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각국 고등교육 체제의 조화를 위해 나서다… 21세기 새로운 통합의 문을 열 것인가
2002년에 개봉돼 유럽에서 히트 친 영화 가운데 라는 프랑스 영화가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1년간 어학연수 및 유학을 떠나는 25살 크자비에의 주변 얘기를 담고 있는 영화다. 일명 ‘에라스무스’라는 유럽대학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실행되는 그의 스페인 체류생활은 도심의 어느 아파트에서 유럽 도처에서 몰려 온, 6명 학생들과의 동거로 진행된다.

교환교육 프로그램 재정 지원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덴마크 그리고 스페인에서 온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 학생들의 동거 생활이 빚어내는 충돌과 에피소드 그리고 우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영화에선 파리지엔 크자비에가 바르셀로나의 숙소에서 만난 에라스무스 친구들과 어울리며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그때서야 넓은 유럽을 체험하며, 결국 자신을 발견한다는, 아주 낙천적인 관점으로 ‘유럽’이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유럽 젊은이들의 실상은 가상의 현실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
1953년, 6개 나라(프랑스·독일·벨기에·이탈리아·네덜란드·룩셈부르크)에서 시작한 ‘유럽통합’이 오는 5월1일 25개국으로 확장된다.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은 유럽이 또 다른 전쟁 발생을 염려하며 당시로서는 주된 에너지 자원인 철강과 석탄 시장을 통합함으로써, 분열 대신 평화를 지향하자는 의도로 경제 분야가 중심이 된 유럽통합이다. 이후 유럽연합의 반세기 역사 동안 다수 국가간에는 쉔겐조약으로 국경이 사라졌고, 유럽통합 화폐인 유로가 나라나 언어에 제한받지 않고 자유롭게 유통되고 있다.
그런데 경제 외 분야로 눈을 돌려보면, 유럽통합의 양상은 천차만별이다. 통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통합이라는 답을 갈구하는 난해한 수학방정식 같은 게 현 유럽의 현실이다. 그 중에서도 유럽의 젊은이들이 유럽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교육받고 직업 전선으로 나아가느냐 하는 문제는 유럽 각 나라가 예외없이 골치를 앓는 사안이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은 곧 유럽의 미래이며, 교육의 장은 미래를 준비하는 중심지이지만, 나라마다 역사와 문화가 다르고 교육체계와 학위의 위상이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국경이 열리고 통합되는 유럽과 더불어 각 나라 젊은이들이 평등하게 그들의 자리를 확보해나가도록 모색하는 작업에는 모두가 만족할 만한 대안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미래를 준비하며 유럽통합 차원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고등교육 교환 프로그램이 에라스무스다. 유럽국가들간 고등교육기관 학생들의 이동과 교환 및 공동작업을 원활히 한다는 취지로 철학자의 이름을 따서 1987년 유럽공동체가 재정 지원하며 만든 프로그램이다. 현재는 분야와 대상을 넓혀 실시되는 다른 8개 프로그램과 함께 유럽 차원의 교육 프로그램인 ‘소크라테스’에 포함되어 있다. 2000~2006년 동안 진행될 현재의 ‘소크라테스 II’ 프로그램에는 유럽의 30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나라별 교육체제 조정의 힘든 과정
“길거리 표지판도 하나 읽을 줄 모르는 나라에 떨어져서 인사말도 할 줄 몰랐고, 뭘 요구할 수도 없었죠. …그러나 부다페스트에서 내 생의 가장 아름다운 몇 개월을 보냈고, 세계 도처에서 온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고, 소속 대학에서 정말 재밌게 보냈어요. 그러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이더군요. 헝가리에서의 체류는 옛 공산주의 국가를 이해하게 만들었고, 그들 또한 우리처럼 유럽인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2001년 한 학기 동안 에라스무스 교환학생으로 헝가리에 머문 적이 있는 오스트리아인 엘리자베스의 경험담이다.
창설 당시 3천여명이 혜택을 받은 에라스무스는 매년 증가세를 보여, 2002·2003학년부터는 그 혜택자가 100만명 선을 넘고 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02년 10월 한주를 ‘에라스무스 주’로 정해 유럽의 수도인 브뤼셀을 중심으로 30개국에서 다양한 행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매년 신청자 및 혜택자 수가 늘어나는 에라스무스지만, 재정 지원을 받으며 나라와 소속 학교를 바꾸는 일인 만큼 신청과 승인으로 이어지는 작업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오래 걸리며, 준비서류가 너무 많다는 비판도 듣고 있다.
1년간 100만여명이 혜택을 받는 에라스무스와 그 외에도 학생이나 교사들을 위한 다양한 교환 프로그램으로 나라간 교육 및 연구작업 교환이나 협조가 이뤄지고 있지만, 이런 작업이 더욱 원활해지기 위해서는 각 나라의 기존 체제와 체계를 서로 조율하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각 나라의 체제와 환경에서 형성되고 보존 발전돼온 교육환경은 각기 양상이 달라서 언뜻 보기에 조율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고등교육 과정의 경우, 프랑스는 교육 체계와 학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아주 세분화·다양화되어 있는가 하면, 벨기에는 특별히 전문직업 교육기관들이 발달해 있다. 독일 학생은 학비와 생활비에서 훨씬 나은 국가 보조금을 받는다. 학생에 대한 처우나 학위의 위상이 나라마다 다른데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교육기관이나 지역 혹은 학문 분야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서유럽 국가간에도 이럴진대, 동유럽까지 포함하면 조화를 이루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 유럽 대학들간의 체계적 조화를 꾀하자는 움직임이 ‘고등교육의 유럽공간화’ (European Higher Education Area) 작업이다. “고등교육기관에 열린 유럽 공간은 수많은 긍정적인 전망을 가진다. 우리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더 밀접한 협조작업과 유동을 권장하기 위하여, 교육영역을 발전시키고 장애물을 없애기 위해 힘찬 노력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경제 유럽통합에 발맞추어 미래의 유럽에 걸맞은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각 나라의 고등교육 구조의 조화를 이루자는 내용의 선언문이 1998년 파리의 소르본대학 창설 800주년을 기념한 자리에서 발표되었다. 유럽대학의 기원국들인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의 교육부 장관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당시 프랑스 교육부 장관이었던 끌로드 알레그르의 연설문과 함께 선포된 초안이 이후 볼로냐(1999년), 프라하(2001년), 베를린(2003년) 모임을 거치면서 보완되고 다듬어져 현재 36개국이 승인했다.
그 핵심 내용은 이렇다. △유럽 공간에서 학생들과 연구원 및 직원들의 이동을 원활히 한다. △고등교육기관간 협조를 활성화하기 위해 교육 절차의 유동성을 도입한다. △유럽에서 학제나 학점 및 학위를 동시에 인정할 수 있도록 학점·학위 조화를 모색한다. △세계 속에서 유럽 고등교육의 입지를 확립한다 등이다. 이런 맥락에서 2010년까지 학위 이수를 위한 평균 학점과 기본 학위를 3년·5년·8년 단위로 각각 학사·석사·박사로 통일한다는 교육정책안이 각 나라에서 나오고 있다. 대학의 유럽화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학생들 우려 목소리도 높아
하지만 세계화 움직임에 대항하는 반세계화 움직임이 있듯이, 대학의 유럽화를 염려하는 학생들의 소리도 만만치 않다. 무상교육을 받아온 쪽에서는 유상교육의 도입 가능성과, 학제변화나 학위인정 과정에서 상대적인 평가절하 가능성 등 조화의 명목으로 닥쳐올 기존 체제 변화와 혼란에 대한 우려다. 기존 체제가 특별히 개성적이었던 나라들, 그래서 조율이 더욱 요구되는 나라의 학생들일수록 ‘대학의 유럽화’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더 높이고 있다. 현재도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벨기에 등지에서 대학생 노조단체들의 반대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지만, ‘대학의 유럽화’는 대세로 보인다. 유럽 각 나라의 교육관리들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15개 나라로 이뤄져 있을 때도 해결하지 못한 다양한 문제들을 그대로 안고 오는 5월1일에 25개 나라 4억5천만명 인구를 품게 된다. 이렇듯 거대한 유럽의 앞날을 짊어질 젊은이들의 과제는 각자의 정체성을 간직하면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21세기의 새로운 통합’을 묶어내는 일이 아닌가 싶다.
파리= 이선주 전문위원 seoulparis@tiscali.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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