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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단협에도 순수한 동기 있었다”

등록 2004-07-09 00:00 수정 2020-05-03 04:23

국회의장 비서실장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김덕배 전 의원… 물밑 완충 역할 할 것으로 기대돼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후단협에도 순수한 동기로 활동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아줬으면….”

최근 김원기 국회의장의 비서실장으로 기용된 김덕배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에 이렇게 말했다. 그의 표정은 조심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실장은 후단협 활동 때문에 지난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에 의해 낙천낙선 대상으로 지목되면서 정계를 떠났다가 몇달 만에 국회로 복귀한 터였다.

당 복귀 뒤 신당운동 세규합 역할

사실 그의 최근 정치 이력은 2002~2004년간 여권에서 일어난 격동의 압축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후단협(후보단일화협의회)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다. 후단협은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 압력을 넣겠다며 민주당을 탈당했던 16명의 의원 그룹을 일컫는다. 이들은 탈당에 앞서서도 당내에서 노무현 후보 흔들기를 주도함으로써 ‘경선 불복’ ‘반노 운동의 본산’으로 지목된 바 있다.

그러나 김 실장은 대선 직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가 성사되자 곧바로 “이제 우리 뜻이 달성됐다”며 민주당으로의 복당을 앞장서 추진한다. 그 결과 그와 장성원·유용태·설송웅·최선영·이윤수·김영배·송석찬·박종우·유재규·김명섭·송영진 의원 등 12명이 11월26일 복당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함께 탈당한 김원길·박상규 의원은 한나라당으로 갔다.

노 후보의 대선 승리 이후에 민주당에선 신당운동을 둘러싸고 신·구주류간 일대 갈등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김 실장은 김원기 의원의 권유를 받고 신당운동에 가담해, 세규합 역할을 맡는다. 한국청년회의소(JC) 회장 출신이며 민주당 중도개혁포럼과 후단협에서 각각 조직간사를 맡으며 닦아온 ‘사람 끌어들이기’ 수완을 이번에는 신당운동에서 발휘한 것이다. 다만, 그는 “신·구주류를 편가르지 않고 모두 끌어안는 통합신당을 하자”고 내부에서 주장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17대 총선을 앞두고 그를 포함해 열린우리당 소속 김명섭·송영진·송석찬 등 6명의 현역 의원을 ‘정치질서 파괴자’로 지목해 발표한다. 이에 그는 “어차피 내가 선택한 행동인 만큼 책임을 지겠다. 여기서 그만두는 게 그나마 명예를 지키는 길이다”라고 판단한다. 그는 총선 불출마(경기 고양일산을)를 선언했다. 김명섭 의원은 당내 공천 관문은 통과했지만 본선인 총선에서 낙선했다.

김 전 의원은 국회의장 비서실장에 기용됨으로써 부분적으로나마 ‘정치적 복권’을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른 후단협 회원들은 대부분 민주당 분당 과정에서 민주당에 남았다가 총선에서 낙선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심판당한 꼴이 됐다.

어쨌든 그는 “대선 당시 후보단일화 성사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으로 간 사람들이 있었던 만큼 후단협 전체의 정당성을 주장하긴 어렵다”면서도 “그 밖의 다수는 순수한 단일화 의도에서 행동했던 것임을 나중에라도 평가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분당 이전 신당운동 과정에서도 “(구주류를 향해) 대통령을 만들어놓고 대통령을 비판하는 당이 되면 안 된다” “(신주류를 향해) 지나친 발언으로 상대방을 자극하면 안 된다”고 양쪽을 말리는 입장을 취했다.

신 · 구주류 양쪽 말리는 입장 취해

정치권에는 열린우리당·민주당의 분당에서 비롯된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태다.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내 ‘반노 투쟁’과 후단협 활동은 두 세력간 갈등의 뿌리로 꼽힌다.

이런 가운데 김 전 의원이 국회의장 비서실장 자격으로나마 정치권에 복귀한 점에 작은 의미를 둬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가 벼랑 끝까지 내몰렸던 자신의 경험을 살려, 국회 무대에서 물밑 완충 역할을 일부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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