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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뛰어놀아야 한다”… 책·자연·놀이가 함께 있는 전남 광양 ‘농부네 텃밭도서관’
등록 2013-11-01 17:56 수정 2020-05-03 04:27
서재환(57) 관장과 아내 장귀순(50)씨가 지난 10월23일 전남 광양시 진상면 청암리 ‘농부네 텃밭도서관’에서 동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모놀정’은 ‘모여서 놀자’라는 의미다.

서재환(57) 관장과 아내 장귀순(50)씨가 지난 10월23일 전남 광양시 진상면 청암리 ‘농부네 텃밭도서관’에서 동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모놀정’은 ‘모여서 놀자’라는 의미다.

우리가 흔히 ‘도서관’ 하면 머릿속에 떠올리는 모습은 도서가 가득한 책장 사이에서 사람들이 조용하게 책을 읽는 모습이다. 전남 광양시 진상면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도서관이 있다. 이름은 ‘농부네 텃밭도서관’(이하 텃밭도서관).

텃밭도서관은 우리네 흔한 시골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웅장한 건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황톳집, 원두막, 정자, 연못 등이 있다. 간판은 있지만 서가와 집, 놀이시설 등이 혼재돼 있어 이곳이 도서관인 것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도서도 한곳에만 비치돼 있는 것이 아니다. 나무 위 원두막, 정자, 전시관, 사랑방 등 넓지 않은 부지를 돌아다니다보면 곳곳에 책들이 눈에 띈다. 이름은 도서관이지만 책보다는 놀이시설이 더 많다. 이곳에서 책읽기는 그냥 놀이다. 마당, 연못 등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옆에 있는 책을 집어서 읽으면 그곳이 바로 도서관이 된다.

텃밭도서관 운영자는 서재환 관장이다. 1980년대 초부터 동네 청년들과 같이 마을문고를 운영했다. 함께 운영하던 사람들이 떠나고 혼자 남은 서씨는 1987년부터 10년 동안 경운기에 책을 싣고 시골마을을 돌아다니며 이동도서관을 운영했다. 시골에서 아이 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이동도서관 이용자도 줄어들었다. 책 읽을 아이들을 찾아 1990년대 후반 진상면 학교 앞에 도서관을 만들었다. 학교 앞 도서관도 학생 수 감소와 학생들이 책읽기보다는 학원을 가기 시작하면서 2000년대 중반에 문을 닫았다.

가지고 있던 책을 거주하는 곳으로 옮겨와 텃밭도서관을 만들었다. 시골마을에 있지만 서 관장이 인터넷 카페에 쓴 글을 보고 도시 사람들이 알음알음으로 찾아왔다.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도서관으로서뿐만 아니라 쉼터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가족끼리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시설을 하나둘 늘렸다. 3만여 권에 달하던 책도 대부분 다른 도서관에 기증하고 어린이책 5천여 권만 남겨놓았다. 서 관장은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뛰어놀아야 한다. 도시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본능을 죽이고 살아간다. 본능을 숨기다보니 아이들이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주말에라도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0월24일 경남 진주의 ‘정다운 숲속 어린이집’ 어린이들이 텃밭도서관을 방문했다. 서 관장과 그의 아내는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서 집을 비우고 없었다. 하지만 항상 열려 있는 도서관은 아이들이 이용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이들은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본능적으로 시설물들을 즐기기 시작했다. 어른 눈에는 보이지 않던 것까지 아이들 눈에는 보였다. 한참을 놀다가 지치면 곳곳에 있던 책을 꺼내 읽는다. 서 관장이 원하던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다.

광양=사진·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어린이들이 도서관 마당에 있는 작은 연못에서 쪽배를 타며 즐거워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도서관 마당에 있는 작은 연못에서 쪽배를 타며 즐거워하고 있다.

외줄타기를 하는 어린이집 원생들.

외줄타기를 하는 어린이집 원생들.

어린이들이 연못에서 잡은 올챙이를 보며 신기해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연못에서 잡은 올챙이를 보며 신기해하고 있다.

마중물을 붓고 펌프질을 하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놀이다.

마중물을 붓고 펌프질을 하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놀이다.

경남 진주의 ‘정다운 숲속 어린이집’ 아이들이 지난 10월24일 오후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다.

경남 진주의 ‘정다운 숲속 어린이집’ 아이들이 지난 10월24일 오후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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