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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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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구룡마을’, 그곳에 사람이 있다

소수민족·난민이 모여사는 터키 ‘디크멘밸리’ 철거촌…
8년째 이어진 철거 위협 속에서 평범하고도 소중한 삶은 이어져
등록 2014-12-19 15:28 수정 2020-05-03 04:27
‘디크멘밸리’ 철거촌 사람들에게 비록 낡고 누추하지만, 아이를 키우고 잠을 자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지붕 달린 집이 있어 다행이다. 12월4일 낮, 주민들이 집 앞에 나와 앉아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디크멘밸리’ 철거촌 사람들에게 비록 낡고 누추하지만, 아이를 키우고 잠을 자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지붕 달린 집이 있어 다행이다. 12월4일 낮, 주민들이 집 앞에 나와 앉아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터키 앙카라 시내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5km 정도 떨어진 시 외곽에 위치한 ‘디크멘밸리’ 철거촌. 허물어져가는 낡은 집들과 그 뒤로 보이는 높은 건물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돼, 고층의 타워팰리스가 뒤로 보이는 서울 강남의 구룡마을과 닮았다. 지금은 터키 내 소수민족인 쿠르드인과 시리아 난민 500여 명이 공동체를 이뤄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곳은 7년 전 시정부의 도시 재개발사업을 위한 강제철거와 충돌로 큰 홍역을 치렀다. 원래 터키 소시민과 쿠르드인 등 다양한 종교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1970년대부터 모여 살던 곳이지만, 도시 재개발을 추진하던 시정부가 2007년 2월 경찰과 마피아를 동원해 강제철거를 집행하면서 여러 명의 희생자가 생기기도 했다. 이후 현지인들이 서서히 철거촌을 떠나고, 쿠르드인과 시리아 난민들만이 8년째 강제철거에 맞서고 있다.

이곳 주민들의 삶은 세계 여느 빈민가와 마찬가지로 열악하다. 터키 동부에서 분리독립 무장투쟁을 하고 있는 쿠르드인 일부가 주민의 대다수라 정부에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지원을 기대하긴 어렵다. 마을에는 전기는 물론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다. 전기는 계곡 위를 지나가는 전신주에서 몰래 끌어오기도 하고, 식수는 주변에서 길어온다. 생계는 시 중심부에서 내다버린 쓰레기에서 쓸 만한 재활용품을 모아 팔아서 유지한다.

비가 올 듯 구름이 낮게 깔려 스산한 12월 초 어느 날, 일하는 부모 옆에서 강아지와 장난치는 아이, 점심 식사용 빵을 굽기 위해 밀가루를 반죽하는 아낙네, 할 일 없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청년들, 우는 아이를 달래 등에 업고는 마을 밖으로 볼일 나서는 여인네. 강제철거로 언제 떠나게 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 앞에서도 철거촌 마을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은 계속되고 있다.

앙카라(터키)=사진·글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여기저기 부서진 집들이 있는 디크멘밸리 철거촌 바깥쪽으로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여기저기 부서진 집들이 있는 디크멘밸리 철거촌 바깥쪽으로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디크멘밸리 주민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골라낸 재활용품을 팔아 생계를 꾸린다.

디크멘밸리 주민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골라낸 재활용품을 팔아 생계를 꾸린다.

언제나, 어디서나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 서면 표정이 밝아진다.

언제나, 어디서나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 서면 표정이 밝아진다.

낡은 차량도 철거촌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자랑거리다.

낡은 차량도 철거촌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자랑거리다.

8살 에미네(5번 사진)의 집에서는 플라스틱 박스를 불쏘시개로 사용해 불을 붙이고, 밀가루 반죽을 밀어 빵을 만드는 식사 준비가 한창이다.

8살 에미네(5번 사진)의 집에서는 플라스틱 박스를 불쏘시개로 사용해 불을 붙이고, 밀가루 반죽을 밀어 빵을 만드는 식사 준비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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