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옷 10kg이니까 4천원.” “어머니 폐지 19kg, 고철 10kg, 비철 6kg 합해서 9620원.”
하루 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린 7월23일. 오후 들어 빗줄기가 잠시 잦아들자 동네 주민들이 손수레와 카트에 고물을 잔뜩 싣고서 서울 광진구 중곡동 제일비철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정병운 대표는 커다란 저울에 올려진 고물의 가격을 빠르게 계산해 돈을 건네준다. 폐지·고철·플라스틱 등 다양한 물품이 섞인 고물의 무게를 재어 가격을 책정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고물상은 삶의 막다른 곳에 이른 사람들이 찾는 ‘희망역’ 역할을 한다. 이날 오후 고물상에 재활용품을 팔러 온 사람들은 노숙자, 기초생활수급자,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힘겹게 고물을 납품한 할머니는 시커멓게 때 낀 손으로 몇천원을 받아 구깃구깃 주머니에 넣었다. 대부분 경제적 능력이 없고 일을 하고 싶어도 받아주는 곳이 없는 이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하루 50여 명 정도 정 대표의 고물상을 찾는다.
환경부는 2010년 10월 폐기물관리법을 개정해 부지 규모 2천m²(특별·광역시는 1천m²) 이상의 고물상은 7월23일까지 폐기물처리 신고를 해야 했다. 또한 고물상 취급 품목을 폐지, 고철, 폐포장재 중 용기류만으로 한정해 이보다 작은 부지의 고물상은 ‘분뇨 및 쓰레기 처리 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잡종지’에서만 고물상을 해야 한다. 기존 주택·상업 용지에 있는 고물상은 시외로 이전해야 한다. 법을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많은 고물상이 시내의 주택·상업 지역에 있는데 비용 문제 때문에 현실적으로 새 둥지로 옮기기는 어렵다. 시외로 이전한다 해도 고물이 시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긴 이동 거리로 인한 물류비 상승으로 타산이 맞지 않는다. 지난 7월24일부로 전국 200만 명의 고물상 종사자들이 하루아침에 범법자가 됐다. 중곡동 주택가에 위치한 제일비철도 마찬가지다. 정 대표는 “의류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서 고물상을 하게 됐다. 이 고물상이 없어지면 나도 직업을 잃게 되지만 고물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극빈층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어떻게 하나?”라며 한숨을 쉬었다. 손에 장애가 있는 이남수(59)씨는 “고물을 줍는 일이 제일 쉽고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 고물상이 없어지면 한 달 수입 20여만원이 줄어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신기남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폐기물관리법 부칙 유예기간 4년 연장 법안’이 계류돼 있다. 지난 6월 국회 파행으로 통과되지 못했다. 전국자원재활용연대 봉주헌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96번 국정 과제가 ‘자원순환 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전국의 7만 고물상들은 자원 빈국에서 자원 재활용에 앞장서왔다. 고물을 폐기물이 아니라 재활용 자원으로 생각해야 한다. 재활용인과 고물상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폐기물관리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사진·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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