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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껍질 속으로 타들어간 예술

등록 2007-08-31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전남 담양에서 낙죽공예 명맥 이어온 낙죽기능전승자 조운창씨</font>

▣ 담양=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1년 내내 대나무 향기가 머무는 전남 담양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가봤다. 처서가 지났어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지만 인두를 머금은 채 벌겋게 달아오른 화로를 보자 성하(盛夏)가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졌다. 작업도구라야 인두와 숯불을 담은 화로뿐, 더 필요한 것도 없다. 새의 부리 같은 인두 끝으로 나무껍질을 지진다. 검게 그을리며 타들어가는 대나무 위로 천년을 산다는 학이 날아든다. 굽이치는 산자락 위로 몽환적인 구름이 흩날린다.

낙죽(烙竹) 공예. 인두로 대나무에 무늬나 그림을 새겨넣는 기법으로 합죽선, 붓대 등 주로 죽물(竹物) 표면 장식에 많이 사용돼왔다. 이런 낙죽은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제31호)로 지정됐는데, 담양에서 그 명맥을 잇고자 평생을 살아온 이가 바로 조운창(63)씨다.

“소질은 있었는데 돈벌이도 시원찮고 누구 알아주는 사람도 없어서 여러 번 때려치우고 싶었어. 그럴 때마다 죽을 때까지 끝장을 보자고 대들었지. 내가 인정을 못 받으면 자식들을 가르쳐서라도 인정을 받겠다고 결심하고 말이야. 지금은 끝까지 하길 잘한 거 같아.” 지난해 노동부에서 낙죽기능전승자로 선정된 그가 지난 30여 년의 세월을 인정받기까지는 남들이 모르는 인내의 시간이 있었다.

작품이 완성될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는 조씨는 대나무의 고장 담양에서 낙죽의 전통을 잇는 것이 꿈이다. 다행히 조씨의 둘째아들 원익(39)씨가 뒤를 잇고 있고 손자 재호(12)군도 낙죽에 재미를 붙인 것 같아 기대가 크다. 1년 전부터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미래의 낙죽 장인을 만들기 위해 방과후 수업에서 일일교사를 자청하기도 한다.

“내가 낙죽용 인두가 없어서 함석용 인두를 쓰던 시대보다는 일단 좋아진 거잖수. 전통 방식도 미적 감각이 결합한 제품이 나오면 부가가치 높은 상품이 될 게요.”

이내 식어버린 인두를 화로에 담그며 조씨가 말한다. 오기와 열정으로 얼룩진 땀방울이 장인의 이마에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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