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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첫 가족 여행

척수성근위축증 극복하고 의사 꿈꾸는 혜인이, 고려인 2세 외할머니도 함께한 제주도 2박3일 여행
등록 2010-05-06 23:04 수정 2020-05-03 04:26
 제주 서귀포 중문의 ‘쉬리동산’. 울퉁불퉁 불편한 길이지만 아빠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은 혜인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제주 서귀포 중문의 ‘쉬리동산’. 울퉁불퉁 불편한 길이지만 아빠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은 혜인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배봉초등학교 5학년 정혜인이에요. 오는 7월이면 11살이 된답니다. 저는 척수성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이라는 병 때문에 몸이 불편해요. 온몸의 근력 저하와 근 위축이 서서히 진행되는 병이에요. 증상을 개선하거나 진행을 멈추게 하는 약이 없대요. 현재는 혼자 몸을 일으키거나 걸을 수 없어 휠체어를 타고 다녀요.

 서귀포 여미지식물원 잔디밭에서 동생 다인이가 혜인이의 휠체어를 밀며 달리고 있다.

서귀포 여미지식물원 잔디밭에서 동생 다인이가 혜인이의 휠체어를 밀며 달리고 있다.

 차귀도 잠수함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던 혜인이가 아빠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기고 있다.

차귀도 잠수함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던 혜인이가 아빠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기고 있다.

저도 처음에는 걸을 수 있었대요. 첫돌 무렵 심하게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이상해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고 병을 알게 됐어요. 혼자 마음껏 돌아다닐 수 없으니 엄마(박인숙·33)에게 무척 짜증을 부렸나봐요. 밤에는 잠도 안 자고 보채느라 엄마와 아빠(정만복·43)가 무척 힘드셨대요. “밖에~ 밖에~” 하며 자꾸 나가자고 했나봐요. 엄마는 저를 데리고 도시락을 싸들고 밖에 나가 하루 종일 앉아 있다 오시곤 했어요. 제가 그때는 철이 좀 없었어요. 이제는 뭐, 많은 시간을 책을 보며 지낸답니다. 짜증도 안 내고요.

이런 저 때문에 동생 다인(6)이를 비롯해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보지 못했어요. 와, 그런데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이란 곳에서 저희 가족의 제주도 여행을 도와주셨어요. 저와 같은 난치병 어린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고마운 곳이에요. 4월26일부터 28일까지 2박3일 동안 제주도 곳곳을 구경했어요. 고려인 2세로 러시아 사할린에서 사시다 지난해 12월 영구 귀국한 외할머니(김명희·65)도 함께 갈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주도에 사시는 자원봉사자 문중원 아저씨께서 운전을 해주시고 친절히 설명도 해주셔서 더 즐거운 여행이었답니다.

 혜인이와 다인이가 퍼시픽랜드에서 바다사자와 돌고래의 묘기를 보며 밝게 웃고 있다.

혜인이와 다인이가 퍼시픽랜드에서 바다사자와 돌고래의 묘기를 보며 밝게 웃고 있다.

 박은경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사무총장(왼쪽)이 제주공항에 도착한 혜인이에게 꽃다발을 전하고 있다.

박은경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사무총장(왼쪽)이 제주공항에 도착한 혜인이에게 꽃다발을 전하고 있다.

 멀리 산방산과 바다가 보이는 송악산에서 혜인이가 아빠 등에 업혀 산책하고 있다.

멀리 산방산과 바다가 보이는 송악산에서 혜인이가 아빠 등에 업혀 산책하고 있다.

다음에는 필리핀이나 미국 같은 외국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요. 제가 돈 많이 벌어서 엄마·아빠를 모시고 여행갈 수 있는 날이 오겠죠? 그러려면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어요. 사지장애를 딛고 미국에서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된 이승복 아저씨처럼 저도 의사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저처럼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장애가 있는 어린이를 위해 봉사하고 싶어요. 제가 꿈을 이룰 수 있게 응원해주세요. 꼭이오!

서귀포=사진·글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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