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박이 익어갈 무렵이면 한창 농사일로 바쁜 농촌에서는 참을 만들어내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다. 이때 비교적 손이 많이 가지 않는 국수는 그야말로 어머니들의 일손을 덜어주는 효자 중의 효자가 아니었을까?
잘 삶은 국수와 적당히 익힌 열무김치를 버무려 후루룩 비워내는 새참의 꿀맛이란 고된 농사일에 지친 농부들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의 한 자락일 것이다. 충남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는 이런 서민의 추억이 담긴 국수를 65년 동안 3대를 이어 만들어온 은산국수집이 있다. “국수는 무엇보다도 정성이 들어가야 해요. 건조 과정도 무척 까다롭습니다. 힘들고 고돼도 옛날 방식을 그대로 고집하는 이유는 맛 때문이죠. 밀가루와 소금과 물, 그리고 정성을 버무려 만들어내는 귀한 선물이죠.” 박화순(58) 사장의 말이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밴 나무 부품과 두꺼운 벨트로 이루어진 오래된 국수기계로 국수를 뽑아내는 모습은 바쁘고 빠르게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느리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같다. 인터넷의 발달로 여기저기 이름이 알려지자 지나는 길에 국수를 사러 들르는 손님이 많아져 일하는 데 지장을 받기도 한단다. 박 사장은 “언젠가는 전통 방식대로 국수를 만드는 체험박물관을 만들어 후대에 꼭 전하고 싶다”는 소망을 사람 좋은 너털웃음과 함께 밝혔다.
은산(충남)=사진·글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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