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087m 망경대산의 7부 능선. 저렇게 높은 곳에도 마을이 있을까?
있다. ‘하늘 위의 마을’,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리 모운동. 석탄을 캐던 시절에는 1만여 명이 북적였던 곳. ‘별표연탄’으로 유명했던 옥동광산이 있던 곳. “옥동에 가면 쌀 주고 돈 준다는 말에 아저씨 따라 여기 왔어.” 김옥준(80) 할머니가 회상했다. “집이 깨알백이 모여 있어 여기가 서울의 반이라고 했지.” 학생 수가 많아 2교대로 수업이 진행됐던 모운초등학교의 교기는 곡괭이와 연필이 엇갈려 포개진 형태였다.
그러나 1989년 4월30일, 옥동광산이 문을 닫았다.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이제는 고작 31가구 52명만이 남았다.
쓸쓸했던 모운동이 다시 태어나게 된 건 주민들이 허름한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면서부터다. 골목에 꽃과 나무도 심었다. 18년째 이장을 맡고 있는 김흥식(55)씨와 부인 손복용(47)씨가 앞장섰다. 주민들이 적극 도왔다. 2살 때 광부인 아버지 손을 잡고 모운동에 왔다는 김 이장은 “고향을 그냥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면사무소·군청을 찾아다니며 마을을 가꿀 예산을 타왔다. 액수가 적어 화가를 부를 수 없으니 부인 손씨가 나섰다. 어린이집 교사 경험도 있고 그림도 제법 그리던 그가 밑그림을 그렸다. 색을 칠할 부분에 빨강·파랑·노랑 등 색깔 이름을 적어놓으면, 동네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붓을 들고 그림을 완성시켰다. 개미와 베짱이,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미운 오리 새끼, 토끼와 거북이 등등.
산골 폐광촌 모운동은 지난해 행정자치부가 선정한 ‘참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대상을 받은 여덟 마을 중 하나가 됐다.
“광산에 일자리를 찾아왔다가 정착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어요.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요즘은 새삼 살기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웃들이 아주 좋아요.” 정춘옥(78) 할머니의 말이다. “부산에 살다가 남편 건강 때문에 요양하려고 모운동에 왔어요. 2년 만에 많이 호전돼 걱정을 덜었죠. 이웃 분들도 다 가족처럼 대해주시니 더할 나위 없어요.” 김종한(54)·김영희(47)씨 부부의 말이다.
벽화와 꽃이 없더라도 마을은 위치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 모운동이란 이름처럼 구름을 불러모은다. 비가 온 직후나 봄가을의 이른 아침, 마을을 둘러싼 첩첩 산자락에서 안개구름이 피어오르면 선경이 따로 없다. 동화 속 마을을 꿈꾸는 모운동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동화였다. 모운동 위 높은 하늘의 구름도 동화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영월=사진·글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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