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 기간에 광주에서 일가족을 이끌고 온 성경환(41)씨, 지난해 직장을 은퇴하고 생명과 평화를 실천하려고 경기 성남에서 온 배현덕(57)씨, 신문에서만 보던 제주 해군기지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겠다며 참가한 경기 의정부의 노경금(51)씨, 강정마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는 마음으로 스태프로 참여한 중3의 임나경(15)양, 천주교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김미현(48)씨, 강원도 인제의 천강희(33)씨….
제주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촉구하며 전국에서 모여든 시민 1천여 명의 땀방울이 제주도의 도로를 적셨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한여름의 뙤약볕 때문에 입에서 단내가 난다. 뜨거운 열기를 몸의 가장 높은 곳에서 받아들이는 머릿속은 가벼운 어지러움이 밀려온다. 걷는 시간이 길어지자 종아리는 화상으로 따끔거린다. 사타구니는 속옷에 쓸려서 상처가 생긴다. 발바닥에는 물집으로 통증이 깊어진다. 이렇게 힘든 5박6일 동안이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걷는 순례길은 즐거움이 가득하다.
더위에 지쳐 더는 걸을 힘이 없다 싶으면 제주도 각 지역의 주민들이 준비한 미숫가루, 아이스크림, 얼린 생수, 초코파이가 힘을 준다. 어깨가 굳고 다리에 통증이 심해지면 서로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준다. 흥이 없다 싶으면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강정마을의 신짜꽃밴(신나고 짜릿한 꽃밴드)의 공연에 맞춰 춤을 춘다. 제주도 주민들은 도로에 나와 순례단을 향해 손을 들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폭염도 태풍 담레이도 이들의 걸음을 막지 못했다.
순례단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요구하며 7월29일부터 8월4일까지 제주도를 동서로 나눠 강정평화대행진을 했다. 마지막 날인 8월4일에는 제주시 탑동광장에 모여 ‘해군기지 백지화 전국집중시민행동’ 행사를 열어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선언했다.
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품은 국토의 남단 제주, 그 아픔을 알기에 제주도는 평화를 바란다.
제주=사진·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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