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이전 반대운동의 선봉장으로 나서 여당과 맞대결… 차기 대선주자의 이미지 강렬하게 심는가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이명박 서울시장이 행정수도 바람을 타고 여의도 정치의 중심으로 등장했다. 이는 열린우리당의 관제데모 의혹 제기와 시청 항의방문으로 불거진 측면이 있지만, 이 시장이 수도이전 반대 운동에 서울시 예산을 지원하겠다며 정면 대응하면서 증폭됐다. 한나라당이 명확한 당론을 정하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사이 이 시장이 수도이전 반대 운동의 선봉장으로 나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박근혜 대표를 겨냥했던 여권의 표적은 최근 이 시장으로 옮겨갔다. 열린우리당은 이번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행정자치위원회(이하 행자위), 건설교통위원회(이하 건교위) 등 각종 상임위에서 이 시장을 증인으로 불러 몰아붙일 태세고, 이 시장 역시 피하지 않고 이에 적극적으로 맞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에 행정수도 문제가 이번 국감의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여당과 이 시장의 맞대결이 최대 관전 포인트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충청권 표 잃어도 이기는 싸움”
10월6일 서울시청에서 열리는 행자위 국감이 첫 무대다. 열린우리당은 서울시의 관제데모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겠다고 벼르고 있다. 장영달 관제데모진상규명위원장은 “25개 구청에서 수집된 불법 자료들을 계속 분석 중이며, 위법 행위에 대한 자료를 행자 위원들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10월18일에는 건교위가 같은 자리에서 이 시장을 상대로 감사를 벌일 예정이다. 이명박 시장은 10월1일 박근혜 대표와 수도권 시·도지사와의 긴급 간담회 자리에서 “국감 때 여기저기 출연해달라는 요청이 많아 바쁘다”며 “부지런히 출연해 입장을 분명히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 시장쪽은 ‘수도이전 반대 선봉장’은 서울시장 직무의 연장선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시장은 9월30일 시 간부회의에서 “수도를 이전하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서울 시민이다. 시민에게 손해를 끼치는 법률에 대해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폐지운동을 할 수 있고 예산도 지원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여론을 대변하지 않으면 민선시장으로서 문제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장으로서 할 일을 하는 것뿐인데 열린우리당이 정치 공세의 표적물로 삼기 위해 열심히 행정을 하고 있는 사람을 오라가라 한다는 얘기다. 자신은 행정수도 국면에서 수세적 위치에 있으며 정쟁의 피해자로 보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시장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의 정치적 미래와 연결지어 해석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본인은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 없지만 한나라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이 시장이 이번 기회에 한나라당의 차기 주자로서의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놓으려는 포석도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총선 이전까지 서울시의 정무부지사를 지내 한나라당 안에서 이 시장과 가까운 사이로 꼽히는 정두언 의원은 10월1일 기자와 만나 “2006년 서울시장 임기를 마치기 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고 너무 빨리 부각될 경우 표적이 되는 만큼 부담스러운 점도 있지만 저쪽에서 걸어온 싸움을 굳이 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이 시장도 파이팅이 좋은 만큼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미리 표 계산을 해보는 측면도 있어 결코 불리한 싸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또 “그동안 서울은 지역대립 구도에서 동떨어져 있었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며 “충청권에서 20%를 잃는다고 해도 서울에서 10%를 얻으면 이기는 싸움인데 해볼 만한 것 아니냐”고도 말했다. 행정수도 문제와 관련한 이 시장의 최근 행보를 언론이 너무 대권과 연결지어 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정작 정 의원 자신도 이 시장의 정치적 미래의 이해득실을 따져보고 있었다. 은 이 문제와 관련해 이 시장의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당분간 국정감사 준비로 바쁘다는 이유로 이뤄지지 않았다.
박근혜 불가론과 이명박 대망론
이명박 시장의 최근 움직임이 시장의 직무 범위 이내의 활동이라는 주장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지난해 말 그의 언행에 비춰 보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이 시장은 행정수도 법안에 관한 논란이 증폭됐던 지난해 말 몇몇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좀 시끄럽다 말겠지. 실제로 (행정수도가 이전) 될 것으로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굳이 나서서 반대한다는 것도 우습지 않냐”고 말했다. 실제 최병렬 대표 시절 한나라당이 이 법안에 반대했다가 당내 충청권 의원들의 반발과 2004년 총선을 의식해 찬성 당론으로 바꾼 뒤에도, 한나라당의 차기 대선주자로 꼽힐 만큼 ‘중요 당원’인 이 시장이 행정수도 이전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행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국회에서 관련 법이 통과될 즈음에는 “그게 되겠나” 하다가 실제 행정수도 터를 선정하는 등 법에 따른 구체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자 서울시장의 직분을 들어 적극 반대하고 나선 것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이 시장쪽은 “총선을 의식해 법을 통과시킨 것을 한나라당이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 시장 자신이 ‘뒷북을 치고 있는’ 것에는 일언반구도 없다.
어쨌든 이 시장은 자신을 지지하는 당내 세력이 취약함에도 최근 행정수도 반대 바람을 타고 당내 입지를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추석 직후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박근혜·이명박·손학규 3인 모두 한나라당에 필요한 재산”이라며 “3인 모두 힘을 모아야 안전하고 힘이 생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시각차도 없다. 내가 그들을 막아주는 울타리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외견상 한나라당이 ‘박근혜 독점 체제’에서 ‘박·이·손 과점 체제’로 옮아가는 듯하다. 특히 지난 8월 말 한나라당 의원연찬회를 계기로 불거졌던 ‘박근혜 불가론’의 이면에는 ‘이명박 대망론’이 똬리를 틀고 있다.
현재 한나라당 내에서 ‘이명박 사람’이라고 꼽히는 이는 다섯 손가락 이내다. 그의 친형인 이상득 전 사무총장과 2002년 서울시장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이재오 의원, 정무부지사를 지낸 정두언 의원 정도이다. 하지만 수도권, 특히 서울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의원 상당수가 이 시장의 잠재적 ‘우군’으로 분류된다. 박근혜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지도부가 “충청권의 기대치가 높아져 있는 만큼 청와대와 외교·국방 등 핵심 부서를 서울에 남기고 교육·과학기술부 등을 옮겨 행정특별시 건설 정도로 축소하자”는 ‘대안반대론’인 반면, 이명박 시장은 “국가경영의 이중화를 초래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원천반대론’을 펴고 있고 수도권과 영남권 의원 상당수가 이에 동조하고 있다.
지나친 부각에 부담스러운 분위기도
이 시장쪽에서는 행정수도 국면으로 이 시장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에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내년 하반기 청계천 복원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권 프로그램을 가동하려던 애초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 시장의 한 측근은 “현재 진행 중인 큰 프로젝트, 청계천 복원과 뉴타운 개발, 버스 체계 개편 등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저 사람 말은 믿을 만하다’는 신뢰가 쌓이고 그런 믿음이 있어야 공약이 먹히지 않겠나. 이 시장은 지금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게 가장 큰 자산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시중에는 벌써 캠프가 움직인다, 누구를 챙기고 있다는 말들이 무성하지만 정말 묵묵히 일만 한다. 그동안의 전례를 보면 너무 일찍 두각을 나타내면 집중적으로 두드려 맞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현재 국면이 꼭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