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매월 꼬박꼬박 지급하는 이자로 누군가 휴가를 간다고 상상해보자. 그는 지중해 크루즈를 타고, 경비행기를 소유하고,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예술을 감상하며, 해변에 있는 별장을 산다. 나처럼 이자를 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그는 자녀를 방학마다 세계 곳곳에 연수 보내며, 어릴 때부터 상류사회 문화를 익히게 하려고 승마와 골프를 가르친다. 마카오, 아프리카 등지로 휴가를 가고 자신의 집 마당에서 수백 명의 모델을 동원한 패션쇼를 개최하기도 한다.
나는 그저 4억원짜리 집을 2억원의 빚을 끼고 샀을 뿐이다. 그 집값이 2억원이나 올랐다. 그러나 아직 그 2억원은 만져보지 못했다. 대신 100여만원의 이자를 꼬박꼬박 지출하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17년을 더 갚아야 한다.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벌었다고 착각하는 사이, 내가 매월 허덕이며 내는 이자로 누군가는 오늘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것이다.
만져보지도 못한 돈, 벌었다고 착각황당한 비유라고 할지 모르나, 노동이 아닌 자산 가치의 상승으로 고수익을 챙길 수 있다는 자산 투자 시장은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머니게임 시장임이 분명하다.
어느 한쪽이 투자로 돈을 벌면 누군가는 비용을 지급하든가 투자 손실로 돈을 까먹어야 하는 것이다. 주택 가격이 크게 올라 돈을 벌었다는 것은 그만큼 누군가 비싼 가격에 집을 샀다는 이야기다. 10여 년 꼬박 모아 만든 적금 통장을 깨서 샀거나 적금 통장을 다 깨고도 모자라 빚까지 내서 집을 사야 했을 것이다. 가격이 오른 집을 팔아 돈을 버는 사람은 결국 사는 사람의 적금 통장 모두와 20년 이상의 장기 부채 이자를 챙기는 것이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주택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 이래 우리나라의 가계 부채는 계속 상승 중이다. 지난해 미국발 경제위기로 잠시 주택 가격이 주춤하면서 가계 부채 증가율도 감소하는 듯했다. 그러다 올 들어 규제 완화와 시중 유동성 증가로 주택시장의 기대심이 상승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꿈틀대더니 가계 부채도 다시 늘어나고 있다. 결국 부동산 자산 가치의 상승은 부채 상승이 만들어낸 거품일 뿐이다. 차익 실현으로 돈을 거머쥔 사람은 일찌감치 사서 남들이 빚으로 집을 살 때 팔고 떠나는 사람이다.
이제 머니게임은 다른 사람의 20여 년치 미래 가처분소득을 차지할 사람들과 이를 까먹을 사람들의 치열한 전쟁터가 돼가고 있다. 게임이 언제 끝날지 맨 끝에 누가 남을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머니게임 성격의 재테크가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보편화되면서 쉽게 돈을 벌겠다는 욕망이 사회 전반에 확산됐다. 돈에 대한 욕심은 그 자체가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해 사기나 속임수에 나약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집값이 오를 것이란 소문에 쉽게 공포심을 느끼며 너도나도 무리해서라도 당장 집을 사야 한다는 강박증까지 갖게 된다. 갑작스럽게 거래량이 급증하고 가격 상승폭이 커지면 자신의 재무 상태를 들여다보는 합리성은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욕심과 공포심을 이용하는 것이 조직적 투기다. 2000년대 초반 서울 강남 재건축 단지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진 미등기 전매, ‘떴다방’을 통한 프리미엄 조작 등이 투기의 전형이다. 거액의 투자금을 통해 계약금만 걸어놓고 저밀도 지역의 아파트 매물을 싹쓸이하는 것이다. 매물이 사라지고 거래량이 늘어나니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심이 커지고 지금이라도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공포심이 확산된다. 조급한 투자 수요가 형성돼 가격은 더 큰 폭으로 오르고 그때 투기꾼들은 차익 실현을 하고 떠나는 것이다.
사회복지사 찾아와 생계 상담하는 사모님
최근에는 미등기 전매라는 불법적인 방식이 아닌 형태로 투기 작전이 이뤄지기도 한다. 사모펀드 형태로 비투기 지역 아파트를 대량으로 매입해 등기한 상태에서 매각해버리면 정상적인 거래가 되는 것이다. 공포심과 욕심으로 뒤늦게 ‘묻지마 투자’에 나서는 수요를 노린 점은 불법적인 투기와 공통적이다. 하지만 과거보다 세련돼진 점은 전문성으로 무장한 투기 방식이라는 것이다. 사모펀드의 특성상 1가구 2주택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세제 혜택까지도 노려볼 수 있다. 매각 때 차익에 대해 내는 세금도 양도소득세가 아닌 배당소득세이기 때문에 15.4% 정도의 낮은 세금만 부담하면 된다.
좀더 욕심을 부려 배당소득세도 안 내고 싶다면 약간의 편법을 이용하면 된다. 매입할 때 실제 계약금보다 높은 금액에 계약서를 작성하는 ‘업계약서’를 쓰는 것이다. 이전 주인이 3년 이상 살았던 지역의 경우 집을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실제 받는 금액보다 비싸게 계약서를 작성해줘도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 이러한 투기적 움직임 때문에 시장이 과열됐던 2006년 이후부터 종합부동산세 대상 아파트를 피해 소형 아파트가 인기를 끌었는지도 모른다.
주식시장의 작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몇 가지 테마 재료를 시장에 흘려, 소문을 따라 뒤늦게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의 주머니를 터는 것이다. 쉬운 돈벌이에 대한 탐욕과 자본 수익에서 소외될 것에 대한 공포심 탓에, 반복되는 작전의 그물에 걸려 돈을 까먹는 것은 언제나 개미 투자자들이다. 욕심과 공포심을 통제하지 못하고 작전투성이 엉터리 소문에 ‘묻지마 투자’를 하는 보통 사람은 이미 지는 게임을 하며 맨 끝에 남겨지는 것이다. 그리고 게임의 결과는 상당히 비극적이다.
최근 개발 호재로 부동산 가격이 들썩였던 지역 내 자활센터의 어느 사회복지사는 저소득층이 아닌 중산층 때문에 더 바쁘다고 하소연한다. 부동산 투자가 잘못돼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 중산층들 상당수가 찾아와 생계 상담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세련된 외모의 젊은 주부가 아이를 안고 와 ‘쌀을 얻을 수 없느냐’는 부탁을 해서 상당히 놀란 적도 있다고 한다. 겉으로 봤을 때는 최첨단 경비 시스템의 아파트에 살면서 해외여행을 다니고, 호텔에서 외식을 하고,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헬스클럽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받는 생활을 누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신은 괜찮으니 아이에게만이라도 먹일 쌀이 없느냐는 말을 가까스로 꺼내는 것이다. 그녀의 외모는 한때 그 가정이 꾸었을 꿈일 것이다. 투자에 성공만 하면 일찌감치 은퇴해 살면서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이나 달콤하게 살 것이라 꿈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꿈을 위해 시도한 투자로 인해 매월 빚 갚는 생활을 반복해야 했고, 자산 가치가 상승하면서 돈을 벌었다는 착각 속에 이자가 버는 돈만큼 불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해 결국 채무불이행 상태까지 간 것이다. 이미 대다수 중산층은 불안한 교육 환경으로 과도한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금융회사들의 과도한 ‘공포 마케팅’으로 펀드와 보험료로도 상당한 손실을 보고 있다. 거기에 무리한 부동산 투자 때문에 높은 이자까지 부담하니 맞벌이를 해도 생활비가 부족해 마이너스통장에 의존하는 가정이 한둘이 아니다. 가계 순저축률이 지난해 1% 수준이었다는 것이 바로 중산층 가정의 ‘마이너스 경제’를 보여주는 지표다.
지난해 가계 순저축률 1%대 그쳐미래의 불안함을 부추기는 투기 공포 마케팅은 이처럼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재무 상태를 왜곡시키고 있다. 최근 한 통계조사를 보면, 직장인의 절반은 월급을 타고 17일이 지나면 잔고가 바닥난다고 한다. 신용카드와 마이너스통장으로 돌려막기 생활을 하는 중산층 가정은 외부 경제 환경이 조금만 변해도 금세 파산으로 전락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제라도 머니게임에서 도망해야 한다. 쉽고 빠르게 가려다 미래의 소중한 재원을 까먹는 뻔한 실패를 벗어던지고 냉철함을 되찾아야 할 때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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