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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규 논란, ‘2차 폭발’ 오는가

등록 2004-06-04 00:00 수정 2020-05-03 04:23

6 · 5 재보선 뒤 분란의 씨앗 남아… 개혁 부적합론 · ‘묻지마 동진정책’ 등


청와대 만찬을 계기로 여권 내부에서 들끓었던 김혁규 총리 인선 논란은 일단 봉합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문희상 특보는 어떤 진단을 내릴까.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노무현 대통령이 당과 협의해 총리를 지명하기로 약속한 만큼 당에서 좋은 인물을 추천하면 될 것이다. 실질적인 협의 여부를 지켜봐야겠지만,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 명령하고 당은 그것을 수용하는 낡은 당-청 관계가 협력적 긴장관계로 변화할 계기가 마련된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여권을 혼돈과 분열의 진흙탕 속에 빠뜨린 김혁규 전 경남지사 총리지명 반대론의 진앙지 가운데 한곳으로 지목되던 안영근 의원은 5월30일 이렇게 말했다.

만찬에서도 김혁규 정당성 역설

안 의원뿐이 아니었다. 그동안 나름의 논리와 근거를 바탕으로 ‘김혁규 불가론’을 외친 열린우리당의 소장파 의원 상당수가 5월29일 밤 청와대 만찬을 기점으로 발언 수위를 급격히 낮췄다.

우상호 의원은 “애초부터 우리 소장파들이 걱정한 것은 김혁규 개인에 대한 호불호가 아닌, 당과 청와대 사이의 의사소통 단절과 수평적 협력관계 실종이었다”며 “노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그런 오해와 의구심이 다 해소됐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전·현직 지도부와 총선 당선자 등 187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분명히 누구를 총리로 지명할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6월5일 재·보선 뒤 당지도부와 상의해 총리를 지명하며 △지명할 때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는 ‘총리지명 3대 원칙’을 밝힌 만큼 큰 분란의 씨앗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권 내부의 논쟁은 일시적으로 봉합됐을 뿐,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김혁규 총리지명’을 매개로 여권 내부에서 불붙은 논쟁은 크게 4가지 범주로 정리될 수 있다.

당-청의 원활한 의사소통 및 당의 민주성과 자율성 보장 요구, 호남소외론, 개혁코드 부적합론과 자질론, 한나라당과 상생의 정치에 대한 부담론 등이 그것이다.

5월29일 청와대 만찬은 이 가운데 건전한 당-청 관계 확립 요구만 어느 정도 해소했을 뿐이다. 이른바 ‘3김식 보스정치’ 청산 이후 당과 청와대의 관계가 명확히 설정되지 않은 과도기적 상황에서 청와대와 ‘친노무현’ 성향 의원들의 독주현상으로 분출된 당 내부의 소외감과 불만을 노 대통령이 적절히 다독인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날 만찬에서 논란의 정점인 ‘김혁규 총리’ 카드의 폐기를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 전 지사에 대한 정당성을 역설해 뜨거운 논쟁의 불씨를 계속 남겨놓았다.

먼저, 열린우리당 의원들 내부에 광범하게 퍼져 있는 김 전 지사의 ‘개혁코드 부적합론’과 ‘자질론’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다. 노 대통령이 김혁규 총리 기용을 의중에 두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면서 열린우리당 의원들 사이에는 “하필이면 왜 김혁규냐” “다른 영남의 인재는 없느냐” “김혁규가 도대체 누구냐”는 의문들이 파편적으로 제기됐다. 소장파들이 김혁규 카드를 매개로 수평적 당-청 관계에 의문을 제기한 밑바탕에는 김 전 지사에 대한 이런 정서적 반발 심리가 자리잡고 있다. ‘김혁규 논란’을 공론화한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인 ‘젊은 희망’ 소속 한 재선 의원은 “의원들 다수가 그 양반의 경향만 단편적으로 알고 있을 뿐, 개혁을 지향하는 노무현 정권과의 철학적 일체감이나 열린우리당 의원들과의 정서적·정치적 유대감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김혁규 카드가 내부에서 심정적 동의를 얻기 어려운 핵심적 이유”라고 말했다.

총리 권한 강화에 맞는 인물인가

이런 의구심은 김혁규 카드를 꺼내든 노 대통령의 고충을 십분 이해한다는 청와대 참모 출신 의원과 친노 성향 의원들 사이에도 광범하게 퍼져 있다. 청와대 비서관 출신인 한 의원은 “개인적으로 자료를 수집해 파악한 결과 김 전 지사가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하지만 김 전 지사에 대해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다른 수도권 의원도 “민주노동당에서 최고경영자(CEO)형 총리로 개혁이 되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한 것을 뼈아프게 생각한다”며 “근거 있는 문제 제기”라고 말했다.

김 전 지사의 자질과 능력이 시대적 요청인 권력분산을 통한 총리권한 강화에 걸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적잖은 공감을 얻고 있다. 호남지역의 한 초선 의원은 “국민 여론을 분석해보면 더 이상 ‘얼굴마담’이나 ‘대독총리’는 안 된다는 요구가 강하다”며 “김 전 지사가 사실상 내각을 통할하는 책임총리제까지 바라는 국민의 요구를 감당할 자질과 능력을 갖췄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특정 정당의 공천이 당선을 보장하는 경상도나 전라도에서 도지사 3번 했다는 것으로 그런 능력이 증명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노 대통령의 ‘CEO형 총리론’을 반박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친노 성향 의원들조차 이런 심상찮은 분위기를 의식해 일단 “헌법상 권리인 대통령의 총리 제청권을 인정하되, 국회의 권리인 인사청문회를 통해 김 전 지사의 개혁성과 자질을 검증한 뒤 찬반 여부를 결정하자”는 절충론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청문회 과정에서 결정적 하자가 발견된다면 그때 가서 총리 인준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정치특보인 문희상 의원도 과의 인터뷰에서 “(김 전 지사가) 참여정부의 개혁 코드와 맞느냐 등 개혁성 논쟁이 있을 수 있다”며 “청문회 과정에서 국민과 함께 고민할 일”이라고 밝혀 선택의 여지를 남겨뒀다.

김혁규 카드에 대한 열린우리당 내부 논쟁에 불을 댕긴 또 다른 근거인 ‘호남소외론’도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김태홍, 신중식 의원 등 김 전 총리 지명에 대해 강력한 의문을 표출해온 호남 출신 의원들이 이런 부류로, 이들은 크게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단 ‘영남 대통령-영남 총리’에 대한 거부감이다. 익명을 요구한 호남 출신 한 의원은 “총리의 출신 지역은 너무 민감한 문제라 군사정권 시절의 독재자들조차 의식적으로 ‘피향 원칙’을 지켰다”며 “노 대통령이 지역 때문에 능력 있는 사람을 못 쓰는 것은 또 다른 지역감정이라고 말하지만, 아직 국민들의 이런 반대 정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도 이런 이유 때문에 내부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면서 집권 이후 첫 청와대 비서실장에 김중권 전 의원을 임명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영남지역주의 냄새가…”

충청권 출신 한 중진 의원도 “영남 대통령-영남 총리는 좀 그렇다”고 난색을 표시했다. 영남 독주에 대한 소외감과 문제의식이 호남지역의 고립적인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1948년 정부 수립 당시 초대 이범석 총리부터 고건 총리까지 지난 56년 동안 무려 35명의 총리가 임명됐지만, 대통령과 같은 지역 출신은 단 한명뿐이었다. 황해도가 고향인 이승만 대통령이 1952년 10월9일부터 1954년 6월17일까지 황해도 신천 출신인 백두진 총리(4대)를 기용한 것이다.

이 문제는 임박한 6·5 재보선과 맞물리면서 쟁점으로 급부상한 측면도 강하다. 전남지사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이 ‘노 대통령의 영남편애론’을 집중 제기하면서 열린우리당의 낙승 분위기에 이상기류가 형성되면서, 호남 의원들의 불만과 위기의식이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김혁규 불가론자’로 알려진 김태홍 의원은 “김혁규 총리 기용설이 나도는 가운데,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만나 ‘취약지역인 영남 인사를 챙기겠다’고 말하고, 영남 의원들이 ‘영남발전특위’까지 구성하겠다고 얘기하면서 선거 분위기가 확 변하고 있다”면서 “호남 소외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혁규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지역의 여론과 정서를 반영한 발언이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일관되게 김혁규 카드는 지역감정 타파를 위한 묘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5월29일 청와대 만찬에서도 “김 당선자가 (총리에) 거론되는 이유는 지역통합을 이루겠다는 열린우리당의 목표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1990년 3당 합당을 정상적인 정치구조로 복원하는 게 좋겠다”며 이른바 ‘민주대연합론’까지 꺼내들었다.

한나라당에 남아 있는 민주계 인사는 김덕룡 원내대표, 김무성, 정병국 의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노 대통령의 언급은 사실상 김영삼 전 대통령의 수하이던 김 전 지사의 총리지명을 ‘민주대연합’의 한 방편이라고 강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과거 자신이 내세운 원칙과 크게 달라 적잖은 분란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노 대통령은 민주당 안에서 일관되게 자신과 같은 개혁적인 영남권 인사를 중용하는 것이 지역주의 타파의 원칙이라는 논리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고, 결국 대통령 후보가 됐다. 노 대통령은 이런 논리에 근거해 지난 1998년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이 민자당 출신의 영남권 인사인 김중권씨를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에 기용하고, 이후 민주당 대표로 중용하는 것에 반대했다. 노 대통령이 최근 김혁규 불가론자들을 향해 자신의 진심을 몰라준다며 하소연하고 있지만, 자신이 비판해온 3김 시대의 ‘묻지마식 지역구도 타파 전략’에 물든 게 아니냐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여권 내부에서는 이런 의문이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다. 호남 출신 한 의원은 “노 대통령이 지역감정 타파를 위한 대국적 견지에서 영남권 인재를 기용해야 한다면 자신과 함께 일관되게 지역감정 타파를 내걸고 가시밭길을 걸어온 김정길 전 의원이나 김태랑, 이강철씨 등을 발탁하는 게 훨씬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핍박받을 때는 집권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 편에 섰다가, 한계점인 세 차례의 지사직을 역임한 뒤 노무현 대통령쪽으로 옮겨온 것이 그리 대단한 결단이 아니라는 반박이다.

5월29일 청와대 만찬에서 이윤정 광주지역 중앙위원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경력이 부족해서 홀대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전국 곳곳에서 인재등용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며 노 대통령의 주장을 면전에서 반박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노 대통령의 한 측근 인사는 아예 “노 대통령에게서는 영남지역주의 냄새가 난다”고 우려했다.

야당 반발, 상생의 정치에 상처될까

김영삼 전 대통령 직계인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김 전 지사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사람이 아니라, 민주계가 집권한 뒤 뒤늦게 합류해 문민정부의 과실만 따먹은 사람”이라고 반박하는 상황에서 여권 내부의 이런 기류는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혁규 논란’의 또 다른 쟁점은 노 대통령이 강조하는 상생의 정치를 무너뜨리고 17대 국회 초반을 정쟁의 장으로 만들 수도 있는 김혁규 카드를 고집할 필요가 있냐는 의문이다.

유인태, 김영춘, 문석호 의원 등이 이런 기조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영춘 의원은 김혁규 논란 직후부터 “사람은 괜찮은데 흐름이 좀 안 맞는다”며 “야당이 반대하는 정황도 그렇고, 지역주의 극복 카드라고 확신하고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도 그렇다”라고 말해왔다. 문석호 의원도 “능력과 자질, 도덕성은 청문회를 통해 판단하면 되지만, 한나라당이 반대하니 가능하면 다른 사람을 했으면 좋겠다”면서 “인적자원의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여야 관계에 대한 부담을 우려했다.

그러나 문희상, 김현미 의원 등 청와대 참모 출신들은 “한나라당이 능력을 인정해 3번씩 경남지사로 공천한 인물을 배신자라고 몰아치며 상생의 정치가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상생의 가면을 쓴 발목잡기’ 정치”라고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정치권이 모두 동의하는 화두인 ‘상생의 정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둘러싼 여권 내부의 시각 차이도 청문회를 앞두고 반드시 정리해야 할 대목인 셈이다.

김혁규 카드를 둘러싼 여권 내부의 이런 기류는 노 대통령의 총리지명과 국회의 인사청문회 과정을 거치면서 다시 폭발할 ‘제2라운드’의 일시적 휴전인가, 김혁규 카드에 대한 승복인가. 그 결과를 단정하기에는 좀 이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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