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미국-이란 전쟁설이 확산되자 두 국가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독립 노리는 아르빌 정부 </font>
▣ 아르빌= 김영미/ 분쟁전문 프리랜서 PD
아르빌은 미국-이란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가장 생생하게 감지할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다.
나자프 공격하자 이란 들썩
아르빌에는 이란의 비밀경찰들이 공공연히 활동하고 있다. ‘모이스’(MOIS·Minister Of Intelligence Service)로 불리는 이란정보국은 아르빌 시내 중심부에 사무실까지 두고 있다. 그들은 버젓이 아르빌 지역에서 첩보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왜 아르빌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힐 수 있는 이란 정보요원들의 활동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걸까.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아르빌 정부는 미국-이란의 관계를 교묘히 이용해 잇속을 챙기려 하고 있었다. 아르빌 정부가 이라크 전쟁을 치르면서 쿠르드족은 분리독립을 목표로 미군과 함께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는 데 동참했다. 그러나 그 뒤 그들이 원했던 독립은 더욱 요원해졌다. 미국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빌 정부는 전쟁 뒤 마수드 바르자니와 집권당 쿠르드민주당(KDP) 중심의 독재정치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혼란기를 틈타 권력을 더욱 바짝 죄면서 주민들의 동참을 강요하는 분위기다. 아르빌 정부는 이제 다시 독립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이란 카드에 눈을 돌리고 있다.
아르빌 지역의 쿠르드사회당 대표 이스마일씨는 “이란에서 피난 생활을 한 쿠르드인들은 이란 말도 능숙하고 이란 사람들에 대해 잘 안다. 그들은 우리에게 때로는 적이 되기도 하고 동지가 되기도 하는 세월을 되풀이하고 있다. 미국이든 이란이든 우리는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양쪽을 쥐고 있어야 한다. 또 누군가 쿠르드 정세를 말하고 싶다면 이란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이란이 우리 쿠르드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항상 주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란은 바로 쿠르드에게 또 다른 생존카드인 셈이다.
9월 이라크에서의 최대 관심은 이라크 시아파에 집중됐다. 시아파는 이란 사람들의 90% 이상이 속한 종파다.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에 집결한 미군에 대해 시아파 메흐디군이 벌인 결사 항전은 모든 이라크 사람들을 숨죽이게 했다. 다행히 이 전쟁은 오래가지 않고 시아파 지도자인 알 시스타니의 중재로 평화협정이 체결됨으로써 싱겁게 진정됐다. 그러나 이 사건은 많은 후유증을 남겼다. 이라크 임시정부의 무능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알라위 총리를 비롯해 여러 정부의 장관급들이 이 사건의 불을 꺼보려고 시도했지만 나자프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알라위 총리의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는 뻔한 성명은 사람들을 오히려 더 공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신병 치료차 런던에 다녀온 시스타니의 말 한마디로 평화협정이 맺어지자 미군까지 머쓱해진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신뢰받지 못하는 이라크 임시정부는 이라크 사람들에게 있으나 마나 한 존재임이 재확인된 셈이다.
“미국에 선제공격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아파의 위상은 다시 부각됐다. 나자프를 미군이 공격하면서 정작 분개한 당사자는 이라크가 아니고 이란이었다. 수천명의 이란인들은 미군이 이라크의 시아파 성지 나자프에서 잔학 행위를 했다며 연일 수도 테헤란에서 ‘미국에 죽음을’ ‘검은 심장의 백악관’ ‘이슬람 국가는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것’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란 시아파 강경분파의 지도자인 자나티는 미국이 시아파를 공격한 뒤에는 수니파를 공격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피에 굶주린 미국 늑대들의 나자프 공격에 저항하는 것은 모든 이슬람 교도들을 위한 위대한 일”이라고 선동했다.
이란은 국민의 90% 이상이 시아파이다. 그들의 일생 최대의 지상목표는 자신의 주검을 이슬람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에 묻는 것이다. 그래서 나자프는 거대한 공동묘지를 연상시킬 만큼 많은 시아파 성도들이 묻힌 곳이다. 아무리 먼 곳에서 죽었더라도 주검을 자동차에 싣고 나자프까지 와서 장례를 치러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 성지를 미군이 공격하고 있다는 것은 이란의 시아파 사람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미군이 굳이 나자프를 공격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라크에서는 지금 미국이 다음 공격 표적으로 이란을 삼고 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흘러나오고 있다. 언론에도 이라크와 이란이 자꾸 연결되는 뉴스가 급증하고 있다. 얼마 전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와의 회견에서 “그들(이란)이 돈과 사람을 이라크에 넣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들이 이란 정부의 어떤 한 부분이라거나 심지어 정부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여부가 아니라 돈이 이란에서 오고, 사람이 이란에서 오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란이 ‘문명 사회의 한 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를 저지하기가 매우 어렵다”라고 밝혔다. 미군의 나자프 시아파 공격은 이란과의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자세로 비친다.
이라크 경찰은 전투가 일어나는 동안 나자프 시내 다르 알 살람 공동묘지와 성소 이맘 알리 사원 주변의 옛 시가지에서 이란 전투원 여러 명을 체포했다고 바그다드 지역신문이 최근 보도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이번 나자프 전투 때 돈과 무기가 이란에서 이라크의 메흐디 군으로 전달되고 있다는 기사가 자주 등장한다. 또 이란은 남부 부세르에 건설하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가 평화적 목적의 순수 발전용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국제사회로부터 꾸준히 핵무기 개발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기 전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를 둘러싼 논란과 비슷하다. 만약에 미국이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두고 공세를 펼친다면 이라크와 비슷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더구나 이란은 미국이 군침을 삼킬 만한 세계 제2의 가스 생산 국가이다. 이 정도면 이라크와 어느 정도 비슷한 환경이다.
이란도 미국의 공세에 매우 민감한 대응을 하고 있다. 알리 샴카니 이란 국방장관은 이란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공격을 막기 위해 중동 주둔 미군에 선제 공격을 가할 수도 있다고 8월18일 경고한 바 있다. 샴카니 장관은 방송과의 회견에서 “남들이 우리에게 하는 짓을 가만히 앉아 지켜보진 않을 것”이라며 “일부 이란군 지휘관들은 미국이 거론하는 선제 공격이 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을 공격할 경우 대응 방안을 묻는 질문에 “역내에는 미국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호스트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칸다하르에 이르기까지 존재한다. 우리는 걸프 지역에도 존재하며 이라크에도 존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군의 이라크 주둔으로 이라크가 약화되고 미군의 힘만 강화된 것은 아니라며 “미군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 그 병력이 우리의 수중에 인질로 잡힐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이란은 이라크와 달리 미군의 공격을 받기 전에 먼저 공격을 할 수도 있다는 대응책을 밝힌 셈이다.
미국, 쿠르드의 지원 필요할 수도
이처럼 미국-이라크의 전운이 고조되면서 아르빌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아르빌은 이라크와 이란의 국경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다시 한번 쿠르드의 지원이 필요하게 될지 모른다. 쿠르드인들에게는 다시 한번 분리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기회가 도래하는 셈이다. 오랜 세월 주변 국가들의 텃세에 눌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살아온 쿠르드족에게는 독립이 민족의 최대 숙원이다. 물론 국제 정세란 예외적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많다. 하지만 쿠르드 지역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위치나 정세는 결코 단순하지 않아 보인다.
이라크전이 일어나는 것을 국제사회는 막지 못했다. 이라크전을 겪으며 필자는 이라크 사람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몸소 체험했다. 그저 순진하기만 했던 사람들이 저항세력으로 돌변하여 외국인들을 납치 살해하는 모습, 미국에 대한 분노와 고된 삶의 연속으로 피폐해지는 그들을 보면서 두번 다시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미국과 아르빌 자치정부의 위험한 거래가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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