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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 뉴욕에서 출발한 ‘대항’ 공간

등록 2004-09-10 00:00 수정 2020-05-03 04:23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요즘 세계 미술계에서 각광받는 'yBA'(young British Artist)의 출발은 런던 변두리의 대안공간에서였다. 이들은 미술시장의 압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작가 지원 시스템, 유기적 전시공간 시스템 등을 통해 다양한 실험을 벌였다. 사탕 공장을 개조해 대규모 스튜디오 집단을 만든 '케이블 스트리트 갤러리', 크리켓 구장 근처 창고 건물을 이용한 '가스 공장' 등에서 독립적인 활동을 하던 작가들이 널리 인정을 받으면서 주류 미술계 중심에 편입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을 뿐이다.
이런 대안 공간의 태동은 1960년대 후반 뉴욕에서 이뤄졌다. 당시 현대 미술의 급격한 변화를 따르지 못했던 미술관과 갤러리에 대한 반동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최초의 대안 공간으로 꼽히는 ‘화이트 칼럼스’는 다양한 실험 예술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곳곳에 들어선 대안 공간들은 여성 작가와 비주류 작가에게 전시 공간을 제공하며 점차 독립적 조직으로 자리잡았다. 더불어 작가들에게 창작 지원금을 지원하며 역량있는 작가를 양성하기도 했다.
1970년대 초반 미국과 캐나다의 대도시에서 대안 공간은 유행처럼 번져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안 공간의 활동도 다양하게 이뤄졌다. 상업적인 시각에서 돈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비디오와 퍼포먼스, 이색 설치, 개념 미술 등이 거대한 흐름을 형성한 것은 대안 공간에 힘입은 바 크다. 젊은 작가들이 대안 공간을 통해 성장을 거듭하면서 미술계의 주류에 편입되기도 한다. 현재 미국의 대안 공간은 미술가조합이라는 형태로 운영되며 워싱턴에 본부를 둔 ‘국립미술가조합연맹’을 결성하기도 했다.
현대 미술계를 주도하는 사설 화랑의 대항 세력으로 등장했던 대안 공간은 폭넓은 계층의 후원자를 두면서 비영리 전시장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들은 개인전보다는 그룹전이나 주제 중심의 기획전으로 많은 미술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비영리 전시장의 경우도 운영 방식에 따라 회원 중심의 협력 화랑과 디렉터 중심의 전시공간으로 나뉘기도 한다. 대부분의 대안 공간은 정부 지원금과 민간 재단, 기업체, 개인 등의 기부금을 재원으로 삼아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어쨌든 대안 공간이 활성화된 나라에서는 정부 재원이 아니더라도 민간 재단의 뒷받침으로 예술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국내의 대안 공간은 기업체가 직접 나선 경우가 아니라면 민간의 지원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안 공간이 문화 권력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하지만 대안 공간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도 대안적 활동은 미약해지고 재정적 독립마저 요원해지고 있다. 이제는 국내의 대안 공간이 미술계의 중심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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