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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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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러 시간여행 떠나다

1935년 개관, 세월의 흔적 안고 예술영화전용관으로 명맥 잇는 광주극장…
국내 유일 간판그림 그려지는 추억 속의 극장
등록 2012-03-22 17:02 수정 2020-05-03 04:26
광주시 동구 충장로5가에 위치한 광주극장 전경.

광주시 동구 충장로5가에 위치한 광주극장 전경.

세대를 이어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열차가 전철로 바뀌고 오랜 동네 시장은 마트로, 단관극장은 복합상영관으로 바뀐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세대는 추억을 쌓을 것이다. 한데 왠지 모르게 허전하다. 몇 개쯤 그대로 있어주면 안 될까? 어릴 적 갔던 그 공간에서 우리 아이들과 다시 추억을 쌓아보는 것도 좋을 텐데 말이다.
광주에 위치한 광주극장은 그래서 위안이 된다. 경영난과 대기업 복합상영관에 밀려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바뀌었지만 1935년 일제강점기에 민족자본으로 세워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큰 스크린과 1·2층 객석, 오래된 영사실, 매표소와 복도 등 극장 구석구석엔 옛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또 국내에서 유일하게 간판 그림이 아직까지 그려지고 있는 곳이다. 기적이다. 20년을 이곳에서 일했던 박태규(47) 화가는 1년에 두 번 무보수로 작업을 한다. 지금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을 다룬 다큐멘터리 를 준비하고 있다. “간판이지만 손을 거쳐 작품에 역할을 한다. 해석이나 나름의 의미를 담아 한편 한편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그린다. 극장이 사라지면 추억과 그 안에 담긴 역사도 사라지는 것이다. 광주극장의 소중한 이야기들이 여러 사람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순간순간 마지막을 예감하는 박 화가의 말에 아쉬움이 묻어난다.
이날도 극장엔 몇몇 사람들만이 자리하고 있다. 다른 곳에선 잘 상영하지 않는 예술영화를 보러오는 관객도 있지만 추억을 찾아오는 마니아층도 있다. 한 69살 관객은 아득한 눈길로 말했다. “이곳은 광주의 섬이다. 지나간 영화를 상영하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 꼭 새롭고 편리한 것들이 다 좋은 건 아니다. 영화를 보러 여행하는 것처럼 온다.” 어느덧 팔순이 다 돼가는 광주극장. 그 곳에 가면 그 오랜 세월만큼 숱한 사람들의 추억과 역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추억 없는 삶은 뿌리 없는 나무다.

광주=사진·글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영사기사 이영일(37)씨가 영사실에서 상영 중인 영화를 지켜보고 있다.

영사기사 이영일(37)씨가 영사실에서 상영 중인 영화를 지켜보고 있다.

정문 매표소에 상영하는 영화의 포스터와 상영시간표가 붙어 있다.

정문 매표소에 상영하는 영화의 포스터와 상영시간표가 붙어 있다.

박태규 화가가 그림을 그리려고 13년 된 간판에 덧칠을 하고 작업 준비를 하고 있다.

박태규 화가가 그림을 그리려고 13년 된 간판에 덧칠을 하고 작업 준비를 하고 있다.

겨울철에도 극장 전체에 난방하기가 어려워 관객들이 담요를 덮고 있다.

겨울철에도 극장 전체에 난방하기가 어려워 관객들이 담요를 덮고 있다.

광주극장에서 운영하는 수요영화모임은 저녁 7시에 감독이나 배우별 영화를 상영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광주극장에서 운영하는 수요영화모임은 저녁 7시에 감독이나 배우별 영화를 상영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영화를 상영하기 전 극장의 내부 모습.

영화를 상영하기 전 극장의 내부 모습.

극장 2층에는 예전에 사용했던 영사기와 손으로 그린 옛 영화 포스터가 전시돼 있다.

극장 2층에는 예전에 사용했던 영사기와 손으로 그린 옛 영화 포스터가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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