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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 국가가 찾아다오

등록 2004-06-18 00:00 수정 2020-05-03 04:23

부모가 생활 포기하고 전국을 헤매야 하는 현실… 미아찾기 '김희선 특별법', 입법 성사될까 관심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미국이나 유럽에선 백화점에서 쇼핑하던 주부가 데리고 나온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신고하면 백화점은 즉각 사방의 출입문을 봉쇄하고 아이를 찾도록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다른 쇼핑객들이 “왜 못 나가게 하냐”며 아우성을 치겠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말없이 참아준다고 한다. ‘초동 대처’로 안 되면 전국적인 실종 어린이 전산망을 통해 아이를 찾게 된다. 사회적 안전과 어려운 사람에 대한 배려의 문화, 그리고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이야기다.

미아 신상자료 의무 보고로

최용진(42)씨는 2000년 4월 6살배기 딸 준원이를 잃어버렸다. 최씨는 배낭을 짊어지고 4년째 전국의 미아 보호시설을 돌고 있다. 그동안 500여 군데를 가봤다. 그러나 시설 전체를 가보기에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당국에 인가된 시설은 전국적으로 274군데지만, 교회·사찰·사회복지기관 등이 아이 10명 안팎씩을 데리고 운영하는 작은 미인가 시설들이 또 수천 군데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시설쪽에서 데리고 있는 아이나 아이의 신상카드를 순순히 보여주지도 않는다고 한다. 시설쪽은 “아이를 보여줄 법적 의무가 없다”고 말한다. 최씨를 비롯한 실종아동 부모들은 “보호아동 1인당 70만원씩의 정부 지원금을 받기 때문에 일부 시설주들은 부모가 아이를 찾아가는 일을 반갑게 여기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박인숙(44·여)씨는 2001년 1월에 정신지체 1급 장애인인 도연(당시 17살)이를 잃었다. 그 뒤 박씨가 걸은 길도 똑같다. 박씨는 “도연이를 찾아다니느라 밑에 동생 세명을 내팽개치다시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잃어버린 아이 문제를 부모 책임으로만 돌리는 사회 구조가 안타깝다”며 “세금을 이만큼 냈으면 잃은 아이는 찾아주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문제 때문에 미아찾기 특별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김희선 의원(열린우리당)은 6월11일 공청회를 통해 법 제정 취지와 개정 방향을 제안했다. 그의 제안은 △전담기구로 실종아동 찾기센터를 경찰청에 설치 △실종아동 현황자료를 중앙센터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하며 중앙센터에서 전산화 △실종아동과 장애실종자를 찾기 위해 유전자 검사 방법 허용 등으로 요약된다.

현재 일부 실종아동 보호시설들은 보건복지부 위탁 민간단체인 어린이찾아주기종합센터에 아동 신상자료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 보고 의무가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보고하지 않는 곳도 많다고 한다. 어린이찾아주기종합센터는 요즘 8만여명의 아동카드를 놓고 전산화 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예산과 손이 달려 진척이 더딘 편이다.

기관 밥그릇 다툼도 입법에 난관

그러나 ‘김희선 법’대로라면 전국의 실종아동 보호시설들은 아이를 받는 대로 사진과 신상자료를 작성해 중앙의 센터로 보내게 된다. 부모는 중앙센터에 집약된 자료를 통해 한눈으로 자기 아이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김 의원은 “부모가 칠칠맞아 아이를 잃어버린 게 죄라는 식의 사회 구조는 더 이상 곤란하다”고 말했다.

아이 잃은 부모의 절절한 형편을 생각할 때 특별법 제정은 때늦은 감도 있다. 그러나 ‘때늦어진’ 데도 이유가 있다. 16대 국회에서도 민주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제각기 유사 법안을 발의했다가 16대 임기 만료와 함께 법안이 자동 폐기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실종아동 부모들은 “일부 국회의원들이 홍보 효과를 노려 법안을 발의만 해놓고 후속 과정을 챙기지 않아 유야무야된 게 한두 차례가 아니었다”며 “보건복지부와 행정자치부, 경찰청 등 기관간 밥그릇 다툼도 입법에 난관으로 작용해왔다”고 말한다. 17대 국회에선 달라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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