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8일, 경남 김해 화포천생태관 앞 논에 황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습니다. 황새의 긴 다리에 끼워진 적·녹·황색의 인식표(가락지)로 일본 효고현 도요오카 황새마을에서 날아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텃새로 살고 있던 황새 한 쌍 중 수컷이 1971년 포수에게 사살된 뒤 1994년에 암컷마저 수명을 다해 황새가 사실상 멸종 상태였습니다. 그 뒤 한국교원대에서 복원에 착수해 현재 150여 마리로 크게 늘었고 자연 방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황새는 천연기념물 199호로 지정돼 있고, 지구상에 아무르 황새는 3천여 마리밖에 없는 멸종위기종입니다.
일본 역시 멸종된 황새를 복원해 우리보다 한발 앞서 2004년부터 자연에 방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날아온 녀석은 자연에서 번식한 2세로 두 살짜리 암컷입니다. 도요오카에서 김해까지는 직선거리로 800km나 됩니다. 두 살짜리 암컷 황새 한 마리가 이렇게 먼 거리를 날아왔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왜냐하면 황새는 겨울철새라서 북쪽에서 우리나라를 찾아와 겨울을 나고 다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녀석은 봉하마을 앞에 있는 봉하뜰과 화포천 퇴래뜰을 오가며 먹이활동을 했습니다. 나는 녀석의 이름을 ‘봉순이’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봉순이는 7월8일 현재 100일이 되도록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래 머문다는 것은 봉순이가 이곳을 서식지로 인식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봉순이는 하고많은 들판 중에 하필이면 화포천을 찾아온 걸까요. 그 이유는 화포천을 중심으로 봉하뜰과 퇴래뜰이 유기농을 하기 때문입니다. 제초제·살충제 등 화학 농약은 일절 사용하지 않아 논둑이 살아 있고 물고기가 살아 있습니다.
이 지역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뒤 생태하천·생태뜰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화포천에 흘러드는 공장 폐수를 차단하거나 정화하고 트럭 수백 대 분량의 산업쓰레기를 제거했습니다. 화포천은 다시 살아났고 물고기가 뛰어놀기 시작했으며 새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새들은 지표생물이라고 합니다. 새들이 산다는 것은 자연 생태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봉순이를 보는 순간 ‘그가 황새가 되어 돌아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화포천을 아름다운 생태공원으로 만드는 소박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못다 한 꿈을 봉순이를 통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봉순이도 이 지역을 오가며 열심히 먹이활동을 했습니다. 나는 봉순이를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기도 안산 단원고에 갔을 때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 5주기 때 봉하마을에도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나는 혹시라도 봉순이에게 나쁜 일이 생겨 또다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두려웠습니다. 이 지역 환경 지킴이들이 주기적으로 모니터링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나는 봉순이 지킴이를 자청해 100일 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얼마나 먹고, 위험 요소는 없는지, 잠은 어디서 자는지 등등 낱낱이 기록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봉순이가 쉬고 잘 만한 곳은 없었습니다. 봉순이는 마을 앞으로 지나가는 KTX 선로나 공장지대를 지나는 고압선 철탑에 위험스럽게 앉아 쉬거나 밤을 보냈습니다. 나는 봉순이에게 전봇대 형태의 인공 둥지를 세워주기로 했습니다. 황새는 높은 곳을 좋아합니다. 중국 등지에서 그런 방식으로 둥지를 세워 번식한 자료를 참고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봉순이 소식을 전했고 많은 사람이 십시일반 비용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인공 둥지를 세울 장소를 물색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허가 없이 세우면 불법 구축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7월17일에는 몇몇 생태 관련 단체 활동가들과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황새학회에 갑니다. 봉순이가 태어난 도요오카 황새마을에서는 황새들이 어떤 환경, 어떤 조건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공부하고 올 것입니다. 봉순이 한 마리가 밀알이 되어 이 땅에 다시 황새가 너울너울 날아다닐 미래를 꿈꿔봅니다.
김해=사진·글 도연 스님(조류연구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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