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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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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길 위, 할머니 채소 가게

등록 2008-04-25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중계본동에 40여년간 뿌리박고 살아온 사람들, 재개발 광풍은 마음까지 뒤흔드네 </font>

▣ 사진·글 이강훈 다큐사진작가 oldlollipop@empal.com

중계본동. 서울 하늘 아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리는 곳. 1970년대 들어서 청계천 일대를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도심 재개발의 광풍이 비틀어 세운 사람 사는 동네.

도심을 비껴 한참을 벗어난 이곳은 그렇게 쫓겨난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수십 년 동안 삶의 고단함을 나누던 작은 둔덕이다. 도심에서 밀려난 이들이 한데 힘을 모아 30도를 넘는 경사진 골짜기를 갈고 다듬었고, 작은 담장 너머 두다리 뻗을 만한 한두 칸 방이면 모자람 없이 편안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찾아온 먼지바람이 이런 평온을 조금씩 몰아내고 있다. 누구는 몇 푼 쥐어진 보상비에 다시 쪽방을 찾아 떠나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하늘을 찌를 듯 올라설 아파트에 기대를 품으니 달동네의 고요에는 어느새 파동이 인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이 농사를 지었거든. 수확한 걸 가지고 아버지가 장터에 나가실 때 종종 따라나섰는데, 내가 곧잘 팔아 치우곤 혔지. 아버지가 웃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니께.” 동네 한쪽에서 채소장사를 하는 사이 가끔은 옛 추억에 빠진다는 오영숙(72) 할머니. “그때 아버지가 나중에 장사 같은 거 하라고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나마 장사질이라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겄어. 그려도 먹고살 만큼 돈도 잘 벌고 혔는디 요즘은 장사가 통 안 돼야.”

남편과 함께 중계본동에 뿌리를 내린 지 40여 년이 다 됐다는 할머니는 그동안 쌓인 추억들을 툭툭 꺼내놓았다. 재개발이 확정된 뒤 하나둘씩 떠나는 이웃들 때문에 조금은 마음이 쓰린 탓이다. 집안 식구가 몇인지,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 만큼 깊은 정을 나누던 이들이 그렇게 뿔뿔이 흩어지는 게 안타깝다는 할머니도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이곳을 떠나야 한다. 진한 아쉬움이 얼굴 가득한 주름살에 더 깊은 골을 만든다.

그러나 갓난아기를 업고 콩나물을 사러 온 젊은 아낙과 눈이 마주치자 금세 표정이 밝아진다. 500원을 내민 아낙의 손엔 그보다 더한 양의 콩나물 봉지가 쥐어지고 거기에 환한 미소가 더불어 얹혔다. 조금이라도 보태 담으려는 할머니의 인심이다.

마을 언덕에 노란 봉오리를 틔운 개나리가 할머니의 시름을 달래주려는 듯 봄볕을 내려주었다. 긴 겨울바람은 그렇게 소리 없이 사라지고 달동네엔 아쉬움 속에 다시 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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