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체국 앞에서 내리신다면서? 다음이 우체국이니까 일어나셔요.” 버스안내양이 앞자리에 앉아 졸고 있는 할머니를 깨운다. 도착지에 버스가 서자 고추가 든 커다란 할머니의 짐을 정거장에 내려놓는다.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버스가 충남 태안군 이원면 관리 볏가리마을의 꾸불꾸불한 산길을 지나자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지도를 펴고 안내를 시작한다. “여기가 솔향기길 2코스이고요, 30분 정도 더 가서 만대항에 내리면 경치 좋은 솔향기길 1코스가 시작됩니다.”
태안여객 ‘버스안내양’ 정화숙(44)씨는 충청남도 태안에서 6년째 ‘안내양’ 생활을 하고 있다. 관광 홍보를 목적으로 태안군이 2006년부터 시행한 버스차장제 1호의 주인공인 정씨는, 관광객은 물론 버스를 이용하는 마을 주민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인기 덕인지 처음엔 정씨 혼자이던 ‘안내양’이 이젠 4개 노선 3명으로 늘었다.
“인기가 별거 있나요? 짐 들어드리고, 휴대전화 문자도 봐드리고, 가는 길에 말동무해드리다 보니 정이 쌓이는 거죠.”
정씨는 버스에서 할머니를 보면 무조건 호칭이 ‘엄마’고, 할아버지는 ‘아버지’다. 얼마 전 돌아가신 시어른이 생각나서란다.
“엄마, 배추 얼마 주고 사셨대?” “엄마, 머리하셨네?” “아버지, 고춧값이 별로예요?”
버스를 탄 노인 승객들에게 시시콜콜 말참견하는 것이 정씨의 장기다. 버스는 수억염전 앞을 지난다. 바다의 짠내가 정씨의 입담에 녹아든다. 정씨에게 이런저런 대꾸를 하다 보면 어느새 버스는 기점인 만대항에 다다른다. 풍경과 정에 취해 정씨가 탄 버스는 오늘도 시골길을 달린다.
태안=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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