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이어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열차가 전철로 바뀌고 오랜 동네 시장은 마트로, 단관극장은 복합상영관으로 바뀐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세대는 추억을 쌓을 것이다. 한데 왠지 모르게 허전하다. 몇 개쯤 그대로 있어주면 안 될까? 어릴 적 갔던 그 공간에서 우리 아이들과 다시 추억을 쌓아보는 것도 좋을 텐데 말이다.
광주에 위치한 광주극장은 그래서 위안이 된다. 경영난과 대기업 복합상영관에 밀려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바뀌었지만 1935년 일제강점기에 민족자본으로 세워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큰 스크린과 1·2층 객석, 오래된 영사실, 매표소와 복도 등 극장 구석구석엔 옛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또 국내에서 유일하게 간판 그림이 아직까지 그려지고 있는 곳이다. 기적이다. 20년을 이곳에서 일했던 박태규(47) 화가는 1년에 두 번 무보수로 작업을 한다. 지금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을 다룬 다큐멘터리 를 준비하고 있다. “간판이지만 손을 거쳐 작품에 역할을 한다. 해석이나 나름의 의미를 담아 한편 한편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그린다. 극장이 사라지면 추억과 그 안에 담긴 역사도 사라지는 것이다. 광주극장의 소중한 이야기들이 여러 사람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순간순간 마지막을 예감하는 박 화가의 말에 아쉬움이 묻어난다.
이날도 극장엔 몇몇 사람들만이 자리하고 있다. 다른 곳에선 잘 상영하지 않는 예술영화를 보러오는 관객도 있지만 추억을 찾아오는 마니아층도 있다. 한 69살 관객은 아득한 눈길로 말했다. “이곳은 광주의 섬이다. 지나간 영화를 상영하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 꼭 새롭고 편리한 것들이 다 좋은 건 아니다. 영화를 보러 여행하는 것처럼 온다.” 어느덧 팔순이 다 돼가는 광주극장. 그 곳에 가면 그 오랜 세월만큼 숱한 사람들의 추억과 역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추억 없는 삶은 뿌리 없는 나무다.
광주=사진·글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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