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국가발전전략연구회’의 앞서가는 행보… ‘4대 개혁법안’에 대해 당론과 별개로 자체 대안 예정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국회 공전이 장기화하면서 한나라당 지도부는 옹색해진 반면, 비주류 강경파들은 갈수록 힘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애초 이해찬 총리에게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는 퇴보한다”는 발언에 대해 사과를 받고 그 기세로 여권의 ‘4대 개혁법안’을 막으면서 정국 주도권을 쥐려 했으나, 예상 밖으로 이 총리가 ‘뻗대’버리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역력히 보였다. 의정활동 중단, 이 총리 파면 요구, 장외 투쟁에 이르기까지 수위를 높이며 강경 기류를 이끌어온 쪽은 당내 비주류였다. 당 밖으로도 형편이 좋지 않다. 상생의 원내정치를 약속했던 박근혜 대표 체제에서 국회를 보이콧했다는 것도 부담이지만, 이 총리가 사과하지 않는 한 당 차원에서 ‘질러’버린 강경 대응 방침을 수습할 길이 없게 됐다. 박근혜 대표로서는 당 안에서는 비주류쪽에 의사결정권을 넘겨주고, 당 밖으로는 국회 공전의 책임을 고스란히 지게 된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우왕좌왕하는 지도부 본격 압박
당 지도부를 압박해온 비주류 강경파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안택수·이방호·이상배 의원 등 영남권 보수파들과 이재오·김문수·홍준표 의원 등 수도권 3선 3인방이 각 그룹의 리더 격이다. 이들 가운데 수도권 3인방의 ‘활약’이 부쩍 눈에 띈다. 이들은 10월28일 당 의원총회에서 “골목대장도 이런 식으로는 안 한다”(김문수), “앞으로 의사 일정도 다 거부해야 한다”(홍준표), “애초 (수도 이전 문제와 관련해) 노무현 물러나라고 못한 당 정책이 잘못됐다”(이재오)면서 파죽지세로 지도부를 몰아붙였다. 이들은 김덕룡 원내대표에게 ‘초기 대응 미숙’과 ‘대여 온건론 실패’ 책임을 따져묻고, ‘제2창당에 버금가는 당 쇄신’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 8월 말 당 의원 연찬회에서 박근혜 대표로부터 “내가 (대표가) 되면 당을 떠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사실상의 ‘탈당 요구’를 받고서 두달여 동안 침묵을 지켜온 뒤끝이다.
세 사람의 태도에는 자신들이 주축이 돼 꾸린 ‘국가발전전략연구회’(발전연)가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는 데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영남권 보수파들이 만든 ‘자유포럼’이 느슨하게 움직이는 반면, 수도권과 비례대표 의원 34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발전연은 지난 5월27일 창립한 이래 ‘이데올로기 진지’와 ‘이슈 기동대’를 자임하며 활발하게 움직여왔다. 매주 금요일 개최하는 정치·경제·국제 분야 세미나가 진지 활동이라면, 금강산특구 단체 방문, 중국 고구려사 왜곡 대응 유적 방문, 5·18 묘역 방문을 비롯해 개별 서명자들의 수도 이전 반대운동 등은 기동대 활동인 셈이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수도 이전 위헌 판결을 내린 뒤부터는 당론 결정에 미온적이었던 지도부를 겨냥해 “누가 옳고 빠르고 이기는지 검증받겠다”면서 대놓고 ‘노선 투쟁’을 천명하고 나섰다. 여권의 ‘4대 개혁법안’에 대해서도 이들은 당론 결정 속도와는 별개로 11월4, 5일 정책 MT를 갖고 자체 대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규모도 적지 않다. 당내 모임 가운데 의원 숫자로도 가장 크지만, 최고위원인 김영선 의원을 비롯해 공성진·황진하·이군현·이계경 의원 등 당 정책위 1·2·5·6 정조위원장까지 결합해 있어 “발전연 빼면 대표와 당 3역밖에 안 남는다”는 얘기를 공공연히 할 정도로 당 조직에 고루 포진해 있다. 규약 또한 정당의 당헌·당규에 버금간다. “대한민국을 일류 선진국가로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을 세운다”는 목적 아래 각 분과위원회와 지역조직을 둘 수 있도록 하고, 유료회원제를 뼈대로 한 회원 규정과 이사회·자문위원단 구성 방안까지 완비해놓았다. 박종운 사무처장은 “공부모임에서 출발했으니 공부모임으로 계속 이어갈 것”이라면서도, “정치적 이슈나 사안에 대해서는 꼭 발전연 이름을 걸지 않더라도 개별 의원들이 서명 형식으로 연대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박근혜 흔들기’와 ‘대권 겨냥’이라는 두 가지 따가운 시선이 존재한다. 모임을 주도한 비주류 3선 3인방이 이명박 시장과 각별한 관계로 알려진 데 따른 것이다. 발전연의 주요 관계자는 “당 밖 자문위원단 규모가 100여명에 이르는데 성급한 오해를 살까봐 당분간 공개를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리더 격인 이재오 의원은 이에 대해 “누구 밑에서 누굴 밀어주려고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다”며 ‘이명박 너머’의 정치적 야심도 감추지 않았다. 이 의원은 “내용과 세력을 키워 때가 되면 (독자 행보의) 의지를 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적지않은 규모…‘이명박’ 너머를 본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발전연 주요 멤버들이 운동권 출신이라 기동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사건건 지도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 역시 구태의 방식”이라며 “자기 욕심에 자기가 빠지는 것은 역대 한나라당 역사가 말해주지 않나”라고 애써 이들의 활동 의미를 축소했다. 반면 발전연 소속 한 초선 의원은 “여기저기서 경계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그 자체가 발전연의 ‘발전 가능성’을 의미한다”면서 “누구든 뜻이 맞다면 필요할 경우 ‘정치 블록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당 속의 당’으로서 계속 세를 키워나가겠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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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여 강경대응을 주문해온 쪽이었는데, 이번 상황에 대해서는.
= 이해찬 총리가 작심하고 막가기로 한 건데, 속전속결로 해치우지 못하는 바람에 말려들어버렸다. 사과를 받아내든 자리를 박차고 나오든 당일에 끝냈어야 한다. 이런 문제는 시간을 끌면 끌수록 야당만 불리하다. 봐라, 당장 퇴로가 없게 돼버리지 않았나.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박 대표는 모르지만 다른 당직자들은 다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정치는 일방적으로 되는 게 아니니, 이 총리도 사과하고 유감을 표명하는 선에서 끝냈으면 한다.
- 당 지도부와 발전연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나.
= 한나라당은 수구 기득권, 인권탄압 당이라는 원죄가 있다. 발전연은 그걸 털고 가자는 쪽이고 박근혜 대표는 이어받자는 쪽이다. 당의 진로에 대한 ‘노선’이 다른 것이다. 박근혜 흔들기라는 얘기가 많은데 그건 당내 비판을 통제하려는 모함이자 마타도어다. 우리는 정당한 ‘노선투쟁’을 하는 거지 특정 개인에 대한 호불호로 움직이지 않는다. 누가 더 옳은지 세력과 내용으로 검증받으면 된다. 수도 이전 반대 투쟁만 해도 지도부가 당론이 아니라며 우리 활동을 계속 방해했는데, 헌재 판결로 결국 우리 노선이 이기지 않았나. 자신 있다.
- 현안인 4대 법안에 대해서는.
= (당 지도부는) 무조건 악법이라면서 막아서는데, 그런 자세로 누굴 설득할 수 있겠나. 당의 대안이 뭔지도 준비가 안 돼 있다. 우리 안을 딱 마련해놓고서, 저쪽 안도 하나하나 따져봐야 조문을 고칠지 법안 자체를 막을지 전략전술이 나오는 거 아닌가. 내용 없이 싸우니까 먹지 말아야 할 욕까지 먹는 거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으니, 발전연 차원에서 대안을 마련하고 검증받겠다.
- 앞으로의 계획은.
= 계속 공부하면서 이슈에 대해 적극 결합하는 방식으로 힘을 키울 것이다. 이데올로기 없이 어떻게 야당 하겠나. 이명박 시장이랑 짜고 저런다며 우리를 음해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참으로 어이없다. 당권이든 대권이든 필요하면 내가 나서지, 누구 시키려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발전연은 뜻 맞는 이들이 당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구체적 정치 일정에 어떻게 결합할지는 당연히 때가 되면 검토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대 흐름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으니,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표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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