법한데 윤리위는 그렇지 못했다. 사법 처리가 아닌 ‘윤리’ 문제라면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본회의 의결 앞서 논쟁 재점화할 수도
이와 관련해선 미국 의회의 사례가 주목할 만하다. 미국에선 일단 조사위원회가 예비조사를 통해 규칙 위반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발견되면 심사소위가 ‘징계 청문회’를 개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윤리위는 징계 수준을 권고한다. 이후 본회의에서 최종 징계를 결정한다. 즉, 청문회 절차를 거침으로써 본인이 당연히 출석해 소명하며 윤리의 기준을 놓고 활발한 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미국 하원 윤리위는 지난 100년간 견책 22회, 경고 8회, 제명 4회 등의 징계를 내렸다. 상원 윤리위는 견책 22회, 경고 8회, 제명 4회 등의 징계를 했다.
이번 윤리특위 결정은 2월 임시국회 첫 본회의에 보고된 뒤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따라서 본희의 의결에 앞서 논쟁이 재점화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김원웅 특위위원장은 “박 의원 등에게 출석해 소명할 수 있다고 통지했지만 본인들이 서면진술서만 제출했다”며 “그러나 청문회 등 제도 개선 문제는 앞으로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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